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골든마일 콤플렉스'의 혁신과 서울의 성냥갑 빌딩 [조진만의 건축탐험]
편집자주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공간들과 건축물의 소개와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필자의 시선에 담아 소개한다. 건축과 도시 공간에서 유발되는 주요 이슈들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삶과 시대의 의미도 함께 되새겨 본다.
열대 도시에서 현대성 구현한 건물
철거 논란에 시 당국 '근대유산' 결정
서울도 도시 건물의 역사성 중시해야
싱가포르는 세계 스타 건축가들의 캔버스이자 또 혁신적 건축물들의 전시장으로 우리 지자체장들의 벤치마킹에서 빠지지 않는 도시국가다. 그렇다면 싱가포르의 개성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간척지와 제방을 제외하면 서울 면적과 비슷한 600㎢에 불과한 도시국가임에도 1965년 독립 후 단시간에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그들은 부족한 도시자원을 밀도 있는 도시계획과 개척정신으로 극복해 경쟁력을 갖추었다. 한정된 토지에 필요한 도시적 요소와 수요의 충족을 위해 그들은 고밀도-복합구성-연결성에 선택과 집중을 하였다.
이러한 도전정신이 집약적으로 응축된 건물이 바로 '골든 마일 콤플렉스'(黃金坊)이다. 골든 마일 콤플렉스는 오늘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마리나 베이를 관통하는 번화가 비치 로드에 위치한다. 초창기 주변국 이주민들의 불법 점유 집락에서 1967년 철거 이후 본격적인 개발이 진행되었다. 우리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같은 공공 주택개발국의 주도 아래 싱가포르의 젊은 건축가 세 명이 의기투합하여 설립한 DP아키텍츠에 의해 건물은 1973년 완성되었다.
국토 가용률이 극히 제한된 나라에서 새로운 공동 주거 형식의 모색이 목표였다. 당시 저층 상가밖에 없던 싱가포르에 최초의 주상복합으로 대규모 쇼핑, 업무, 주거가 공존하는 거대하고 혁신적인 건물의 등장은 고도 성장기의 번영을 약속하고 성공적 독립을 상징하였다. 약 1.3㏊의 부지에 411개의 상점, 226개의 사무실, 68개의 주거로 이루어져 있고, 지하 1층 지상 16층 89m의 높이를 가진다. 주민들은 독특한 형태를 이유로 골든 마일 콤플렉스를 '타자기 빌딩'이라고 칭한다. 단면도와 같이 최상부는 마리나만을 조망하는 층층 테라스 형식의 주거공간, 중층부는 테라스 휴게공간을 가진 업무시설, 하부는 아트리움 형식으로 거대한 상업공간이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만나 소통과 휴식 및 사교 활동을 위한 내외부 공공영역과 테라스 등이 있다.
이 건축이 특별한 것은 싱가포르 같은 열대기후 속 밀도 높은 좁은 도시에 최적화된 새로운 현대성의 구현이라는 점이다. 쾌적한 통풍, 일조의 여과, 비로부터 자유로운 실내 보행 등을 강조하며 건물이 마치 하나의 압축된 도시로서 작동하고 있다. 이렇게 시대의 도시-사회적 야심을 집약적으로 건축화하려는 도전정신은 오늘날 싱가포르에 세워지는 여러 혁신적 건축의 모태가 되었다. 방문해 보면 일견 메가 스트럭처 본연의 차가운 외관과는 상반되게, 내부 공간은 실로 푸근한 휴머니즘과 긍정적 이상주의가 낭만스럽게 펼쳐진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유명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는 "많은 건축가가 당시 이상을 바탕으로 이론적으로 수립한 도시적 건축을 성공적으로 구현해 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지어진 지 반세기에 들어서며 노후화와 정비 문제로 인해 건물은 급격히 황폐해졌다. 전면 재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여러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던 중 2018년 소유자들의 80%가 일괄매각에 합의함으로써 철거 쪽으로 기우는 듯했으나, 매각에 실패한다. 이 주옥같은 건축물을 구하기 위해서 보존과 개발을 양립하게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여러 사회적 논의를 거듭하며 2021년 도시재개발국은 싱가포르 정부에 근대유산 지정과 보존을 권유하였고 이듬해 정부는 이를 승인한다. 건축이 도시 속에서 작동하면서 오랜 시간 형성한 공동체의 가치와 집합적 기억의 저장소로서 보존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강압적인 보존이 아니라 기존 건물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인접 부지에 추가 30층의 용적률을 허용하고 개발에 부과되는 세금 감면 등 각종 상생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려 깊은 해법을 제공하였다.
서울시도 최근 성냥갑 건축을 비판하며 디자인이 혁신적인 건축물이 많이 생기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해 눈길 확 끄는 형태적인 새로움도 좋지만, 도시가 내재한 역사성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모(某) 도시처럼'이라는 접두사 없는 혁신 건축을 싱가포르의 선례에서 기대한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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