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열렸다…여의도 흔드는 민주 ‘돈 봉투 게이트’
송영길‧친명계로 수사 확대 가능성…野는 “기획 수사” 반발
(시사저널=박성의·변문우 기자)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을 둘러싼 금품수수 사건이 '민주당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이다. 검찰이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가 살포됐다는 의혹에 대해 전방위 수사에 착수하면서다. 민주당은 검찰의 '기획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약 3만 개의 통화 녹음 파일을 근거로 뇌물을 수수한 의원들의 명단, 시기, 장소, 액수까지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사건의 파장이 2008년 '한나라당 돈 봉투 사건'을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초선 의원부터 중진, 전직 청와대 인사, 나아가 대선 후보급 인사들까지 줄줄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이에 이른바 '이재명 사법리스크' 방어에만 몰두하던 민주당 지도부도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녹취 3만 건'에 담긴 '뇌물 살포' 정황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는 12일 윤관석 민주당 의원과 이성만 민주당 의원의 국회 및 인천지역구 사무실과 자택, 강래구 한국감사협회 회장, 송영길 전 대표 보좌관 박아무개씨 등 10여 명의 자택 등 20여 곳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10억원대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강 회장이 9000만원을 마련하고 이 전 부총장을 거쳐 윤 의원에게 6000만원 등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전당대회 국면에서 현역 의원에게 300만원, 국회의원이 아닌 경우에는 50만원씩 돌려졌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 전 부총장은 전당대회에서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윤·이 의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정당법·정치자금법 위반)를 받는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윤 의원은 "야당 탄압 기획수사"라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정치검찰과 끝까지 싸워 무고함을 밝혀내겠다"며 "오로지 사건 관련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이뤄진 비상식적인 야당 탄압 기획 수사와 무차별적인 정치검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도 입장문을 내고 "이 전 위원장과 관련하여 그동안 보도된 의혹들과 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사실무근이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묘한 시기의 압수수색"이라며 "국면전환용 수사"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과연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에 착수한 것일까. 법조계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검찰이 수십 곳의 장소를 압수수색하려면 영장전담 판사에게 '결정적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서초동 한 변호사는 "압수수색은 정황만 드러난 수사의 착수 단계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 단순히 범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단서를 찾기 위한 압수수색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범죄 사실과 혐의가 있다고 판사가 인정할 경우에 한해 압수수색을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검찰은 이른바 '돈 봉투'가 살포됐다는 상당수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결정적 단서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 녹취록'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민주당 마당발'로 알려진 이 전 부총장은 전‧현직 의원을 비롯해 청와대 행정관, 장관, 재계 인사들과 수시로 소통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통화할 때마다 자동 녹음 기능을 사용해 녹취록을 저장했다고 한다. 현재 검찰이 이 전 부총장 휴대전화에서 추출한 녹취 파일만 약 3만 개 이상이다. 검찰은 이외 문자 메시지와 카카오톡·텔레그램 등 모바일 메신저의 대화 내역 또한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 녹취록에는 상당수 '부정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2일 JTBC 《뉴스룸》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음성파일들을 입수해 보도했는데, 이에 따르면, 강 회장은 2021년 4월24일 이 전 부총장과의 통화에서 "관석이 형이 '의원들을 좀 줘야 되는 것 아니냐'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더라. 필요하다면 돈이 최고 쉬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흘 뒤 이 전 부총장이 강 회장에게 "윤관석 오늘 만나서 그거 줬다. 봉투 10개로 만들었더만"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 다음날인 4월28일에는 윤 의원이 이 전 부총장에게 "다섯 명이 빠졌더라", "안 나와가지고"라고 말하고, 이 전 부총장은 윤 의원에게 "아니 오빠 모자라면 채워야지. 무조건 하는 김에 다 해야지"라고 말하는 대화도 있었다고 JTBC는 보도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녹취록을 근거로 노웅래 의원이 사업가 박아무개씨로부터 6000만원을 받은 정황도 포착했다. 박씨 측 휴대전화에서도 노 의원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내역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에 노 의원은 지난달 29일 뇌물수수·알선수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CJ그룹 계열사인 한국복합물류에 상임고문으로 취업하는 과정에서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수사 중이다. 한국복합물류는 관례적으로 국토교통부 퇴직 관료를 고문으로 채용해 왔는데, 노 전 실장이 입김을 미쳐 물류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이 전 부총장이 채용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노 전 실장에게 보낸 "실장님 찬스뿐"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확보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이학영 의원과 한대희 전 군포시장은 한국복합물류에 지인의 취업을 청탁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송영길 이어 친명계도 검찰 사정권에?
한편에선 검찰 수사의 최종 타깃이 송영길 전 대표가 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윤 의원은 '송영길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도왔고, 송 전 대표는 당선 후 윤 의원을 당 사무총장에 앉혔기 때문이다. 송 전 대표와 이 전 부총장의 관계도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부총장의 직함인 '미래사무부총장' 또한 당내에 없던 것으로, 송 전 대표가 당대표 시절 새로 만들어 부여했다.
송 전 대표는 파리 그랑제콜(ESCP·파리경영대학원)의 방문 연구교수로 약 7개월 간 머물 계획으로 지난해 12월 프랑스로 출국했다. 소수의 측근들 외에는 송 전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시사저널도 송 전 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휴대전화는 착신이 정지된 상태였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넘어 친명(친이재명)계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2021년 전당대회를 기점 삼아 송 전 대표와 친명계 의원들이 '정치적 깐부(동지)'처럼 활동해와서다.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비문(비문재인)계 후보로 나서며 친명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이 덕에 전당대회에서 친문(친문재인)계 홍영표 의원을 불과 0.59% 차로 꺾고 신승을 거뒀다. 이후 송 전 대표는 2022년 6월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하며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을 떠났고, 이재명 대표가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당선됐다.
2021년 전당대회 당시 송 전 대표 캠프에서 일했던 한 핵심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말 그대로 '모든 걸' 걸고 겨우 이겼다. 이 덕에 (송 전 대표를) 도왔던 이재명 대표도 순풍을 타고 대권 주자로 올라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당대회 전후 송 전 대표와 윤 의원이 막역한 사이였던 것은 맞지만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윤 의원과 송 전 대표 사이 큰 갈등이 있었다"며 "윤 의원이 '송 전 대표가 나를 졸로 본다'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최근 두 사람은 완전히 결별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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