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불장군은 생존 못해”… 반도체 공룡들, 외주화·기술제휴 확대로 돌파구
삼성전자·하이닉스, OSAT에 외주 물량 확대, 투자효율화 나설 듯
”대만 TSMC 성장 비결은 탄탄한 생태계… 성공 모델로 삼아야“
”혼자 하는 시대는 끝났다”… 기술 제휴도 확대 추세
반도체 미세공정의 난도가 높아지면서 설비투자(CAPEX) 비용이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비용 절감을 위한 돌파구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패키징(후공정) 분야에서 전문 업체에 외주 물량을 늘리고 기술 제휴를 강화해 투자비용 부담을 절감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시황 악화 속에서 비용 투입을 효율화하기 위해 HBM(고대역폭메모리), 칩렛(Chiplet) 등 차세대 제품의 외주화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외 외주패키지전문기업(OSAT)과의 협업 수준을 높여 직접 투자 부담을 낮춘다는 전략이다.
◇무어의 법칙 사실상 폐기… 승부처는 ‘패키징’
최근 반도체 패키징이 주목받는 이유는 전공정 기술 개발을 통한 반도체 성능 향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반도체 칩의 성능 개선은 공정 미세화를 통해 이뤄졌다. 선폭이 작아질수록 반도체 칩 안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고 전자의 이동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다. 즉 미세공정이 진화할수록 반도체 기업들은 더 높은 성능의 칩을 더 싸게 만들 수 있었다.
1975년부터 반도체 성능 향상의 척도였던 ‘무어의 법칙’은 지난 2014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어의 법칙이란 칩의 밀도가 24개월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법칙을 말한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을 세상에 내놓은 인텔은 14나노 CPU를 출시한 이후 무려 7년이 지난 2021년이 되어서야 그 다음 세대 CPU인 10나노 양산에 성공했다. 2년에 한번씩 이뤄져야할 미세화가 6~7년이나 걸린 것이다.
공정 미세화에 기술 개발 수준이 어려워지면서 반도체 개발 투자비용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우선 반도체 칩 설계 부문의 개발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선단 공정 중 하나인 5나노(nm) 칩의 설계 비용은 약 5억달러(한화 6400억원) 수준까지 증가해 28나노에 비해 약 11배 증가했다. 5나노 이후 칩 생산의 필수 장비로 꼽히는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는 대당 가격이 약 2000억원에 달하며 차세대 EUV 장비의 경우 5000억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남궁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50년 넘게 반도체 기술은 전공정 기술에 집중했었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고성능 반도체가 요구되고, 전공정 기술 개발 한계, 수율 악화에 따라 칩렛, HBM 등을 위한 후공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며 “첨단 패키징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의 기술 투자 방향을 바꾸고 반도체 생태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존심 버린 공룡들… ”혼자서는 돌파구 마련 힘들다”
전통적으로 삼성전자, 인텔 같은 종합반도체(IDM) 기업들은 칩 제조 과정에서 모든 핵심 프로세스를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경향이 강했다. 일부 부수적인 공정에 대해서만 협력사나 외주 업체의 힘을 빌렸고, 기술력 부족보다는 전반적인 생산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IDM은 타사와의 기술 제휴나 파트너십에 대해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2010년대 들어 급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세계 반도체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관계자는 “TSMC의 가장 큰 저력은 대만 전역에 걸친 탄탄한 생태계에서 나온다”며 “TSMC 고객사의 약 80%는 협력사인 디자인하우스들이 함께 대응·관리하는 일종의 집단지성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패키징 분야에서도 수많은 OSAT 협력사들이 TSMC가 생산하는 칩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삼성전자, 인텔 역시 최근 들어 부쩍 반도체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지난 11일 경기 용인시 기흥ICT밸리에서 열린 ‘2023 용인 반도체 컨퍼런스’에서 박진수 삼성전자 DS부문 상생협력센터 상무는 “반도체는 특이하게도 협력사의 한 축이 무너지면 기술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며 “삼성전자 혼자서는 세계 1등이라고 할 수 없고, 결국 협력사의 경쟁력이 삼성의 경쟁력”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 인텔의 공정 부문 수장인 앤 켈러허 수석부사장도 “이제는 인텔이 독자적으로 모든 것을 하려 하지 않고 더 많은 업체와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으려 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인텔이 (반도체 생산공정의) 모든 것을 주도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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