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현정은 회장 배상금 뒤 숨은 쉰들러 속내

정재웅 2023. 4. 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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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현 회장, 현대엘리에 1700억 배상" 판결
쉰들러, 현대엘리 경영권 노려…현회장 측 '방어 안간힘'

현대그룹이 뒤숭숭합니다. 대법원의 판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하라는 확정 판결을 냈습니다. 이 소송을 제기한 곳은 다국적 승강기 업체인 '쉰들러(Schindler)'입니다. 쉰들러는 지난 2014년 현 회장 등이 파생금융상품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7000억원 가까운 손해를 입혔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 소송에 대한 최종 결과입니다.

'파생상품계약'에 발목 잡히다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지급해야 할 배상금 총액은 지연 이자 등을 합해 총 2000억원이 넘습니다. 현 회장은 2심 판결 뒤 1000억원을 현대엘리베이터에 선급금으로 지급한 상태입니다. 여기에 200억원의 공탁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명시한 배상금에 맞추기 위해서는 추가 자금이 필요합니다. 최근 현 회장이 잇따라 자금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 2014년 현 회장 등은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여러 금융사들과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현 회장 등이 금융사들과 맺은 계약은 금융사 등이 현대상선의 주식을 사주는 대신 현 회장에게 우호적인 의결권을 행사하는 조건이었습니다. 대신 현 회장은 금융사 등에 일정 비율의 수익을 보장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현 회장 등은 금융사들이 현대상선의 지분을 인수해 우호지분이 돼준다면 계약 기간까지 금융사들이 현대상선을 인수한 자금에 대한 이자로 매년 수수료를 주기로 합니다. 다만 계약 기간 만료 시 금융사들이 인수한 가격 보다 현대상선의 주가가 낮을 경우 그 손실은 모두 보전해 주기로 했습니다. 만일 현대상선의 주가가 더 높을 경우에는 차액을 일정 비율로 나누기로 했죠.

금융사들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는 장사였습니다. 자신들이 투입한 자금을 모두 보전해 주는 데다, 매년 수수료까지 챙길 수 있었으니까요. 당장 우호지분이 급했던 현대그룹의 입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끝나고 보니 일이 커졌습니다. 해운경기가 고꾸라지면서 현대상선의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그러자 이 틈을 쉰들러가 주주대표 소송을 통해 치고 들어온 겁니다.

현정은 회장의 '안간힘'

쉰들러의 공격에 현 회장과 현대그룹도 방어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쉰들러의 손을 들어줬고 현 회장과 현대그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가져가려는 쉰들러 측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숙제가 떨어진 겁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현 회장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배상금 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 회장은 최근 보유하고 있던 현대무벡스의 주식으로 약 863억원을 갚았습니다. 여기에 이달초에는 한국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 등에서 총 92억30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았습니다. 현 회장과 자녀들이 지분 100%를 소유한 현대네트워크도 최근 보유 중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담보로 하나증권과 한화투자증권에서 총 200억원을 새로 대출받은 상태입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그래픽=비즈워치

이로써 현 회장 측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의 71.8%가 담보 등으로 묶이게 됐습니다. 현 회장 측으로서는 일단 이번 위기를 넘겨야 합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재 현대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이 넘어가면 현대그룹도 함께 넘어가는 셈이 됩니다. 현 회장 측으로서는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업계에서는 현 회장이 대법원 판결 후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잃은 이후 과거에 비해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동안 어렵게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명맥을 유지해왔습니다. 현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도 이 명맥이 끊겨서는 안된다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쉰들러와 현 회장의 악연

사실 현대그룹과 쉰들러의 사이가 처음부터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 쉰들러는 현대그룹의 우호 세력으로 등장해 실제로 현대그룹의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좋았던 관계를 바탕으로 현 회장과 쉰들러 회장은 현대아산이 운영했던 금강산 관광을 함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은 쉰들러를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가 틀어진 것은 현대엘리베이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003년 현 회장의 시숙부인 정상영 KCC그룹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인수에 나서자 쉰들러는 현 회장의 전략적 파트너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시숙부와 조카며느리 간 대결로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죠. 그러나 KCC측이 공시 위반에 걸리면서 KCC의 시도는 무산됐습니다. 더불어 현 회장 측과 쉰들러의 동행도 끝났습니다.

/사진=쉰들러 홈페이지

그런데 이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내부적으로 한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던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인 겁니다. 그것도 KCC가 보유하고 있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입하면서 갑자기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로 등극합니다. 업계에서는 쉰들러가 그동안 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상황이 바뀌자 본색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이후에도 쉰들러는 지속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적대적 인수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흔들릴 때마다 현대엘리베이터 매각을 현대그룹에 제안하는 등 계속 현대그룹을 압박해왔습니다. 지난 2003년 국내 중소형 엘리베이터 업체인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해 한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현대엘리베이터 인수였습니다.

쉰들러의 파상공세

대법원이 쉰들러의 손을 들어주자 쉰들러는 즉각 행동에 나섰습니다. 쉰들러는 최근 현 회장에 대한 집행문 부여를 대법원에 신청했습니다. 집행문은 강제집행을 하겠다는 것을 집행 대상자에게 알리는 문서입니다. 집행문을 받게 되면 현 회장의 재산을 압류하고 매각할 수 있게 됩니다. 쉰들러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현 회장 측의 손발을 묶고 현대엘리베이터를 확실히 가져오겠다는 심산인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5.5%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지분이 희석됐지만 여전히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현 회장의 지분율은 7.8%에 불과합니다. 다만 현대네트워크와 현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씨 등 현 회장 측 우호지분을 합하면 26.5% 입니다. 양측의 지분율 차이는 약 11%포인트 정도입니다.

/그래픽=비즈워치

하지만 쉰들러가 현 회장의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에 나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4.6%를 추가로 확보한다면 경영권은 쉰들러가 가져가게 됩니다. 여기에 쉰들러와 오르비스 인베스트먼트와의 지분 연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 상황은 여러모로 현 회장과 현대그룹에게 긴박한 상황인 겁니다. 현 회장 측으로서는 빨리 배상금 이슈를 정리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현대그룹은 최대한 빨리 현대엘리베이터에 배상금을 완납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업계에서는 현 회장 측이 배상금 마련을 위해 추가적으로 금융기관 등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 회장이나 김문희 씨 등 가족이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해 배상금을 마련하는 방법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 회장이 배상금을 완납하고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지켜낼 수 있을지 지켜보시죠.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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