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진 문동주 그리고, 20년만에 다시 온 한국야구의 ‘우완 정통파 시대’
2006년 한화 유니폼을 입고 슈퍼맨처럼 나타나 신인왕과 시즌 MVP를 동시에 차지한 류현진(토론토)의 등장 이후로 한국야구는 ‘좌완투수 전성시대’를 15년 이상 보냈다.
이듬해 각각 SK와 KIA 유니폼을 입은 김광현과 양현종이 차례로 리그 최고 투수로 발돋움하면서는 좌완 트리오 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2010년은 김광현이 17승, 류현진과 양현종이 16승씩을 거두며 이들의 대결이 정점에 이르던 시절이다.
이들이 득세하기에 앞서 2000년대 초중반의 KBO리그는 우완 정통파 투수들의 시대였다. 삼성 배영수와 두산 박명환, 롯데 손민한이 이른바 우완 ‘빅3’로 리그 마운드를 점령했다. 배영수와 박명환은 당시로는 흔치 않은 150㎞대 빠른 공을 장착한 가운데 칼날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썼다. 손민한은 이들에 비하면 구속은 떨어졌지만, 다양한 변화구와 정교한 제구력으로 리그 최정상의 경기력을 보였다.
KBO리그에 우완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
키움 안우진이 이미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은 가운데 올시즌 들어서는 지난 12일 광주 KIA전에서 국내투수 역대 최고속 패스트볼(160.1㎞)를 던진 문동주(한화)를 중심으로, 우완투수들이 여럿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문동주는 개막 이후 이미 두 차례 선발등판에서 1승1패를 하는 동안 11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 1.64에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0.55, 피안타율 0.108의 특급 피칭을 하고 있다. 빠른 공뿐 아니라 커브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조합으로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문동주가 안우진을 향해 이제 막 추격을 시작한 가운데 입단 6년차인 곽빈(두산)도 우완 정통파 그룹의 리더로 나서고 있다. 곽빈은 150㎞대 초반 빠른 공을 던지면서 회전력이 좋아 구속 이상의 효과를 본다. 관건이던 제구력이 올시즌 개선되고 있다. 2경기 등판에 12.1이닝을 던지며 1승 평균자책 0에 WHIP 0.89, 피안타율 0.150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셋뿐 아니라 대형 투수로 성장할 만한 우완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럿 보이고 있다. 개막 이후 LG 5선발로 등판해 최고 구속 152㎞를 던지면서 슬라이더 등 경쟁력 있는 주무기로 시선을 모은 강효종, 또 두산의 대체선발로 시즌을 맞아 190㎝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150㎞ 강속구에 종으로 가라앉는 슬라이더로 선발 한자리를 바라보는 김동주 등이 수면 위에 올라있다. 이들 모두 고졸 3년차 선수로 이제 막 잠재력을 뿜어내고 있다. 여기에 고졸 신인으로 SSG 불펜투수로 시즌을 맞은 뒤 대체선발로 등판을 준비 중인 송영진의 경기력도 돋보인다. 150㎞를 넘나드는 빠른 공에 자신감도 넘쳐나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사실, 개막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선발투수는 롯데 우완 나균안이다. 나균안은 150㎞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아니지만 140㎞ 중반대의 묵직한 패스트볼에 다채로운 변화구로 개막 이후 2경기 13.2이닝 동안 무실점 피칭을 하고 있다. 20년 전 롯데 마운드를 지킨 손민한을 떠올리게 하는 패턴의 공을 던지고 있다.
이미 한 차례 도약 이후 또 한번 뛰어오를 채비를 하는 우완 정통파 투수들도 있다. 롯데 박세웅과 KT 소형준, 삼성 원태인 등은 이미 소속팀에서 입지를 확실히 굳힌 이름들. 리그 전체를 끌어가기에는 조금씩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이들 모두 성장의 여지가 여전한 젊은 선수로 얼마나 더 뻗어갈지 예단할 수 없다.
1980년대는 한국야구의 두 레전드 최동원과 선동열의 시대였다. 1990년대는 정민철과 정민태 등 우완투수들과 이상훈, 송진우, 구대성 등 좌완투수들이 공존해 리그를 끌어가는 ‘좌우 합작’의 시대였다. 그 뒤로 우완의 시대와 좌완의 시대를 거쳐 다시 우완의 시대가 오고 있다. 어쩌면 이제 막 굉장히 강력한 우완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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