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약한 리더 … 北실권 쥔 군부, 경협아닌 미군철수 원한다"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평양에서 주북한 대사를 지내면서 내가 깨달은 첫 번째는 북한의 리더십은 '일치단결'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일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김정일 체제에서도 반대 목소리는 있었다. 강경파들은 인도적 지원과 외국인 투자에 반대했다. 그들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들이 북한을 오염시키기 위한 계략이라고 간주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외국인 투자에 합의했지만 2008년 북한은 신년 사설에서 이를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자회담에서 만난 한 북한군 장성은 나에게 "김정일 위원장이 일을 진행하도록 놔두면서 잘 지켜보고 있다. 필요하다면 우리의 이익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8년 여름 김정일이 쓰러지고 나서 2016년 초까지는 북한이 가야 할 방향을 놓고 지도부에서 서로 대립하는 과도기였다. 그리고 2016년에 들어서면서 북한에 강경파가 득세했다. 가장 영향력 있던 중도파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가 이무렵 사망하자 2016년 5월 북한 제7차 당대회 때 군과 선전부 등에서 강경파가 권력을 쥐었다. 특히 군의 영향력 증대는 놀라울 정도였다. 김양건이 맡았던 통전부장 후임으로 대남 무력도발 총책임기관인 정찰총국의 총국장이자 강경파의 대표주자인 김영철 대장이 임명된 것은 이제 군이 남측을 상대할 것이며 사회주의 국가 건설도 군이 책임질 것이라는 명백한 신호였다. 경제개혁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이때까지 김정은은 그의 아버지보다 훨씬 약한 리더였다. 때로 그는 정권 내 암투에 압도된 듯 보였고, 의사결정 체계를 제대로 통솔하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북한의 의사결정권을 장악한 강경파들은 정치적 목적을 경제적 목적보다 더 중요시한다. 특히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선택했다. 북한은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이후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을 포기해야만 비핵화 문제가 진전될 수 있다는 말을 그 어느 때보다 자주 했다. 북한 관리들에게 '적대시 정책 종식'이라는 슬로건의 정의를 물을 때마다 대답은 비슷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의 한반도 철수가 1순위, 제재 해제가 후순위였다.
과거 북한과의 협상은 본질적으로 평양이 외부의 침략을 억지하고 외압에서 자국을 보호하기를 원한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안전 보장, 제재 해제를 포함한 경제발전 청사진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러한 합의는 핵을 포기시킬 수준이 아니었다. 미군을 축출하고, 남한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북한에 대한 정치적 종속을 강요하려는 의도는 협상으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북한의 집권 강경파는 인도적 지원, 외국인 투자, 특별경제구역 및 기타 여러 형태의 경제협력을 기회가 아니라 체제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독일 통일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남한의 존재 자체를 영구적 리스크로 여긴다. 따라서 그들은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제재 완화를 포함한 경제적 유인책에 절대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온건파가 어느 정도 통제권을 되찾은 후에야 평양이 다시 경제개혁, 개방, 비핵화를 향해 나아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더욱이 북한은 장기적으로 사고한다. 협상장에 약한 고리가 나타날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릴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거듭 의문을 제기하고 자만심이 강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자신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트럼프를 미 행정부 내에서 가장 약한 연결 고리로 간주했다.
북한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미·일 관계 이간질이나 주한미군 철수 개시)에 진전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평양은 2024년 말 공화당이 승리하면(트럼프가 있든 없든) 북한이 한반도에서 미군을 제거할 두 번째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평양은 2025년까지 기다렸다가 미국과 다시 관계를 맺는 한편, 그동안 긴장을 계속 고조시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경제적 손해를 감내하더라도 정치 및 군사적 목표를 우선시할 것이다.
그래서 북한과 대화에 진전이 없더라도 한·미·일 3국은 단결된 모습으로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낼 것을 제안한다. 유인책과 비판을 동시에 하는 '비판적 관여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획일적이지 않다. 합리적인 국제적 접근이 평양의 균형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세우는 제안은 북한과의 관계를 더 건전한 기반 위에 두려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줄 것이다. 이런 이니셔티브를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거나 북한이 거절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중단해서는 안 된다. 성사되지 않더라도 북한의 내부 선전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한예경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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