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칼럼] 아이 대신 강아지 키우는 나라

2023. 4. 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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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요즘 저출산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니면 나오기 어려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낮은 출산율이어서 미 CNN 등 외신도 관심 있게 보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저출산 대책과 관련한 기발한 정책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저출산의 책임에 대한 정치적 공방도 벌어지고 있다. 저출산 문제로 정치권을 포함해 온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심각성을 인식한 것이므로 꼭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출산율이 1%대 초반으로 떨어진 지 10여년이 흘렀고 1% 아래로 추락한 지 5년이 지난 이제 와서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만시지탄의 느낌이다. 우리보다 일찍 저출산 고령화 현상을 겪은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은 출산율이 1%대 중반에 다가설 때부터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저출산 대책을 꾸준히 추진해 출산율 제고에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가 5년 임기 내 성과를 볼 수 있는 과제도 아니고, 당면 현안에 매몰된 탓에 역대 대통령이나 정부에서 지속적이고 뚜렷하게 추진한 흔적을 볼 수 없다.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반기인 2006년 8월에 '비전2030 희망 한국'이란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지만 그마저도 정권교체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동안 280조원이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물론 280조원의 저출산 예산에는 저출산과 별 상관없는 예산도 저출산 명목으로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출산율 제고에 성공한 선진국과 달리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성과를 내지 못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저출산 대책은 과거 실패에 대한 처절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저출산이 초래된 원인은 크게 경제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으로 나뉜다

경제적 요인으로는 취업이나 주택 문제, 자녀의 교육(특히 과도한 사교육비 문제)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 또는 출산을 기피하는 경우다. 여성의 경우 육아, 보육, 출산 시 경력단절 문제나 출산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주된 요인이다. 사회적인 분위기나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저출산에 영향을 미친다.

지나친 경쟁 사회로 인해 내 자식이 경쟁에 밀리지 않게 한 명만 낳아 금이야 옥이야 키우거나, 아예 부담이 적은 애완동물로 자녀를 대신하겠다는 것이 젊은 세대의 풍조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다자녀를 낳아 기른 베이비 세대들은 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자녀를 위해 장시간 근로도 감수해 온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자녀보다 자신의 삶의 질에 더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갈수록 잠재성장율이 떨어지는 저성장 시대에 실업이나 노후에 대한 준비 부족과 미흡한 사회안전망도 미래에 대한 불안요인으로 출산을 기피하게 한다. 이처럼

저출산은 복합적 요인과 젊은 세대의 변화된 가치관이나 풍조에 기인한 만큼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저출산 대책은 출산의 주체인 젊은층의 시각에서 마련돼야 한다.특히 남성보다 여성이 출산에 더 소극적인 원인을 파악해서 이를 해소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보다 일찍 저출산 대책을 추진해 성공한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 마킹할 필요도 있다. 그동안 효과가 없던 이유 중 하나가 각 부처가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출산 대책을 앞다퉈 내세워 예산을 나눠먹기식으로 집행한 결과다. 결국 예산만 낭비했다. 따라서 효과가 검증된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출산율이 3명이 넘는 이스라엘의 경우 보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방침 하에 이 부분에 예산을 집중 투입했다. 물론 출산은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국민의 신성한 의무라는 사회분위기도 큰영향을 미쳤다. 출산율 제고에 성공한 선진국의 경우 대체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도 높은데, 이는 출산 여성을 위한 국가적,사회적인 배려가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출산 시 보육이나 경력단절 문제 뿐 아니라 채용이나 근무 시 여성이나 출산 여성에 대한 유무형의 차별로 인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도 낮다. 출산율도 떨어진다.

따라서 출산율 제고 대책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기 위한 보육 지원이나 직장 내 출산 여성에 불리한 각종 유무형의 차별을 해소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미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중장기적 경제사회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해 국민들께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처럼 출산이 국가 존립과 미래 세대를 위한 국민의 의무라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 전반에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부터 출산율 제고에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령화시대 은퇴한 젊은 노인들을 보육 지원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면 좋을 듯 싶다. 노후의 보람있는 삶과 노인빈곤율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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