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530km/h로 날면서…골프 홀컵만한 전투기 주유구에 ‘쏙’

김성훈 기자(kokkiri@mk.co.kr) 2023. 4. 1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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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하늘 주유소’ KC-330 급유훈련 동행취재
4500m상공 곡예같은 급유…작전능력 ‘레벨업’
KC-330 공중급유기가 F-15K 전투기와 급유훈련을 하는 모습. [영상제공=공군]
12일 오후 오산 공군기지 활주로.

꼼꼼한 점검을 마친 KC-330 ‘시그너스’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이하 KC-330)가 하늘과 땅 사이를 가른 황사(黃沙) 띠를 뚫고 날아올랐다.

서해 만리포 급유공역에 들어선 기체는 좌우로 몸을 크게 틀면서 공역의 기상 상황을 파악했다. 난기류나 구름이 없어 ‘주유소’를 열기에 가장 적절한 고도를 찾기 위한 것이다. 공군은 공역이 넓지 않은 한국 특성을 감안해 영공에 다섯 군데의 급유공역을 정해 놓았다.

기체가 자리를 잡고 임무를 개시하자 먼 하늘에서부터 손님이 찾아왔다.

공군의 주력 전투기종인 KF-16과 F-15K가 각각 두 대 씩. 전투기들은 KC-330의 양쪽 날개에 바짝 붙어 대형을 이루며 ‘하늘 위 주유소’에 줄을 섰다. 전투기 조종사가 고개를 움직이는 모습이 맨눈으로도 또렷하게 보일 만큼 가까웠다.

공군 KC-330 공중급유기가 KF-16 전투기에 공중급유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제공=공군]
먼저 연료를 넣은 손님은 F-15K 편대였다.

F-15K는 KC-330 뒤편으로 이동해 길게 드리운 붐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윽고 KC-330과 F-15K는 고도 1만 5000피트(약 4500m)에서 290노트(약 530km)로 날면서 지름이 고작 10cm 정도밖에 안되는 급유구를 ‘딱’ 맞췄다.

KC-330 조종사와 공중급유통제사, 전투기 조종사를 비롯한 전체 임무요원들이 호흡이 찰떡같이 맞아 이뤄낸 곡예 같은 장면이었다.

임무를 완성시키는 것은 결국 ‘소통’이다
KC-330을 잡은 엄기수 소령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손님’인 전투기 조종사와 교신하며 위치를 잡아주는 등 급유 진행 상황 전반을 감독했다.

엄 소령은 “공중급유 임무는 다른 항공기와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평소 소통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첨단 군사기술을 현실로 만드는 힘도 결국은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이야기다.

KC-330 조종석 바로 뒤는 공중급유통제사의 자리다. 이들은 KC-330의 공중급유 관련 계통을 책임진다. 이들은 3D 안경을 3차원으로 구현된 화면을 보며 붐 스틱을 조종해 공중급유기와 전투기를 연결한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261공중급유비행대대 소속 공중급유통제사들이 KC-330 공중급유 임무를 수행하기 전 실제와 유사한 공중상황과 급유 조건을 구현한 붐 파드(Boom Pod) 시뮬레이터로 사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제공-공군]
공중급유통제사들은 사소한 실수나 부주의도 대형 비행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비행 전후로 시뮬레이터를 통해 훈련하고 또 훈련한다.

KC-330은 1분에 최대 1360리터의 연료를 전투기에 넣을 수 있다. 하늘에서 전투기 한 대에 연료를 꽉 채우는 시간은 5분에서 10분 사이.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도, 놓아서도 안되는 시간이다.

작은 실수로 큰사고 날수도…훈련 또 훈련
공중급유통제사인 윤한규 상사는 “처음에는 사소한 실수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압박감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윤 상사는 “사소한 것 하나만 무너져도 도미노처럼 큰 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교육 중에 많이 들어왔고, 배우고 익힐수록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훈련을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생겨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약 40분 뒤 공중급유훈련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기내 방송이 나오자, 전투기들은 힘차게 기수를 꺾었고, 영화에서 보던 장면처럼 먼 하늘로 사라졌다.

공군 관계자는 ‘급유구가 연결될 때 기체에 흔들릴 수도 있다’고 일러줬지만 내내 좌석을 오가면서 전투기들을 지켜보면서도 별다른 떨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훈련을 마친 KC-330은 다시 두터운 황사층을 뚫고 내려와 서울공항에 사뿐하게 착륙했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정비사가 공군 KC-330 시그너스가 공중급유 임무 수행을 위해 이륙하기 전 항공기 후미에 설치된 공중급유장치인 붐(BOOM)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공군]
KC-330은 공군 전투기들의 임무반경 확대와 체공시간·무장탑재 능력을 늘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KC-330 전력화 이전에는 F-15K의 경우 독도에서 약 30분, 이어도에서 약 20분 정도만 머물 수 있었다. KF-16 전투기의 경우에는 독도 상공에서 약 10분, 이어도에서는 약 5분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데 그쳤다. 그러나 약 24만 5000파운드(약 110톤)의 연료를 실은 KC-330이 임무를 시작하면서 공군의 효율도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261공중급유비행대대장인 조주영 중령은 “조종사들은 항상 연료에 대해 압박감을 갖고 있는데, 공중급유는 이러한 부담에서 벗어나 봉인의 기량과 항공기 성능을 최대로 발휘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조 중령은 “안정적인 작전 운영과 실전적인 훈련을 통해 상시 결전태세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국격의 현장에 KC-330이 있었다
KC-330은 한국의 국력과 국격을 세계에 보여준 현장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021년 5월에는 코로나19 백신 수송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같은해 8월에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했던 급박한 순간에 카불 공항에 등장해 현지인 특별기여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미라클 작전’ 성공을 이뤄냈다.

뿐만아니다. KC-330은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과 요소수 긴급 공수작전, 튀르키예 긴급구호대·물자 수송에도 어김없이 투입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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