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 멈췄다…의사⋅병리사⋅응급구조사까지 간호법 결사반대하는 이유
“간호조무사 학력 고졸로 한정해 위헌 논란”
간호사 45만 명 있지만, 병원 근무는 21만 그쳐
“간호사 이미 강자인데, 약자 코스프레”
“간호사 제외한 의료 전문 면허 신뢰성 왜곡”
김진표 국회의장이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상정하지 않고, 다음 본회의로 미룬 것은 이 법안을 두고 의료계가 극심하게 분열하고 있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이날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선 정부와 관련 단체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으니, 여야가 추가적 논의를 거쳐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 달라”라며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 법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업무 규정을 별도 법률로 분리해 간호사 면허와 자격, 업무 범위, 처우 개선 등의 사항을 정한다. 그런데 간호사를 제외한 의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등 의료 관련 전문 직역 단체들이 모두 단체로 반대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이 법이 통과되면 ‘반대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예고까지 했다.
◇ 의협 “간호사 개원 길 열어” 간무협 “조무사 차별”
간호법 갈등의 핵심은 ‘업무 침범’과 ‘차별’에 있다. 의사들이 이 법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간호사들이 의사 없이 병⋅의원을 차릴 수 있는 ‘단독 개원 가능성’에 있다. 간호법 1조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 사회에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고 돼 있다.
의협에서는 ‘지역 사회’라는 문구가 ‘간호사 단독 개원’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번에 상정된 법으로는 당장 개원을 할 수 없겠지만, 향후 기존 의료법에서 간호법이 분리되면, 법 개정 등을 통해 지역 사회 에서 간호사들이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간호조무사들은 간호법이 환자 간호업무를 간호조무사를 배제하는 차별법이라고 본다. 이 법의 취지가 간호인력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것인데 법을 들여다보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구별한다는 것이다. 간호조무사협회 관계자는 “이 법은 간호조무사에 대한 규정은 기존 의료법을 그대로 가져왔다”라며 “간호조무사를 간호사 보조 인력이라고 낮춰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이 법에선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을 ‘간호특성화고 졸업자’ 또는 ‘고졸자로 간호학원을 수료한 자’로 제한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고 본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학력에 ‘상한’을 둔다는 것은 위헌이다”라고 말했다.
간호조무사들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업무 대부분을 조무사가 수행한다고 본다. 국내 간호사 자격 보유자는 45만 명인데, 이 가운데 21만 명 정도만 병원에서 근무한다. 반면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는 80만 명이 넘는다.
◇ 간호사 부족해 아우성인데, 타 영역 침범
임상병리사협회, 응급구조사협회, 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방사선협회 등이 이 법에 공개 반대하는 이유는 간호조무사와는 조금 다르다. 이 직역들은 간호사들이 이미 자신들의 영역까지 들어와 일하고 있으며, 이 법을 만들어 더 자유자재로 넘나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임상병리사는 의·화학적 검사를 통해 의사들의 임상 결정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인력이다. 임상병리사협회는 현행법에서 간호사는 진료의 보조 업무로 검사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이 법이 통과되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일을 빼앗을 수 있다고 본다.
의료법을 제한하는 지금도 일선 현장에서는 임상병리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이 의사 지시에 따라 검사를 하는 일이 만연하다는 것이 이 단체의 주장이다. 이들은 나아가 이 법이 여러 의료 전문 면허의 신뢰성과 전문성을 왜곡해 국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간호 현장에 간호사 인력이 부족해서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는 법을 만든다면서, 간호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임상병리사협회 관계자는 “간호사들이 병원에 부족하다는데, 지금도 정작 정부 기관, 관계 부처, 공기업, 민간 기업 등에 간호사들이 산재해 있다”라며 “간호사들은 이미 강자인데 자꾸 약자 코스프레를 한다”라고도 말했다.
◇ 응급구조사협 “간호사는 이미 기득권…간호제국 안돼”
응급구조사는 사고 현장에서 환자를 구급차에 태워 병원까지 이송하는 업무를 한다. 협회는 구급차 탑승을 두고 현재도 간호사와 직역 다툼이 있는데, 이 법이 통과되면 간호사들의 간섭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응급구조사협회는 “지금도 소방청 행정부서에 간호사 출신들이 자리잡고 관련 정책이 응급구조사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라며 “이 법은 ‘간호제국’의 탄생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응급구조사는 지난 1995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생겼다. 그 당시 구급대원을 구하기 어렵다보니 간호사들을 구급대원으로 채용했고, 이 때문에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 숫자는 3371명으로 응급구조사 구급대원(5256명)의 70% 수준에 이른다.
다만 김영경 간호협회 회장은 이날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응급구조사 등 약소의료직군들은 의사협회의 이간질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의협에 대해서는 “간호법 제정안 내에도 ‘단독개원’이라는 문구는 없다”고 설명했고, 응급구조사 업무침범에 대해서는 “간호사의 구급·응급 업무는 법적 근거(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제10조, 시행령 제11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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