[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정치의 사법화와 검찰화, 민주주의의 근간을 잠식한다

기자 2023. 4. 1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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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민주주의와 사법주의 (상)

오늘날 누구도 한국 사회를 민주국가로 이해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별히 삼권분립, 주기적 선거, 복수정당제, 언론자유가 헌법과 제도상으로 보장되는 한에 있어 한국을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국가로 의심한다는 것은 전연 불가능하다. 그러나 속살을 보면 이 민주공화국이 중대한 파열과 침식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의회정치, 나아가 정치, 더 나아가 국정의 사법화·검찰화·형사화를 말한다.

민주주의에서 사법과 검찰의 독립은 중요하다. 법치의 보루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을 넘어 검찰·사법의 논리가 정치·의회·국정의 영역에 침투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법은 본시 이중적이다. 근본 출발원리는 인권 존중, 정의 실현, 법치, 약자 보호, 형평과 저울의 역할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피하게 승패 판정, 유죄-무죄, 흑백논리, 합법-불법의 양자택일 지반 위에 움직인다. 둘 모두 법의 본질이다. 따라서 다수주의, 다수결과 소수 존중, 대화와 타협을 원리로 삼는 민주주의와는 자주 충돌한다. 법이 민주주의의 범주 내에서 법치를 위한 역할에 그쳐야 하는 이유다.

국가는 한 개인과 직위, 한 부문과 조직이 전체로 과대 대표되면 반드시 큰 탈이 난다
특히 견제와 균형의 원리 넘어 다른 부문까지 과도하게 장악하면
그것은 그 조직과 나라 전체의 심각한 위기로 연결된다
진영논리와 정치의 사법화와 검찰화가 결합되었을 때
정치는 물론 사법 및 검찰, 그리고 끝내는 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이 위험하다
지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서 사회계약의 최고 핵심으로서의 정치계약은 사라졌다. 계약과 약속으로서의 정치를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한국 정치는 이제 거의 모든 정치 의제와 사안, 절차와 과정이 사법화와 검찰화하고 있다. 마치 국정과 국민 의사의 최후 심급으로서 그들의 최종 판정을 받아야만 정치적으로도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심각한 진영갈등을 초래한 주요 정치·사회·경제·인권·외교 의제와 사안들 중 검찰·사법·헌재에 물어보지 않은 것은 드물다. 다수 국민대표의 결정조차 극소수 수사 검찰과 담당 판사·재판관들의 판정에 합당과 부당, 합법과 불법 여부가 맡겨지고 있다.

그것은 의회의 의안 통과 과정과 입법 내용부터 정부 정책 결정의 절차와 세부사항에까지 이른다. 민주공화국의 정치와 정부, 의회와 정당으로서 중대한 직무유기이자 궤도 이탈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 대북송금 특검, 대통령 후보(이명박)에 대한 청와대의 고발을 계기로 정치의 사법화가 초래할 문제점을 지적할 때 주목한 정치인들은 없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그 자체가 정치의 사법화였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둘째, 사법과 검찰 인사들의 의회 진출을 포함하여 법조 엘리트들의 국정 과점(寡占)과 국민 과대대표가 두드러진다. 오늘날 정당들은 진영대결과 사법 대응을 위해 더욱 많은 법률가를 필요로 하고 또 불러들이고 있다. 비중과 역할도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물론 그 절정은 검사 출신 대통령의 출현이다. 그러나 전례없는 검사 출신 대통령의 출현은 특정 개인의 정치 참여 의지의 여부를 넘어, 민주화 이후 진행돼온 정치의 사법화·검찰화라는 구조적 흐름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적 승패가 정의와 불의로 전치

대통령선거의 법률가화와 법조인화(法曹人化)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민주화 초기에는 법률가 출신 후보가 단 한 명도 없었으나, 점차 변호사·판사·검사 출신 정치인의 증가를 거쳐,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선 아예 양 진영 모두 법률가들이 최종 후보로 선출되고 경쟁하고 당선되었다. 윤석열 후보는 검사에서 후보와 대통령으로 직진하였다. 그의 등장과 당내 경선 승리와 대통령 당선은 국민들의 반정치·반정당 정서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전 정부에서 보여준 적폐청산 논리와 역할로 반대진영을 제압해주기를 바라는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지금은 여야 대표도 모두 법률가 출신이다. 이제 법률가 경력은 국가공직과 국민대표로 가는 가장 빠른 통로가 된 것이다.

