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다시, 싱가포르 판타지

한겨레 2023. 4.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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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11년 전에도 싱가포르 판타지는 또렷했다. 그때 ‘다문화반대카페’ ‘일간베스트저장소’ 등 온라인 극우커뮤니티 담론은 명확히 싱가포르 같은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다. (…) 그래도 차별을 선동하는 주장이 적어도 온라인 극우커뮤니티 바깥에는 많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거의 모든 온라인 공간에서 “싱가포르 같은 나라로 가자”는 목소리가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국노총 전국연대노동조합 가사·돌봄유니온에 속한 가사 노동자들이 가사근로자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방준호 기자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믿기 어렵겠지만, 11년 전 나는 지금 이 내용의 칼럼을 쓰게 될 것을 예감했다. 18대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3일 새벽 4시26분, ‘싱가포르 판타지’라는 제목의 칼럼을 <한겨레>에 보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근혜 캠프 공약이 지향하는 사회는 싱가포르와 가장 닮았다.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더없이 청결하고 범죄율도 낮은 사회지만, 중국·북한에 비견될 만큼 민주주의 및 인권 지표가 처참한 사회다. 많은 한국인이 그 나라를 ‘바람직한 사회’라 여긴다. ‘우리 안의 싱가포르 판타지’가 박근혜의 힘이다.”

송고하자마자 나는 훗날 언젠가 같은 제목의 글을 다시 쓰게 될 거란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건 나중에 만들어진 기억이 아니다. 칼럼 쓸 때 정리되지 못한 감상을 메모하는 습관 덕에, 나는 그날 왜 그렇게 느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싱가포르 판타지는 끈질기게 귀환할 테니까.”

마침내 그날이 왔다. 시대전환 조정훈과 10인의 의원은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최저임금 적용에서 배제하자는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을 발의했다. 싱가포르식 최저임금 차별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국민의힘 박수영·서정숙·유상범·전주혜·조은희·최승재·최형두·태영호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이정문 의원이 공동발의했다. 당연히 논란이 불거졌고 민주당 의원 두명은 슬쩍 발을 뺐다. 하지만 조정훈은 권성동·조수진 의원을 추가해 재발의했다.

저런 법을 대다수 선진국이 도입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인간이 평등하게 존엄하다는 인류의 합의를 부정할 뿐 아니라, 자체로 국제노동기구(ILO) 주요 협약의 실질적 위반이기 때문이다. 조정훈들은 ‘자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및 출산율 제고’를 내세웠다. 과거 홍콩과 싱가포르의 입법 취지와 똑같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신통찮았다. 홍콩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은 되레 떨어졌고, 싱가포르에서 여성 경제활동은 늘어났지만 출산율은 변화 없거나 오히려 감소했다.(‘가사분야 외국인력 도입의 쟁점’, IOM 이민정책연구원, 2015)

오세훈 서울시장도 2022년 9월 싱가포르식 가사도우미를 도입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런 법안들이 이유 없이 잇따라 나올 리 없다. 한마디로 ‘외국인 노예’를 쓰고 싶어 하는 한국인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 ‘열망’을 절감한 계기는 또 있다. 조정훈 법안을 비판하는 어떤 토론에 달린 댓글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이 오히려 외국인 때문에 차별받는다. (…) 국제노동기구 탈퇴하자. 우리나라 국민에게 이득이 없다.” 유료 구독서비스임에도 그는 이 댓글 하나를 달기 위해 굳이 가입했고, 엄청나게 많은 추천을 받았다.

저 말대로 국제규범으로부터 이탈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국제사회가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가만히 지켜볼까? 그럴 리가. 외국인노동착취·인권탄압 국가로 낙인찍힐 테고 이는 교역과 평판으로 먹고사는 나라에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실현되기 어렵고 실현돼서도 안 될 망상이다. 그렇다고 마냥 웃어넘기기도 찜찜하다. 확실한 것은 이런 제도가 자꾸 언급되는 것 자체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점이다.

11년 전에도 싱가포르 판타지는 또렷했다. 그때 ‘다문화반대카페’ ‘일간베스트저장소’ 등 온라인 극우커뮤니티 담론은 명확히 싱가포르 같은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다. 박근혜의 대선 공약은 이를 정치 언어로 순화시킨 것으로, 요약하면 ‘극단적 물질주의와 강력한 권위주의의 결합’이다. 그런데 당시는 공공연히 차별을 선동하는 주장이 적어도 온라인 극우커뮤니티 바깥에는 많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거의 모든 온라인 공간에서 “싱가포르 같은 나라로 가자”는 목소리가 노골화하고 있다.(이런 현상의 근본 배경에 관해서는 졸저 <한국의 능력주의> 중 ‘싱가포르와 한국, 그 닮음의 의미’ 참고)

사실 우리에겐 기회가 있었다. 박근혜를 몰아내기 위해 촛불을 들었을 때, 단지 대통령 박근혜를 넘어 ‘박근혜적인 것’과 결별할 수 있는 문이 어느 때보다 크게 열렸다. 그러나 우리는 끝내 문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저 민주당에 정권을 헌납하고 말았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박근혜는 떠났지만 ‘박근혜적인 것’은 더욱 강성해져 귀환했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박근혜적인 것’이라기보다 독재자 리콴유가 좇았던 것, 바로 ‘박정희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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