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당정 협의? 여당 지시?
총선 1년 앞두고 정책 키 잡아
정부와 엇박자도 문제지만
일방 독주는 더 큰 부작용 초래
여의도 국회에선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당정협의가 열린다.
근로시간 개편, 공공요금 인상, 학교폭력 근절, 노조회계 투명성, 양곡관리법, 소아응급진료, 간호법·의료법 등 최근 보름 동안만 해도 쉴 새 없이 당정협의가 진행됐다. 어떤 날은 몇 개의 주제를 패키지로 묶어 논의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법률안과 예산안을 수반하지 않는 정책도 모두 당정 간에 긴밀하게 협의하라"고 지시한 뒤 나온 진풍경이다.
이번 주엔 대학가 '1000원 아침밥' 확대가 당정협의를 통해 발표됐다.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경희대학교를 방문해 직접 식사를 해본 뒤 예산 지원 대상을 대폭 늘리도록 정부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협의만 한 채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등장한다.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 논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인상안을 들고 국민의힘을 만났지만 여론 악화를 의식한 여당의 반대에 직면해 발표가 전격 보류됐다.
당정협의 백태는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과 무관치 않다. 정부 부처보다는 여론 풍향에 민감한 정치권이 정책 주도권을 쥐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로시간 개편 논의 때 고용노동부가 주도했던 입법 논의가 기폭제가 됐다. 주당 최고 근로시간이 69시간까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면서 MZ세대의 반발을 샀고, 여권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자 사실상 정치권의 '사전 허락'을 받아 정책이 추진되는 프레임이 고착화된 것이다.
2년 전 이맘때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했다. 대통령 선거를 1년 정도 앞두고 몸이 단 여당(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당정협의'가 아니라 사실상 '여당 지시'를 서슴지 않았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재난지원금을 마구잡이로 늘리려는 여당에 맞서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재정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며 나 홀로 고군분투했다. 국회에 출석하면 여당 의원들에게 "당신은 어느 당의 부총리냐"는 얘기를 들었고, 심지어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는 말도 들었다. 그해 말 19조원 규모의 세수 추계 오차가 났을 때는 여권에서 "재난지원금을 풀기 싫어서 고의로 세입을 축소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결국 홍 부총리는 여당에서 쏟아진 재정 지출 요구를 막지 못했고 홍백기(홍남기+백기투항)라는 자조 섞인 닉네임만 남긴 채 쓸쓸하게 퇴장했다.
당정이 엇박자를 내며 정책 혼선이 초래되는 것도 문제지만, 선거를 1년도 채 안 남긴 시점에서 정책 주도권이 정치권의 일방 독주로 넘어가는 것도 되짚어봐야 한다. 국민적 합의가 쉽지 않고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한 이슈일수록 더욱 그렇다. 여론의 눈치를 너무 보면 노동, 교육, 연금 등 개혁 과제들이 속도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건드리는 것보다는 한마디로 "덮고 가는 게 더 낫다"는 정략적 판단이 득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 관가에서는 "공무원들은 5년 뒤를 내다보지만 정치권은 1년 앞만 바라본다"고 푸념한다. 반면에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민심을 제대로 못 읽는 복지부동 관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은 과연 '탁상공론'인가, 아니면 '소신행정'인가. 정치권이 정책 결정의 키를 잡으면 국민 여론이 정말로 정확하게 반영되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만 양산할 뿐인가.
'입법 독주'와 '여당 지시'가 극에 달했던 2021년, 마구잡이 재정 지출로 국가채무는 1년 만에 124조1000억원이 늘어나며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그 이듬해 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 결과는 국민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그대로다.
[채수환 경제부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나라 망신 다 시키네”…속옷차림으로 서울 활보한 싱가포르女 - 매일경제
- 라인 밟고 삐딱하게 세웠네…‘주차빌런’ 점잖게 응징한 경차 - 매일경제
- 숙소 물 120톤 쓴 중국인 “자꾸 연락하면 대사관에 말하겠다” - 매일경제
- “200만잔이 팔리다니”…스타벅스 ‘역대급 인기’ 이 음료의 정체 - 매일경제
- “57억 꾸물대면 다 없어져”…로또복권 1등 당첨자 2명 ‘미스터리’ - 매일경제
- “하루 한 끼도 못 먹는데”…‘김일성 생일’에 동원된 北 주민들 - 매일경제
- 與, 홍준표 당 상임고문 ‘해촉’…洪 “엉뚱한 데 화풀이한다” - 매일경제
- [단독] 檢압수수색 다음날…이재명, 인천 의원들과 오찬회동 - 매일경제
- “내가 봐둔 급매물 사라졌네”...헬리오·엘리트 ‘억’단위 상승 거래 - 매일경제
- 나폴리, 김민재와 이별 준비…포르투갈 유망주 주목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