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주체 따지다…무너져가는 전태일 옛집

김현수 기자 2023. 4. 1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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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했던 시절” 회고한 대구 남산동 집 가보니
위태위태 대구 중구 남산동에 있는 전태일 열사 옛집 본채 처마가 지난 12일 삭아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나무 마루 받치는 벽돌 훼손
처마·지붕 내려앉아 철판 덧대

지난 12일 찾은 대구 중구 남산동(2178-1번지)에 있는 한 허름한 목조주택. 대들보를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기둥에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가 걸려 있었다. 기둥 위 처마(기둥 밖으로 나와 있는 지붕의 일부)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붕괴를 막아보려는 철판과 각목이 군데군데 덧대져 있었다.

나무 마루를 받치고 있는 벽돌도 일부 훼손돼 있다.

이곳은 전 열사가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를 다닐 때인 1963년부터 약 1년 반 동안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옛집이다. 스물두 해의 짧은 생에서 “하루하루의 시간이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 같았다”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회고한 장소이기도 하다.

무너져가는 주택은 집주인이 살던 곳이고, 전 열사의 가족들은 주택 옆 6.6㎡(약 2평) 남짓한 판잣집에서 세 들어 살았다. 지금은 철거돼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낸 전 열사의 옛집이 무너지고 있다. 대구시와 (사)전태일의친구들이 함께 전태일기념관 등의 건립을 계획했지만, 예산 지원 근거가 없어 사실상 사업이 무산돼서다.

2020년 시민 성금으로 매입
시·시민단체, 소유권 등 갈등
기념관 건립사업 무기한 연기

전태일의친구들은 2020년 11월 시민 성금 4억4400여만원으로 전 열사의 옛집을 사들였다. 전 열사의 50주기를 맞아서다. 옛집 매입을 위해 2년여에 걸쳐 시민 3200여명이 5억원에 달하는 기금을 냈다.

시민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전 열사의 옛집을 지켜내자 대구시도 두 팔을 걷어붙였다. 전 열사가 몸을 뉘었던 방을 복원하는 등 최대한 원형을 살려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전시관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1년 5월에는 ‘전태일 옛집,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시민토론회도 열렸다. 이 자리에서 대구시 관계자는 “현재 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예산 지원 체계가 마련돼 있지는 않지만,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있는 공간을 찾고 재생하는 일에 대구시도 함께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시와 시민단체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기념관 건립사업은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예산 지원을 위해 옛집 소유권이 시민단체에서 대구시로 넘어가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운영 권한 등을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송필경 전태일의친구들 이사장은 “최근 본채 지붕이 무너져 천막을 덮어놓은 상태”라며 “전 열사 관련 유일하게 남은 이 건축물이 더 무너지지 않도록 보수공사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열사 관련된 유일 건축물
보수 서둘러 원형 보존을

전 열사는 대구에서 태어나 부산과 서울 등지에서 10번 넘게 이사했다. 그가 살았던 곳은 대구 옛집을 제외하면 재개발과 재건축 등으로 모두 사라졌다. 전 열사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서울 도봉구 쌍문동 판잣집도 마찬가지다.

전태일의친구들은 다시 한번 시민 모금 운동을 기획하고 있다. 옛집 터를 사들이고 남은 성금은 6000만원가량으로, 향후 본채 수리비와 화장실 설비 마련 등을 위해 1억원 정도가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송 이사장은 “다음달 이사회에서 모금 운동과 관련한 안건을 다룰 예정”이라며 “안건이 통과되면 모금 운동 방향 등을 정립해 활동을 시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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