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에 192학점…특수학교엔 너무 높은 벽
응급상황 잦은 장애학생들
대부분 학점 이수 ‘불가능’
연령 상관없는 통합 교육에
학점제 적용 자체가 어려워
지체장애학생이 다니는 특수학교 ‘서울 연세대 재활학교’ 교사들은 최근 고민이 많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 중인 고교학점제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상당수 학생이 3년 만에 졸업을 못할 수도 있다.
고교학점제는 올해 일부 고1 학생을 시작으로 2025년 전면 도입된다. 핵심은 ‘과목별 학점 취득’이다. 졸업하기 위해서는 3년간 총 192학점이 필요하다. 각 과목에서 학점을 받으려면 수업에 3분의 2 이상 출석하고 학업성취율 40%를 넘겨야 한다.
출석과 학업성취율 기준이 느슨해 보이지만 특수학교 학생들에게는 모두 달성이 어려운 과제다. 현장에서 일하는 특수학교 교사와 학부모 등은 장애학생의 특수성을 고려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특수학교 학생들에게는 수시로 ‘응급상황’이 찾아온다. 연세대 재활학교에는 뇌전증을 앓고 있는 학생이 많다. 이 학생들은 약 기운 때문에 지각할 때가 많고, 급히 병원에 가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런데 특정 수업을 반복해서 빠지면 해당 과목의 학점은 ‘0점’이 된다. 주예경 연세대 재활학교 교장은 지난 10일 기자에게 “약을 먹는 경우 1~2교시에 거의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학점 이수가 불가능한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특수학교에서는 ‘학업성취율’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대부분 특수학교는 일반 학교처럼 등수나 등급을 매기지 않고 학생의 성취 수준을 서술형으로 기록했다. 학생마다 장애 정도와 발달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춘경 연세대 재활학교 교감은 지난 11일 “학년에 상관없이 초등학교 내용을 반복 학습하며 공부하는 아이들인데, 성취 수준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대로라면 학생들이 대거 유급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특수학교 A교사는 “장애학생들에게는 절대적 잣대를 들이밀 수가 없어서 학생들의 성취 수준은 파악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특수학교 체계와 여건에는 고교학점제를 아예 적용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대부분 특수학교는 유·초·중·고교 과정을 통합해 운영한다. 교사들은 동시에 여러 학년과 과목을 담당해 고교학점제의 다양한 선택과목을 지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장애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는 외부 강사를 섭외하는 것도 제한적이다.
A교사는 “직업생활, 사회적응 등 지체장애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10여개 선택과목 중 실제 진행할 수 있는 수업은 매우 적다”며 “장애학생들에게는 맞춤형 지원이 중요한데, 이런 환경에서 다양한 수요가 충족된 고교학점제가 운용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13일 “지난해부터 특수학교에서 고교학점제 모델 개발학교와 연구학교를 운영했지만 학교별 편차가 많이 있었던 상황”이라며 “지금은 이전과 같은 평가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2025년 학생 평가에도 고교학점제가 적용되기 전까지 현장 의견을 듣고 내부 규정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출석 일수만 달성하면 최소한의 성취 수준에 도달한 걸로 보는 등 학교와 논의하며 지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도와가겠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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