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로맨스', 죽여주거나 혹은 어처구니없거나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상상초월, 기기묘묘한 영화가 온다. 10년 전 '남자사용설명서'로 마니아층을 생성한 이원석 감독의 '킬링 로맨스'. 티켓 가격이 상당한 이 시대에 영화에 대한 질문은 대체로 "극장 가서 볼 만해? OTT 기다려?"일 텐데,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재밌어? 별로야?"에 대한 대답도 적절하지 않다. 이건 단언할 수 있다. '킬링 로맨스'는 문자 그대로 '골때리는' 영화다.
한 외국인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책의 형식을 취하는 시작부터 이 영화가 얼마나 선을 세게 넘을지 짐작하게 만든다. CF 한 편으로 스타 반열에 올라 7년간 시대를 풍미했던 황여래(이하늬)가 '발연기'로 국민적 조롱거리가 된 후 연예계 생활에 염증을 내며 남태평양의 '꽐라' 섬으로 떠났다가 부동산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다는 것까지는 동화 스토리 같다. 그러나 알고 보니 조나단 나(Johnathan Na), 그러니까 줄여서 존 나(John Na)는 동화 속 왕자님이 아니라 자기애 과잉에 소시오패스의 면모를 지닌 악당. 항상 49kg의 몸무게와 환한 미소를 강요하는 조나단 때문에 여래는 7년째 그의 인형처럼 살아가는 중이다.
조나단의 사업을 위해 짧게 한국에 돌아온 여래는 영화 출연 제의를 받으며 복귀를 꿈꾸지만, 조나단은 그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 순 없다고 다짐하는 찰나, 여래는 옆집에 사는 자신의 오랜 팬인 사수생 범우(공명)를 만나게 되고 범우의 도움을 받아 남편 조나단을 죽여 자유를 얻기로 결심한다. 물론 그 방법을 평범한 살인청부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 이건 이원석 감독의 작품 아닌가. 그 옛날 '마누라 죽이기'(1994)에서도 심장이 약한 아내를 죽이고자 지나친 성관계와 다이내믹한 놀이기구 탑승이란 방법을 선보인 바 있는데, '킬링 로맨스'는 거기서 수십, 수백 발짝은 더 나간다. '슥컥훅' '푹쉭확쿵' 같은 의성어로 표현되는 엉뚱한 암살 방법을 보면 웃지 않을 재간이 없다.
캐릭터들을 연기한 배우들은 이 영화의 빛과 소금. 대본만 봐서는 도통 이해되지 않았을 법한 인물들을, 이하늬와 이선균은 마성의 캐릭터로 완성해낸다. 'SNL코리아' 시즌7의 '레드카펫'에서 "헤이, 모두들 안녕, 내가 누군지 아늬?"라는 노래와 함께 찰떡 같은 'B급 코미디'를 선보였고, 이후 '극한직업'에서 떨리는 볼살과 함께 웃음을 주고, 드라마 '원 더 우먼'으로 '포텐'을 터뜨렸던 이하늬는 '킬링 로맨스'에서 자신의 모든 매력을 발산한다. 디즈니 동화 속 공주가 따로 없는 미모를 선보이는 동시에 진한 코미디 연기와 '발연기', 정극 연기는 물론 가창력까지 뽐낸다. 콧수염을 뗐다 붙였다 하는 나르시시스트 조나단 역의 이선균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란 이런 것임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시때때로 "잇츠 귯!"을 외치고 '행복'을 부를 때면 폭소가 나오지만 또 어느 순간순간 섬뜩함을 자아내며 영화에 한끗 생기를 더한다. '극한직업'에 이어 '은은하게 돌아 있는' 느낌을 이어가는 공명의 서포트도 안정적이고, 오정세의 깜짝 출연도 반갑다.
전래동화 같은 액자식 구성, 웨스 앤더슨이 떠오르는 강렬한 미장센, 주성치나 발리우드 영화가 연상되는 뜬금없는 컬트적 포인트 등 무엇 하나 과하지 않은 것이 없는 '킬링 로맨스'. 문제는 선을 세게 넘고 내달리는 영화의 톤 앤 매너를 관객이 '얼마나 따라잡을 것인가'이다. '킬링 로맨스'는 극한의 코미디와 스릴러, 뮤지컬 등 각종 장르가 겹친 '혼종'인데, 오죽하면 주연 배우들마저 '먹다 보면 중독되는 민트 초코 같은 맛'(이하늬), '대본을 처음 볼 때 요상했다. 초반 20분까지는 이거 뭐지 하며 의아할 것 같다'(이선균)고 표현할 정도.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이원석 감독의 목표대로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싶은 독특하고 기상천외한 장면들이 107분의 러닝타임을 채우기에, 어떻게 보면 B급 감성 숏폼을 107분 내내 보는 느낌도 든다. 마음의 문을 열고 본다면 영화 속 신박하게 미친 자들의 한바탕 난리블루스에 폭소하게 되지만, 기존 영화를 보듯 내러티브와 핍진성을 따진다면 거대한 실소의 현장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내내 직진하던 영화가 중반 이후 살짝 속도감을 잃고 느슨하게 전개되는 지점도 있고,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작스럽고 간편하게 작중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플롯 장치)의 존재가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코미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가스라이팅을 비롯한 가정 폭력, 남편의 살해 시도 등 음습한 소재 또한 호불호의 척도가 될 수 있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본다면 이 영화는 적잖이 유쾌하다. 'H.O.T.'의 '행복'과 비의 '레이니즘' 등 그 시절 유행했던 대중가요를 나직이 흥얼거리며 발을 구르게 되고, 내 안의 'B급 감성'이 어디까지인지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된다.
처음에 말했듯, 주말 영화 티켓이 1만5000원인 시대에 '킬링 로맨스'를 극장에서 보라고 추천해야 할지는 난감하다. 모든 관객이 '민초파'는 아닐 테니까. 다만, OTT 등 작은 화면으로는 '킬링 로맨스'가 구현하는 '괴랄한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울 거란 점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잇츠 귯!" 도전정신 강한 관객이라면 이 정도 일탈은 나쁘지 않을 듯싶다.
4월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쿠키영상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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