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해독능력 길러주는 `미디어 닥터`… "때론 멍때리는 것도 좋은 훈련이죠"

김나인 2023. 4. 13. 18: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NS·챗GPT 잘 다루는 것보다 생각하고 성찰하는 훈련 필요
교육공간 늘어도 인력 부족… "미디어 통한 자신의 삶 찾아야"
안정임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나인 기자
안정임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나인 기자

'미디어 리터러시' 전문가 서울여대 안정임 교수

"'안나 카레니나' 영화를 요즘 미디어 소비 형태처럼 세 줄로 요약해 달라고 하면 유부녀가 젊은 연하의 남자를 만나 불륜을 저지르다 자살한 이야기잖아요. 톨스토이가 이 책을 1800페이지에 걸쳐 썼거든요.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있는데 다 생략해 버리는 거죠."

촉촉한 봄비가 땅을 적시던 지난 5일. 봄기운이 어린 교정이 한눈에 보이는 연구실에서 만난 안정임(62·사진) 서울여자대학교 교수(언론영상학부)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핵심은 기술 습득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 TV 시청자 세상'을 진행하기도 한 차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안 교수는 국내 '미디어 리터러시' 대표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남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EBS(한국교육방송공사) 이사,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정보커뮤니케이션분과 위원, 미디어교육위원회 위원장,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텔레비전이 파급력 강한 미디어였던 시대와 달리 메타버스, AI(인공지능) 같은 기술이 등장하면서 '삶의 통로'가 되는 미디어가 가상공간까지 뻗어가고 있다. 인터넷에 이어 '챗GPT'라는 새 기술 도구의 인터페이스와 플랫폼을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리터러시'는 '문해력'으로 번역된다. 한 마디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챗GPT를 업무에 잘 활용하는 회사원이나 '유튜브'를 익숙하게 쓰는 크리에이터들이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갖췄다고 볼 수 있을까.

안 교수는 "챗GPT, 키오스크 같은 기술과 기계를 능숙하게 쓸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만이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가 아니다. 유튜브를 잘 활용하고 다양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쓰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폭력으로 고통받아 삶이 무너지는 일이 많다. 기술 습득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성찰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정과제인 '전국민 생애주기별 맞춤형 미디어 교육 강화'의 일환으로 지난달부터 시청자미디어재단과 전국 10개 지역 500여 기관에서 미디어 교육 지원을 시작했다. 그간 코로나19로 '개점휴업' 상태였던 미디어 교육 관련 센터들이 최근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며 교육을 펼치고 있다.

재단 이사이기도 한 안 교수는 정부와 기관의 미디어 교육 투자를 환영하면서도 통합된 총괄체계를 둘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미디어 관련 센터가 전국에 수백 곳 생기고 정부가 소외계층에 대한 접근성 향상 지원도 많이 하고 있다"면서도 "대부분의 역할이 중복되다 보니 예산과 인력 낭비로 이어지기도 한다. 관련 부처들이 각각 사업을 만들 게 아니라 종합적인 협의체를 만들고 힘을 모아야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에 이어 교과 과정에 디지털 리터러시가 들어가면서 교육부까지 관여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가르칠 사람이 없는 문제"를 꼽은 안 교수는 "관련 기관들이 물리적 공간인 센터에 수십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안을 채울 SW(소프트웨어) 인프라인 인력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발전 속도는 팽팽 빨라지는데 속도를 따라잡기 쉽지 않다"면서 "챗GPT나 AI, 신규 미디어 같은 특정 영역은 기존 교사들도 습득하기 어려운 만큼 가르치는 이들에 대한 재교육이 필수"라고 밝혔다.

과거와 달리 단순히 물리적인 나이별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뤄지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초등학생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이 오히려 온라인에서 얻는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굉장히 신중한 면이 있다"며 "성인, 노년층이 허위 정보에 더 취약하기도 하고 개인정보 노출은 세대를 불문하지 않는다. 개인이 활용하는 미디어 이용 행태를 분석해 세대를 아우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개인이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지만 플랫폼을 운영하는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의 책임 또한 강조했다. 그는 "새 기술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개인들이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데 이를 만들고 퍼뜨려 돈을 버는 기업은 아무 규제도 받지 않는 것은 불공정하다"면서 "정부가 ICT 기업에 책임을 촉구하고 감시와 규제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혼자 일일이 방어하는 과정에서 무너지는 개인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미디어가 삶의 보완재가 아니라 필수재인 시대, 플랫폼의 인터페이스에 따라 삶의 형태가 바뀌고 개인의 자산은 모두 빅데이터로 돌아가는 시대에서 어떻게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할까. 안 교수는 일정 기간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휴식하는 '디지털 디톡스'를 처방했다.

"우리가 '혼밥'이라고 하지만 무언가를 시청하면서 밥을 먹는 건 진정한 혼밥이 아니에요. 식사를 할 때 먹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거나 명상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모두가 관심을 끌려고 하는 '어텐션 이코노미'에 소진돼 지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경험 자체를 누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