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아름다움'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 숨은 '불편한 진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2023. 4. 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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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명물인 호건 브리지. /AFPBBNews=뉴스1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열린 제87회 마스터스 골프 대회가 지난 10일(한국시간) 욘 람(스페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대회에서도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그린과 주변 환경은 결점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그 어떤 골프 클럽보다 진한 녹색의 그린과 이에 보색 대비를 이루는 베이지색 벙커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에 파란색이 영롱하게 빛나는 워터 해저드(연못)와 분홍빛의 진달래, 하얀 목련 등의 꽃이 만발한 모습은 천상의 낙원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컬러 TV 시대가 도래한 뒤 이 골프 클럽은 다양한 색깔의 꽃, 잔디, 워터 해저드와 벙커가 잘 어우러지는 이상적인 코스를 가꾸어 왔다. 이때부터 골프 업계에서는 '오거스타 내셔널 신드롬'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많은 골프 클럽들이 오거스타의 코스와 그 환경을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며 벤치 마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이 이와 같은 우아한 자태를 갖추는 데에는 감추고 싶은 비밀이 숨어 있다. 잡티 하나 발견하기 힘든 완벽한 그린을 만들기 위해 다른 유명 골프 클럽처럼 살충제와 제초제를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진한 녹색을 띠는 잔디를 유지하고 페어웨이 등에 자라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살충제와 제초제는 필수적이었다.

심지어 갈색을 띠고 있는 일부 잔디를 초록색으로 색칠한다는 사실도 오거스타 골프 클럽에서 일하는 관리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오거스타 골프 클럽이 자랑하는 100% 초록색 그린을 TV 화면에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작업을 해왔다.

벙커도 특별하다. 일반적으로 골프 코스의 벙커에는 모래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오거스타의 벙커에는 모래가 없다.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베이지색 벙커를 만들기 위해 석영을 활용한다.

푸른 빛을 띠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연못. /AFPBBNews=뉴스1
오거스타의 워터 해저드는 파란 빛 때문에 유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오거스타는 파란 빛을 유지하기 위해 식용색소를 사용한다. 미국의 한 골프 전문기자는 지난 2018년 오거스타 골프 클럽 15번 홀 앞에 위치한 워터 해저드 물의 샘플을 얻어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증명했다.

또한 오거스타의 명물인 아치형의 호건 브리지 위에 깔려 있는 잔디도 인공잔디다. 골퍼들이 이 다리를 건널 때 찍히는 사진과 TV 화면을 고려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무대 장치다.

분홍빛의 진달래는 마스터스 골프 대회를 지켜보는 갤러리와 TV 시청자들에게는 상징적인 존재다. 4월에 펼쳐지는 대회 일정에 맞춰 오거스타 클럽의 전문 관리인들은 진달래가 만개할 수 있도록 세심한 관리를 하고 있다. 살충제를 사용해 해충으로부터 피해를 막는 것은 물론이고 물을 주는 양을 시기에 맞춰 조절하고 적절한 때에 가지치기를 해주는 등의 관리가 이들의 주요 업무다.

오랫동안 마스터스의 무결점 그린은 다른 메이저 골프 대회가 치러지는 골프 클럽에서 하나의 이상적 표본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지난 2015년 US 오픈 골프 대회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당시 이 대회는 살충제 사용을 최소화해 친환경적 골프 코스로 호평을 받았던 미국 워싱턴주 유니버시티플레이스의 챔버스 베이 골프 코스에서 개최됐다.

하지만 그 대회는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인공적으로 관리한 진한 녹색의 그린에서 열리는 골프 대회에 익숙한 TV 시청자들은 채도가 낮은 옅은 녹색과 간간이 갈색마저 띠고 있는 잔디가 깔려 있는 챔버스 베이의 그린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대회 참가 선수들도 코스에 대해 불평을 쏟아냈다. 매끈한 그린이 아닌 울퉁불퉁한 그린에서 퍼팅을 해야 했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었다. 실제로 몇몇 선수는 챔버스 베이 골프장의 그린을 울퉁불퉁한 브로컬리에 비유했을 정도였다.

대다수의 골프장은 선수는 물론이고 골프 대회를 직접 관전하기 위해 찾은 갤러리나 TV 시청자들에게 비쳐질 코스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쓴다. 어쩌면 이는 '오거스타 내셔널 신드롬'의 산물이기도 하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7번 홀 모습. 짙은 초록색 잔디와 베이지색으로 빛나는 벙커가 인상적이다. /AFPBBNews=뉴스1
하지만 이같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 살충제와 제초제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골프장에서 사용된 살충제는 각종 암을 유발할 수 있고 생태계 파괴 등을 야기해 환경적으로도 치명적이다.

그래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골프 코스 디자인 전문가들은 "골프장의 녹색 잔디는 아름답다. 하지만 (환경까지 고려하면) 갈색 잔디가 더 좋다"라고 한결같이 지적해 왔다.

EU(유럽연합)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 유지를 위해 2024년부터 골프장과 공원 등에서 인간과 환경에 유해한 살충제와 제초제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유럽 내에 있는 골프장들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그린을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마스터스 골프 대회가 펼쳐지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골프 클럽이다. 그럼에도 아직 환경 문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거스타 골프 클럽이 환경보다 TV 화면에 비친 아름다운 골프장의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오거스타 골프 클럽은 대량의 살충제와 제초제는 쓰지 않고 그린을 관리하고 있다고 늘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오거스타 골프 클럽이 인공적으로 구축한 무결점 그린과 TV에 비친 아름다운 이미지는 전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21세기의 시대 정신과는 동떨어져 있다.

욘 람(스페인)이 지난 10일(한국시간) 2023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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