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성공해야 중국서 성공한다”...한국에 진심인 이 기업
韓소비자 섬세하고 까다로워
브랜드 성장시키는데 큰 도움
최근 방한한 세바스티안 라젤 덴비 최고경영자(CEO)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한국 소비자는 전 세계 어떤 소비자보다도 트렌드에 민감하고 세련됐다”며 “아시아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한국에 법인을 설립했던 이유”라고 말했다.
1809년 영국 더비셔 지방에서 시작된 영국 프리미엄 테이블웨어 브랜드 덴비는 2015년 처음 한국에 상륙했다. 국내에 들어온 지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덴비의 한국 매출은 전 세계에서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덴비 입장에서는 한국이 가장 크고 중요한 해외 시장인 셈이다.
라젤 대표는 덴비가 한국에 온 2015년에 이 회사에 합류했다. 직전까지는 글로벌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에서 25년간 마케팅과 브랜딩 등을 총괄했다. 그는 소비재 기업에서 글로벌 마케팅을 전개할 때부터 한국 시장을 눈여겨봤 다. 라젤 대표는 “마케팅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아시아 시장 중요도는 중국, 일본, 한국 순이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순으로 바뀐 지 오래”라며 “업계에서는 한국 시장에서 먼저 성공을 해야 중국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법칙’ 같은 게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 소비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이 어느 시장보다 빠르면서도 품질과 디자인에는 무척 민감하다”며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키기가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브랜드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라젤 대표에게는 2015년 법인 설립 후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거치는 일종의 ‘의식’이 있다. 한국의 가정집을 방문해 찬장을 열어보며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는 덴비의 총괄 디자이너와 함께 수차례 한국 가정집을 찾아 찬장에 배치된 그릇 종류를 살피고, 한국인과 함께 식사를 하며 상차림을 어떻게 하는 지 꼼꼼히 관찰했다. 이후 반찬을 담는 작은 접시와 국그릇·밥그릇은 물론, 떡국·라면·냉면 같은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깊은 그릇까지 ‘한국 전용’ 제품을 선보였다. 덴비는 신규 제품군을 출시할 때마다 꼭 한국 전용 제품을 별도 제작해 한국에 먼저 공개한다. 자연을 모티브로 최근 출시한 제품군인 ‘킬른(KILN)’ 역시 한국 전용 제품 5종을 별도로 준비했다.
라젤 대표는 “주로 큰 접시를 사용하는 서양과 달리 한국에서는 깊은 그릇과 반찬류를 덜어 담는 작은 접시가 많이 쓰인다”며 “한국용 제품은 한국에 먼저 선보인 후 수요에 따라 다른 국가에서도 판매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 영국에서도 관련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반찬용 접시의 경우 유럽에서는 올리브나 견과류 등 맥주·와인과 곁들일 간단한 음식을 담는데 많이 쓰인다. 라면용기와 국그릇 등은 사실 서양 요리에서의 활용도는 낮은 편이지만, 한국 문화와 음식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영국 가정에서도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특히 킬른의 디자인은 한국 도자기와 매우 닮아있다. 덴비의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모양을 적용했다. 라젤 대표는 “한국은 ‘여백의 미’를 알고, 특히 음식을 그릇에 아름답게 담을 줄 아는 나라”라며 “한국의 가정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도자기 디자인과 로컬 디자이너 작품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는데, 이번 신제품도 상당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덴비는 지난 2021년 전 세계으로 유명해진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중 만찬 장면에 등장하면서 영국 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라젤 대표는 “영국의 대표적인 테이블웨어 브랜드가 한국에서 만든 유명한 드라마에 등장한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면서 텔레그래프 등 현지 주요 매체에서 분석 기사를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덴비가 한국에 법인을 설립해 서울 강남에 사무실이 있다는 것까지 세세하게 다룰 정도로 영국 내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졌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덴비를 비롯한 테이블웨어 기업은 많은 수혜를 입었다. 외출을 삼가는 대신 ‘집밥’을 즐기는 문화가 생겼고,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라졌지만 라젤 대표는 “이제 거리두기가 해제됐지만 당시 사람들이 갖게 된 관심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며 “테이블웨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만큼 덴비도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새봄 기자
△1963년 출생 △영국 옥스포드대 영어영문학 학사△1985년 유니레버 글로벌 마케팅 담당 △2008년 호주 유니레버 홈케어 비즈니스 부문 CEO △2015년 덴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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