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을 수 없는 삼성…인텔·ARM '파운드리 동맹' 의미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CPU(중앙처리장치) 분야 최강자 인텔이 반도체 설계 부문(팹리스)의 절대강자인 ARM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손을 잡은 것은 시장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텔)과 영국의 팹리스(ARM)가 동맹을 맺고 한국(삼성전자)·대만(TSMC) 기업이 주도하는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든 것은 기업간 협업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 반도체를 대표하는 인텔은 2021년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 취임 이후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ing) 2.0 전략을 통해 7나노 이하 첨단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TSMC와 삼성전자에게 내어준 파운드리 시장을 다시 되찾겠다는 목표로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를 만들었다. 자체 제품 생산에만 활용됐던 반도체 생산공장을 외부 기업의 반도체를 함께 생산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공격적인 시설 투자도 진행 중이다. 최근 2년간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주와 오하이오주에 각각 200억 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를 포함한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독일에 170억 유로(약 23조원)를 투입해 반도체 공장 2곳을 짓기로 했고, 이미 생산기지가 있는 아일랜드에도 120억 유로(약 16조원)를 추가로 투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후발주자' 인텔에게 첨단 파운드리는 만만치 않은 영역이었다.
크게 벌어진 기술격차는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웠다. 파운드리 1위 TSMC는 지난해 말 3나노급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고, 업계 2위 삼성전자도 지난해 3나노급 양산 소식과 함께 2024년 2세대 3나노 공정에 진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비해 IFS의 기술력은 한참 뒤진 수준이다.
믿고 생산을 맡길 고객 확보도 난제였다. IFS가 현재까지 확보한 대형 고객사는 퀄컴 등 소수에 불과하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파운드리는 고객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며 "그동안 인텔은 대형 파운드리 고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등 애를 먹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텔은 이같은 약점을 ARM과의 동맹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ARM은 세계 최대의 모바일 반도체 설계자산(IP)을 보유한 기업이다. ARM은 전세계 인구의 70%가 ARM 기반 기술을 사용하고 있고, 모바일 기기의 95%에 ARM의 설계가 적용됐다고 공개했다. 인텔은 이같은 ARM의 설계에 '최적화'된 생산 설비를 통해 대형 고객을 유인한다는 전략이다.
ARM이 1.8나노(18A) 공정 뿐 아니라 향후 인텔이 적용할 첨단 공정에서도 양사간 협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명시한 것도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양사는 '다년간 계약'(멀티 제너레이션)임을 분명히 했다.
반도체 업계는 인텔-ARM 동맹이 맺어지더라도 당장 판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일단 얼마나 안정적으로 첨단공정을 통한 생산이 이뤄질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정적 생산이 가능하더라도 산업 특성상 기존에 구축된 공급망을 허물고 새 고객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업계 선두 TSMC를 추격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선 마음을 놓을 수 없다. 1위 TSMC와의 큰 격차를 줄이기도 힘겨운 상황에서 미국 인텔의 추격까지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가 58.5%로 1위를 차지했고, 삼성전자는 15.8%로 2위였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인텔의 입지는 미미한 수준이다.인텔이 2022년 2월 60억 달러(약 7조원)에 인수를 발표한 타워 세미컨덕터는 1.2%로 8위에 그쳤다. 중국 당국은 인텔의 타워 인수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파운드리의 '양강 구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텔 18A 공정이 예정대로 2025년 양산에 들어간다면 인텔은 단숨에 TSMC와 삼성전자만이 진입한 최선단 공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럴 경우 인텔의 시장 잠식은 불가피하다.
이번 협업을 지정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과 대만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TSMC의 안정적 생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동아시아 중심의 파운드리 시장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한 상황에서 이번 협업 발표가 주목받는 이유다.
임동욱 기자 dw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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