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멈췄는데 요금 다 내라고?”… 골프장 갑질 약관 ‘1홀 단위’ 정산으로 바뀐다
3개 홀 단위로 묶어 요금 부과하는 불공정
사고·분실 책임 이용자에게만 떠넘기기도
직장인 강병국(38) 씨와 신동진(38) 씨는 작년 9월 인천 강화군에 있는 U골프장에서 운동을 시작했다가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첫 번째 홀만 돌고 철수했다. 그런데 골프장 측은 3개 홀을 돈 것으로 간주하고 요금을 받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항의했으나 “내부 규정이 그렇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강씨는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골프를 제대로 치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납득할 수 없는 약관 때문에 더 속상했다”고 했다.
이용료 부당·과다 청구를 일삼는 국내 골프장의 폭리 행위가 앞으로는 줄어들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국 33개 골프장 사업자의 회칙과 이용약관을 심사해 과도한 요금 부과, 안전사고에 대한 사업자 면책, 회원제 골프장의 입회금 반환 제한 등 불공정 약관을 시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골프 산업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급성장했다. 골프장 수요 증가와 함께 위약금 과다 부과, 계약 불이행, 이용료 부당·과다 청구 등 불합리한 거래 관행에 관한 문제 제기도 끊이지 않았다. 공정위가 골프장 사업자의 회칙과 이용약관 심사에 착수하게 된 배경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국내 골프장들은 이용자가 강설·폭우·안개 등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골프 경기를 마치지 못했는데도 이용하지 않은 홀에 대한 요금을 과도하게 부과하거나 환불을 제한했다. 18홀 중 10홀 이상 진행한 상태라면 중간에 멈췄어도 18홀 요금을 모두 내라고 하거나 강씨와 신씨 피해 사례처럼 3개 홀 단위로 요금을 부과하는 식이었다.
공정위는 “악천후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골프장 이용이 불가한 경우에도 이용자에게 이용하지 않은 홀의 요금을 청구하거나 환불을 제한하는 것은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자 상당한 이유 없이 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위험을 고객에게 이전시키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모든 이용자가 이용을 마친 홀을 기준으로 1홀 단위로 요금을 정산할 수 있도록 시정했다”고 전했다.
이번 심사에서 공정위는 안전사고나 휴대품 분실·훼손 책임을 이용자에게만 떠넘긴 골프장 약관도 발견했다. ‘모든 이용객은 자신의 책임하에 경기를 진행해야 하며 안전과 관련된 일체의 책임은 이용객이 진다’와 ‘이용자 휴대품의 분실 또는 훼손 사고에 대해 클럽은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등의 약관이 시정 조치됐다.
공정위는 “안전사고와 이용자 휴대품 분실·훼손 사고 등이 발생한 경우 이용자와 사업자의 귀책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약관을 시정했다”며 “사고에 대한 사업자나 종업원의 귀책 사유가 없는 경우에만 면책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회원제 골프장에서는 입회나 양도·양수 시 회원 자격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 없이 회사 승인을 받도록 한 사례도 있었다. 사업자가 자의적인 기준으로 신규 회원과 양수 회원의 입회를 제한한 것이다. 공정위는 “회원 자격 제한 기준이 있는 골프장은 약관에 구체적인 자격 제한 기준을 명시하고, 별도 회원 자격 제한 기준이 없는 골프장은 입회나 양도·양수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약관을 시정했다”고 했다.
이 밖에 공정위는 시설 유지·보수 등 골프장 이용을 불가피하게 제한해야 할 때는 이용 제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이를 사전에 통지하도록 했고, 회원 제명이나 자격 제한 사유가 불명확한 조항을 삭제했다고 전했다. 또 회원제 골프장 회원이 탈회하려면 사업자 승인을 받도록 하고 회사 경영상의 이유 등으로 입회금 반환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한 약관도 바꾸도록 했다.
이번 심사 결과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골프장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불공정 약관 유형을 확인하고, 이로 인한 분쟁을 예방해 관련 시장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특히 골프장 사업자가 요금을 과도하게 부과하는 관행이 개선되고, 이용자는 골프장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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