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메이크 인 인디아’ 韓 반도체·디스플레이 소부장에 기회”… 인도 베단타가 보낸 러브콜
“한국 소부장 경쟁력 인도에 꼭 필요”
“한국서 사양산업 된 LCD, 인도선 훨훨 날아”
韓 업체 투자 유치 위해 인도 정부 관계자와 방한
국가 경제 안보의 핵심인 반도체를 두고 세계 주요 국가 간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인도도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인도 정부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앞세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고 글로벌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에 손을 내밀고 있다. 세계 인구 1위 국가로 내수 시장이 거대한 인도는 연 1000억달러(약 131조원) 규모의 전자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2030년까지 이 중 일부를 인도에서 생산해 자급자족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게 인도 정부의 목표다.
‘메이크 인 인디아’ 프로젝트에 앞장선 기업은 인도 최대 천연자원 개발사인 베단타 그룹이다. 석유, 가스, 구리, 재생에너지 및 디스플레이 유리 등을 생산하는 베단타 그룹은 전 세계 임직원 15만명을 두고 연매출 170억달러(약 22조원)를 넘기는 글로벌 기업이다. 베단타 그룹은 인도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생태계 조성 프로젝트에 총 200억달러(약 26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베단타는 제조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서는 한국, 대만, 일본 기업과의 협업이 필수라고 여긴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 단지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인도 정부 관계자들과 베단타 그룹은 지난 12일 한국을 찾아 국내 디스플레이 분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50곳에 제조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그중 11개 업체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베단타 그룹의 아카시 헤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총괄사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인도의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한국 업체들처럼 뛰어난 전자제조 기술 능력을 보유한 기업과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한국에서 철수하고 있는 LCD(액정표시장치) 산업은 인도에선 여전히 유망해, 한국 디스플레이 소부장 기업에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헤바 사장은 인도 뭄바이대에서 전자통신공학을 전공하고 런던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오라클, 구글, 맥킨지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을 거쳐 베단타 그룹에 발을 들였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을 맡고 있으며, 베단타 그룹 계열사인 디스플레이 유리 기판 제조사 아반스트레이트의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다음은 헤바 사장과 일문일답.
―인도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프로젝트 추진 배경은 무엇이고 산업 전망은 어떤가.
“인구 1위인 인도에서 휴대전화, TV 등 전자제품 소비량이 점차 더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5년 후 인도가 수입하는 전자부품 규모는 4000억달러(약 529조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수요 증가에 따라 전자제품 수입 규모가 크게 늘면서 자국 내 공급망을 확보하는 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인도는 검증된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과 함께 인도 내 전자제품 생산을 늘려 증가하는 내수 수요에 대응하기로 했다.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TV 3000만대, 노트북 6500만대 등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베단타 그룹도 ‘메이크 인 인디아’ 프로젝트를 통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전공을 살려 클러스터에 아연 등과 같은 광물부터 유리 기판 등 다양한 전자제품 원자재를 공급할 계획이다.”
―현재 프로젝트 진행 상황은 어떤가.
“1단계로 인도 구자라트주(州) 특별투자지역에 80억~100억달러(약 10조~13조원)를 들여 인도 최초의 반도체 팹(공장)을 짓고, 인근에 30억~40억달러(약 4조~5조원) 규모의 디스플레이 패널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2026년 말 양산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 제조업체 대만 폭스콘과 지난해 반도체 제조 합작회사를 설립했고, 일본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 30곳과 MOU를 체결했다.
회사의 큰 그림은 한국, 대만, 일본 150여개 업체를 인도에 유치해 제조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첨단 공정이 아닌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이 된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 레거시(구형 공정) 반도체 공장과 LCD 디스플레이 공장을 지어 인도 내수용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시작하되 인도의 우수한 연구개발(R&D) 인력을 활용해 첨단 공정 개발도 이어갈 계획이다.”
ㅡ한국 디스플레이 업계와의 협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인도에 투자할 매력 포인트는 무엇인가.
“LCD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중심이 옮겨간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 LCD 업체에도 인도 시장이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디스플레이는 베단타 그룹이 주도하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국 LCD 업체들은 수출 위주의 사업을 해 글로벌 생태계 공급망을 이미 꿰뚫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 디스플레이 소부장 기업들이 LG디스플레이나 삼성디스플레이 단지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구성해서 일해온 경험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인도 내 휴대전화 보급률은 아직 60% 미만이다. 따라서 저가용 스마트폰에 쓰이는 LCD 패널 수요는 향후 15년 이상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LCD 수입 규모는 현재 약 100억달러(약 13조원)인데, 3년 후엔 250억달러(약 33조원)로 몸집이 커진다. 자급자족을 위해 베단타 계열사 아반스트레이트가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8세대 LCD 유리 기판을 이제 인도에서도 생산할 계획이다. 올해 말 8세대급 LCD 팹 착공에 돌입해 2026년 말 양산하는 게 목표다. 한국 기업은 기술 이전, 조인트 벤처, 단독 투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에 진출할 수 있다.”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려고 각국 정부가 보조금 지급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도 정부의 지원책은 어느 정도인가.
“기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서는 보조금 용도로 100억달러(약 13조원)를 책정해놨다. 중앙정부에서 투자금의 50%를 지원하고, 주정부에서도 투자금의 20~25%를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을 짓고 생산에 나서는 게 얼마나 큰 리스크인지 인도 정부도 잘 알고 있다.
투자 보조금과 별개로 생산과 연동해 25%가량의 보조금도 추가로 지급한다. 또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 인프라 조성에 필수적인 토지 매입 대금부터 전력, 용수 등 유틸리티 사용 요금과 관련해서도 혜택을 준다. 조건은 국내외 기업 구분 없이, 고도의 자본 집약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기업이면 된다. 한국 기업이 베단타와 협업해 투자하면 정부 지원 제도와 은행 등을 통한 자금 조달 방법 등을 쉽게 안내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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