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농사를 지으며 또 하는 고민

한겨레 2023. 4.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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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감자, 봄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양파, 마늘 등이 차례로 나란히 심어져 있는 우리밭. 모든 작물을 제철에 심고 비닐 멀칭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원혜덕 제공

[삶의 창]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봄이다, 하고 말하면 의아해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이미 여름이 온 것 같은 날씨가 이어지니 말이다. 내가 사는 지역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작물을 한창 심는 지금이 봄이다.

봄에 가장 먼저 밭에 심는 작물은 감자다. 해마다 설이 지나면 제일 먼저 씨를 붓는 것은 고추지만, 고추는 모종으로 오래 기르는 작물이라 아직 모종하우스에 있다. 한달 전에 심은 감자 뒤를 이어 봄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쌈채소 등을 모두 밭에 내다 심었다. 얼마 전 토마토도 비가림하우스에 옮겨 심었다. 추위에 약해 마지막 서리가 내린 뒤에야 밖에 내다심을 수 있는 고추, 오이, 호박, 참외, 토란 등은 아직 모종하우스에 있다.

가장 늦게 심는 작물은 들깨와 콩 종류다. 지난가을 심은 밀, 보리, 양파 등을 초여름에 수확하고 난 뒤 그 자리에 그루갈이로 심는다. 늦게 심어도 그해 가을 거둘 수 있는 작물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 넓은 밭을 갖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 농부들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남편과 내가 유기농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지켜온 원칙이 있다. 모든 작물은 제철에 심는다, 는 것. 요즘 채소나 과일은 철이 없다. 채소는 말할 것도 없고, 6월이 돼야 익는 딸기는 12월부터 나오고 7월은 돼야 빨갛게 익는 토마토 역시 한겨울에도 나온다. 본래 모든 채소는 봄이 온 뒤 밭에 심을 수 있었다.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는 밀과 보리, 양파, 마늘도 있지만 대부분 봄에 심었다. 비닐하우스도, 가온 시설도 없으니 모든 작물을 제철에 심고 제철에 거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철을 가리지 않고 온갖 채소가 1년 내내 나온다. 추우면 난방을, 더우면 냉방을 해주면서 채소와 과일을 기른다. 겨울에 수확하면 가격도 높고 수확기간이 길어져 경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다. 그래도 우리는 모든 작물을 제철에 기르기로 했다. 농사에 에너지를 전혀 쓰지 않을 수는 없으나 겨울철에 작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는 게 남편의 생각이었고, 늦게 농사에 합류한 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다음 걸리는 문제가 비닐 사용이다. 농가에서 많이 쓰는 플라스틱은 주로 비닐이다. 현대에 와서는 비닐을 전혀 쓰지 않는 농사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도 우리 집 경제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토마토를 기르려고 비가림하우스를 지었다. 처음에 노지에 2년 연거푸 심었는데 장마가 들자 비가 올 때마다 잎이 한단씩 망가지더니 결국 다 죽었다. 집에서 먹기 위해 조금 심을 때는 괜찮았는데, 판매하려고 많이 심고 긴 장마를 만나면 망가진다.

비닐 멀칭을 하면 보온과 보습이 좋아져 수확량이 늘어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초 때문이다. 관행농업에서도 비닐 멀칭을 하지만, 농약과 화학비료를 치지 않는 친환경 농사를 하는 이들도 제초제를 치지 않는 대신 비닐을 선택한다. 유기농업은 풀과의 전쟁이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지 않아 수확이 줄어드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김매는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남편과 나는 비닐 사용을 고민하다 기준을 세웠다. 최대한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하기로. 어느날 갑자기 정했다기보다는 여러해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와 합의한 결과다. 감자는 한여름 전에 수확하니 비록 알이 잘게 들더라도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다, 양파와 마늘도 한여름 전에 수확하니 비닐 멀칭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한여름에 밭에 서 있어 풀의 기세를 감당할 수 없는 작물은 비닐 멀칭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비닐 멀칭을 하는 작물은 한여름까지 길러 수확하는 토마토와 늦가을까지 수확하는 고추 두가지다. 농사지으면서 피할 수 없는 비닐 사용을 줄이려고 이렇듯 조금은 노력해보는 것이다.

자연에서 자라는 개나리나 목련은 이렇게 제 때가 되어야 꽃이 핀다. 원혜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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