셋째, 관습과 습속, 마음과 태도로서 민주주의 원리의 중대한 후퇴다. 민주주의에서는 민심이 하늘이다. 민심의 지표는 선거이고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이다. 최고 이론과 실천을 보여준 인류 선현들이 하나같이, 민주공화국의 제일 원리를 ‘국민대표 우선’ ‘입법부 우위’라는 일치된 견해를 보여준 까닭이다. 국민대표로 구성되는 입법부 우위의 원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는 국민주권도, 민주주의도, 공화국도, 따라서 민주공화국도 생장하고 번성한 사례가 없다. 국민의 주권과 의견을 반영한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패배한 진영 누구도 선거와 민심을 하늘로 받들지 않는다. 민주선거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내면의 습속과 정치행태에서 민심의 승패는 더 이상 천근의 무게를 가지지 않는다. 문제는 선거 이후에도 합법 대 불법, 정의 대 불의, 유죄 대 무죄의 의식과 대결이 연장된다는 점이다. 두 진영은 물론이고 그들의 지지세력 역시 동일한 의식에 싸여 있다. 우리 진영의 패배는 정의의 패배이자 불의한 세력의 승리일 뿐이며, 선거 승리는 곧 합법과 불법의 준거이기에 칼과 칼잡이의 장악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불의한 패자는 관용과 악수의 상대이기는커녕 국정동반자일 수조차 없다. 구속과 처벌의 요구가 선거와 민주주의를 대체한다. 서로 상대를 볼 때 불법 후보끼리 경쟁한 셈이 되는 것이다. 승리한 자는 합법이 되고 패배한 자는 불법이 된다. 국민적 지지에 따른 정치적 승패가 법적 기준인 합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로 전치가 되는 것이다. 위험한 반민주·반공화의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인간사 일반의 개인 갈등에서조차 송사를 통한 법적 판결은 내면 승복을 하지 않게 만든다. 우리가 법문 이전의 타협과 법 이전의 조정과 합의를 중시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습속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세상만사와 국정을 법대로 처리하려는 마음이다(이 문제와 법치는 다른 것이다. 이 점은 다음에 살펴본다). 군부권위주의 시기 억압과 저항이라는 양자택일의 구도를 지나, 민주주의 실천의 과정에서 항상 어느 정도는 시끄럽고 인내와 관용이 필수적인 대화와 타협에 염증과 짜증이 나자 이제는 공적 조정과 합의 사안들조차 판검사를 통한 일도양단의 승패사회, 우적(友敵)사회로 귀결되고 있다.

실제로 나라정치에서 법률가 출신 정치인들이 양쪽 모두에서 정치 양극화의 선두에 서 있다는 점은, 정치의 사법화가 초래하는 대화와 타협의 실종, 곧 정치 붕괴와 악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의 진영화와 양극화, 사법화와 검찰화는 의회와 정치의 안과 밖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진행되어온 것이다. 국정의 중심 의제와 논란, 심지어 개인 선호와 증오감조차 법무 영역을 맡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앞 정부에서 가장 논란이 된 영역과 인물들은 거의 전부 법무·민정·검찰 부문이었다. 지금도 같다.

대결정치의 악순환 고리 끊어야

문제는 사법주의와 검찰주의가 적용되면 안 되는 국정영역까지 핵심 인사들의 배치가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군부권위주의 이래 처음이다. 대통령실 국가 최고 정무 사안, 일반 관료 인사, 경제와 금융, 국민 권익, 국가 정보, 국무조정 영역에 이르기까지 검찰 출신들이 실로 광범하게 포진해 있다. 규모와 비중 모두 놀라게 된다. 세계 어느 민주국가와 한국 정치의 어느 시기에 이토록 많은 법률가와 검사, 사법주의가 국정의 최고 심부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지 묻게 된다. 이것은 개인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정치의 객관적 현실이다.

그리하여 공적 부문조차 법적 고소·고발과 대응이 폭증하고 있다. 고소·고발의 주체도, 대상도 모두 정부와 정당을 포함한 공공 부문이다. 국가와 공공영역이 권력에 따라 서로 원고와 피고가 되는, 그러다가 선거결과가 바뀌면, 원인 행위와 사법 주체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법절차도 따라서 중단 또는 무화시키는, 희극도 아니고 비극도 아닌, 웃지 못할 가장 반법치적인 희비극이 민주공화국과 법치 시대에 이어지고 있다. 정치를 위해 동원되었던 법과 법률가들, 사법주의와 검찰주의의 극단적인 반법치적·반민주공화적 역기능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고도 법치를 말할 수 있는 법률가들이 있을까? 이는 민주주의는 물론 법치 자체의 중대한 후퇴를 상징한다.

