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설립 후 시공사 선정… "사업비 조달 쉽지만 공사비 분쟁 리스크 커"

정영희 기자 2023. 4. 1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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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서울시 정비사업 시공자 조기 선정의 기대와 우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가 관내 정비사업구역 전체에 시공사 선정 시기를 기존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기는 내용의 개정 조례안 시행 시 입찰 경쟁률이 줄어들 수 있다. 건산연은 시공사 조기 선정 장점을 살리고 단점 보완을 위해서는 정비계획, 공사발주방식, 계약내용을 포함하는 입체적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서울시가 정비사업 진행 시 속도 향상과 비용 절감을 위해 시공사를 조기 선정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함에 따라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방식을 적용 시 경쟁률이 낮아져 조합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13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서울시 정비사업 시공자 조기 선정의 기대와 우려' 보고서를 통해 정비사업에서 시공사 선정 시기를 조정하는 내용의 서울시 제도개편안을 분석, 이 같은 의견을 내놨다.

지난 2월 서울시의회는 재개발·재건축(도시정비)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비구역의 시공자 선정 시기를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기는 내용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안' 일부개정안을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오는 7월부터 기존 사업시행계획 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시공사 선정 시기가 앞당겨진다. 조합이 시공사를 선정해 보증을 제공받을 수 있게 돼 사업비 대출이 수월해진 것이다. 시는 시공사가 내역입찰 수준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공사 조기 선정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공사 선정 시기별 장·단점 공존… 중간점 잘 찾아야


시공사 선정 시기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정 이후 서울시 조례 변경을 포함해 7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선정 시기별로 장·단점이 있어 이를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 건산연의 입장이다.

이태희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서울시 외 사업장처럼 조합설립인가 직후 시공사를 선정하면 불필요한 설계나 인·허가 변경을 줄이고 사업비 대여가 가능해 사업 속도를 향상할 수 있다"며 "다만 계약의 구속력을 가진 상세내역 따른 공사비 증액 적정성 검토가 어려워지고 공사비 증액 관련 협상 시기가 늦어져 착공 후나 입주가 가까운 시점까지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서울시 개편안에서는 시공사 선정 시기를 앞당김과 동시에 내역입찰 수준으로 시공사를 선정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이 경우 시공사의 리스크가 지나치게 커져 유찰이 발생하거나 입찰 경쟁률이 낮아져 궁극적으로 조합원의 피해가 될 위험이 있다고 예상했다.

향후 발표될 세부 기준에서 발주자(조합)가 개략적인 설계도서를 제시하면서 입찰자에게 구체적인 설계도서와 계약 구속력을 가진 상세내역서를 제출토록 요구한다면 시공사는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는 주장이다. ▲입찰과 실착공 시점 사이 시차에 따른 단가 괴리 ▲입찰 후 변경되는 설계에 따른 물량의 불확실성 ▲사업시행계획을 바탕으로 설계도서와 내역서를 작성하는 것 대비 많은 입찰 비용 소요 등이다.

이러한 계약은 턴키 방식을 포함한 공공공사의 기술형입찰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을 인정하고 입찰 시 기술 또는 설계제안에 따른 설계보상금(공사예산의 1~2%)을 지급한다는 점에 있어 정비사업보다 리스크가 완화된다.
전통적 설계-시공 분리발주 방식과 비교한 시공책임형 건설사업관리 방식의 특징/사진제공=대한건설산업연구원


정비계획부터 발주·계약방식 아우르는 입체적 제도보완 요구돼


그럼에도 최근 급격한 건자재 물가 변동 등을 원인으로 입찰과 실착공 사이 시차에 따른 단가 격차로 손해가 커져 유찰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를 고려할 때 정비사업에서 대규모 유찰이 발생하거나 경쟁 회피로 인한 단독입찰 구역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시공사 조기 선정에 따른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시공사 선정 시기 조정과 상세내역서 제출 요구만이 아닌 정비계획부터 공사 발주방식과 계약내용 전반을 아우르는 입체적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먼저 정비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수립해 인·허가 과정에서 높이나 용적률 변화 등 공사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발생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사업 초기 단계에 시공사에 구체적인 설계안과 계약 구속력을 지닌 내역서 제출을 요구한다면 시공사간 경쟁 촉진을 통한 조합원의 편익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설계보상금을 지급하고, 입찰 이후 물가 변동에 따라 계약금액이 조정될 수 있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 부연구위원은 무엇보다 "현재의 설계-시공 분리발주 방식은 정비사업의 특성에 잘 맞지 않는 면이 있다"며 "과도한 공사비 증액 위험을 낮추고 사업 속도를 향상하는 등 새로운 발주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설계-시공 분리발주 방식은 정비사업 현장에서의 실질적 역할·책임·보상과 괴리가 있어 시공사 조기 참여를 통한 설계개선이나 사업기간 단축 등의 장점을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 불필요한 설계변경과 비용 상승 등의 단점 개선도 구조적으로 어렵다. 정비사업의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발주방식으로 건산연은 'CM at Risk'(시공책임형 건설사업관리·이하 'CM@R') 방식을 일부 수정하는 것을 제안했다.

CM@R 방식은 설계-시공 분리발주 방식과 턴키의 중간 단계다. 국내에서는 활발하게 적용되지 않으나 해외 선진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다.건설엔지니어링 면허를 보유한 시공사가 시공 이전 단계부터 조기 참여해 설계·공법 검토, 공사비 추정, 가치공학(Value Engineering) 등을 제공하고 시공을 수행하는 원스톱 서비스 방식이다.

CM@R 방식에는 공사비 검증제도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는 데다 조합의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할 수 있다. 해당 방식을 적용 시 ▲설계변경 최소화 ▲발주자가 부담 가능한 산출물 품질 결정 ▲최대공사비 보증계약으로 공사비 상승 방지 ▲사업 투명성 제고 등의 장점을 누릴 수 있다.

이 부연구위원은 "CM@R 방식을 통해 불필요한 설계변경을 줄이고 공사비 절감에 있어 기존 방식 대비 발주자와 시공사의 이해관계를 일치시켜, 시공사와 협업으로 설계 과정의 공사비를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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