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가 ‘장송곡’ 불러요”…‘통제불능’ 시위, 기업도 맹모삼천지교?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3. 4. 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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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과 현수막이 점령한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 [사진=독자제공]
“시끄러워 미치겠다, 맹모삼천지교 따라 회사를 통째로 옮기고 싶은 마음”

국내 대기업 사옥 앞에서 벌어지는 ‘통제불능’ 시위에 기업과 시민 모두 노이로제를 호소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확성기를 동원한 고성방가, 도로변에 무단으로 설치된 불법 천막 등으로 보행자는 물론 운전자들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해야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행복권도 침해받지 않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화 장교빌딩 입주사들이 시위 자제를 호소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사진=독자제공]
삼성 서초사옥이 위치한 강남역 주변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는 집회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음의 장송곡 등 집회 소음은 기업은 물론 불특정 다수 시민들에게 불편함과 불쾌감을 준다.

집회 소음으로 인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지 못하거나 장송곡을 따라 부르고, 심지어 큰 소리가 날 때마다 놀라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교육시설인 초중고 주변에서 집회로 인한 학습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으면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교육시설에 포함되지 않아 집회로 발생하는 소음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앞도 출퇴근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고막을 자극하는 고음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도로변에는 기업에 대한 명예 훼손 소지가 높고 모욕적 표현으로 도배된 현수막 수십개가 걸려 있다.

이곳에서 시위를 벌이는 A씨는 자신을 고용했던 판매 대리점 대표와의 불화와 판매부진 등으로 판매용역계약이 해지됐다. 판매 대리점은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A씨는 해당 대리점의 개인 사업자일 뿐 고용에 있어 기아와 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는 기아에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0여년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아차는 내부고발자 A씨를 즉각 복직시켜라” 등 사실관계를 왜곡한 현수막까지 게시했다.

현대차그룹 직원 B씨는 “10년 이상 매일같이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스트레스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며 “주변에 식욕부진, 불면증, 신경쇠약 등을 호소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A씨가 인도에 설치한 천막과 도로 옆에 세운 배너형 현수막 등은 인근을 지나는 차량의 안전도 위협한다.

고속도로에서 진출한 차량이 전방에 위치한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할 때 불법 시위 천막과 배너형 현수막 등이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어서다.

KT 사옥 인근 [사진=독자제공]
기업들도 신뢰도와 이미지 하락이라는 피해를 입는다.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자극적 상황을 연출해 신뢰도와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는 회사측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일부 시위자들은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모욕적인 내용이 담긴 형형색색의 현수막을 내걸고, 심할 경우에는 상여나 감옥 모형 등의 소품을 동원해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기업 사옥은 한류 열풍으로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심에 있는 경우가 많고, 도심 외곽에 있더라도 해외 거래차 관계자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어서 막무가내 시위로 신뢰도나 이미지가 추락할 수 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C씨는 “외국 파트너사 클라이언트들이 시위 현수막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묻는 경우가 자주 있다”며 “상황을 설명해 이해를 시키지만 질문을 하지 않거나 외국 관광객처럼 설명할 기회가 없는 경우는 나쁜 인상을 가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실 왜곡과 명예훼손 등에 대응해 법적 해결에 나서기도 한다. 문제는 법적 절차 진행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업이 승소하더라도 피해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반면 시위자는 패소하더라도 법원이 지적한 표현만 수정한 뒤 현수막을 새로 제작해 시위를 재개하기도 한다. 법적 집회 소음 기준으로는 현실적으로 규제가 어렵다. 공권력이 불법 시위를 제어하는 역할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현대차그룹 사옥 인근 [사진=독자제공]
기아도 현대차그룹 사옥 앞세어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를 상대로 과대소음·명예훼손 문구 금지 등 가처분 소송과 민사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형사소송 1심에서도 A씨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A씨는 법원 판결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서초구청이 불법 설치된 A씨의 텐트를 철거하기도 했다.

이에 A씨는 서초구청 1층 로비를 무단 점거하고 고성을 동반한 시위를 벌여 민원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등 서초구청의 업무 방해했다.

A씨는 행정기관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다시 길 위에 불법적으로 천막을 설치했다. 서초구청이 A씨의 천막과 천막에 내건 현수막 등에 대해 무단적치물, 불법광고물을 정비할 것을 수 차례 계고통지하고 있다. 단, A씨의 막무가내식 행동이 반복될 것을 우려해 강제철거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현행 집시법 개정을 통한 규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현행법은 시위에 따른 피해자보다 시위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이라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하되 이 과정에서 기업이나 일반 시민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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