한국의 정치와 국정은 지금 너무도 깊숙하게 입법과 대표의 논리가 아닌, 사법과 검찰의 논리에 침식되어 있다. 문제는 정치의 진영화와 사법화가 상호 상승과 상호 악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진영대결과 사법주의의 동시 강화와 동시 악화를 말한다. 의회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의 생장과 발전을 위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 된다. 선 대 악의 진영논리 확인과 강화를 위한 수단과 통로로서 검찰과 사법이 필요하고, 또 정치적 공존과 타협이 아닌 사법적 승패와 상대 제거를 위해 더욱 정치를 사법화·검찰화하는 대결정치의 상호 악순환인 것이다. 오늘날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사법주의·검찰주의는 진영대결의 귀결인 동시에 원인인 것이다. 그것은 대화와 타협에 실패한 진영정치·진영대결의 의뢰처이자 피난처인 동시에 판정자이자 해결사인 것이다.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에 관한 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기의 의회중심 정치 이후의 진보·보수가, 표면적인 공격과 방어의 횟수나 정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의식과 행태 면에서는 거의 차이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앞 절반의 시기는 적폐청산을 통해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검찰의 권력과 영향력을 키워주었다. 법과 칼을 통해 사람을 자르고 가두고 처벌하는 ‘적폐청산’보다는, 제도개혁과 타협을 통한 ‘적폐극복’이 좋으며 영향이 길고 깊다는 주장은 그들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임기 전반 적폐청산의 성공에 임기 후반 검찰개혁의 실패는 이미 내장된 것이었다. 권력의 일반 논리에 비추어 실패는 불문가지였다. 정치에서 힘의 작용은 자주 물리세계와 같다. 작용을 위해 팽창시킨 힘은 반작용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그것은 물리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권력의 법칙이기도 하다. 나와 우리 진영을 위한 상대 진영 청산을 위해 최대한 키워준 검찰의 힘을, 검찰개혁을 통해 빼겠다는 의도는, 권력의 법칙에 반하는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적폐청산 성공과 검찰개혁의 실패는 한 쌍이었던 것이다. 검찰정권을 산생한 기저는 이미 적폐청산에서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화와 타협, 연립과 연합을 주장하면 두 진영의 답은 같다. “적폐청산 후에!” “처벌 후에!”라는 답변으로 응답한다. “청산 대상과의 대화는 없다.” “최소한 XX는 감옥에 보낸 후에 연합을 해도 해야 한다.” 그러니 양쪽 모두 타자의 처벌과 제거, 자기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대선은 기필코 승리해야 한다. 선거가 사법의, 선거 승리가 처벌 집행과 회피의 통로이자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말을 바꾸면 국민 의사와 민주주의가 실제의 행위자들과 일부 투표자들에게는 검찰권과 사법권(행사)의 통로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부끄럽지만 우리들 내면 의식과 정치 현실의 엄연한 단면이다. 정치의 증발이자 실종이다. 정치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즉 내게 악마처럼 보이는, 생각과 가치가 다른 마성(魔性)과의 계약이라고 본 인류의 가장 고전적인 정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때 계약은 악마 같은, 악마처럼 보이는 나와 다른 사람들 및 집단과의 타협과 공존을 말한다. 즉 정치는 계약인 것이다. 계약은 함께 약속한다, 공유한다, 함께 묶인다는 말에서 연유하였다. 따라서 어느 쪽이든 이탈하면 계약은 파기되고 공동체는 무너진다.

갈등 제도화 실패 ‘약속 정치’ 실종

지금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사회계약의 최고 핵심으로서의 정치계약은 사라졌다. 계약과 약속으로서의 정치를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공화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계약 중의 계약, 최고 계약은 단연 정치계약이다. 그것이 근대와 의회민주주의의 출발이었다. 인류 선현들은 그러한 사회계약·정치계약의 산물을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선출한 대표들에 의한 타협과 계약으로 정치와 나라가 이루어질 때 그것은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요컨대 사회계약과 정치계약의 부재와 파기, 즉 계약과 약속으로서의 정치의 부재와 위축은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와 정치는 이제 사법화와 법적 판결을 통한 구속력을 갖지 않는 한, 어떤 공적인 계약도 약속도 (선거) 공약도 과장이자 선동이며 가짜이자 위선인 사회가 되었다. 이보다 더 뚜렷하게 사회와 정치 계약의 내면적 작동원리와 자율성의 붕괴를 보여주는 것도 없다. 계약은 곧 타협을 말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근대 사회의 대표적 중심 원리의 하나인 이른바 “약속과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정치의 본령인 갈등의 제도화는 곧 (악마와의) 갈등의 상호 엮임과 계약화를 의미한다. 상대를 계약의 대상이 아닌 청산과 처벌의 대상으로 인식할 때 공화와 약속으로서의 정치는 실종된다. 작게는 한국의 의회주의와 정당, 크게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 더 크게는 한국의 민주공화국은 향후 이러한 일도양단의 사법주의·검찰주의로부터 어떻게 거리를 두고 직립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법의 원리는 민주주의와 충돌할 뿐만 아니라, 그조차도 민주공화국의 부분 역할로 존재할 때만 작동 가능하다.

국가는 한 개인과 직위, 한 부문과 조직, 한 논리와 가치가 자기 영역을 넘어 전체로 과대대표되면 반드시 큰 탈이 난다. 특히 견제와 균형 원리를 넘어 다른 부문까지 과도하게 장악하면 그것은 모두 그 조직과 나라 전체의 심각한 위기로 연결되었다. 발전과 번영의 절정에 있던 조직과 나라들도 이 점에서 예외는 없었다. 진영논리와 정치의 사법화·검찰화가 결합되었을 때 정치는 물론 사법 및 검찰, 그리고 끝내는 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이 위험한 이유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을 위해 정치와 국가의 사법화와 검찰화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박명림 교수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 4·3(석사)에 이어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박사)로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래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현상 연구에 천착해왔다. 정치학자로서, 역사학자로서 전쟁과 평화, 생명과 인간, 그리고 국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등이 있다.

박명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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