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 시위에 기업·시민 몸살..“집시법 개정으로 규제 강화해야”

박민 2023. 4. 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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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압박용으로 자극적 시위 만연
‘흉물 현수막’, ‘고성능 확성기’ 등
막무가내 시위는 기업 신뢰도 저하
시민불편에 국가 이미지에도 악영향
"집회 자유 보장하되 피해는 줄여야"

[이데일리 박민 기자] 국내 주요 기업 사옥 앞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집회와 시위로 해당 기업은 물론 보행자, 인근 주민들이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연일 반복되는 고성능 확성기 소음에 따른 스트레스는 일상이 되었고, 인도 등에 무단으로 설치된 불법 천막 탓에 다수 보행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사옥 인근 도로 곳곳에 설치된 현수막과 보행로를 가로 막은 불법 천막은 교통사고 위험을 높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명예훼손 및 모욕성 내용을 담은 현수막과 띠지 등은 기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국가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일대에 설치돼 있는 시위 현수막.(사진=독자 제공)
시민 불편 볼모로 무분별 시위 만연

지난 11일 찾은 삼성 서초사옥이 위치한 서울 강남역 주변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진행되는 집회 시위로 인해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고음의 장송곡 등 집회 소음은 기업은 물론 불특정 다수 시민들에게 불편을 넘어 불쾌감까지 주고 있다.

강남역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매일 반복되는 스피커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며 “시위 대상이나 내용과 상관이 없는데 왜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집회 소음으로 인한 근처 어린이집의 피해는 특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들이 낮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장송곡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일부 어린이는 큰 소리가 날 때마다 놀라는 증상을 보인다는 피해 민원이 나오고 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교육시설인 초·중·고등학교 주변에서 집회로 인한 학습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으면 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집은 교육시설에 포함되지 않아 집회로 인한 소음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현대자동차그룹 사옥이 있는 서초구 양재동 일대도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판매대리점과 판매용역 계약을 맺고 신차를 판매하다 계약 해지된 A씨는 본인 계약 해지와 무관한 기아를 향해 복직을 시키라며 10년 이상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현대차그룹 한 직원은 “10년 이상 매일같이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스트레스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며 “주변에 식욕부진, 불면증, 신경쇠약 등을 호소하는 직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A씨가 인도에 설치한 천막과 도로 옆에 세운 배너형 현수막 등은 인근 사거리를 운행하는 차량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게 현장의 목소리다. 고속도로에서 진출한 차량이 전방에 위치한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할 때 불법 시위 천막과 배너형 현수막 등이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유발할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일대를 운행하는 한 택시기사는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의 시위에 누가 공감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위에도 KT와 쿠팡 등 다수 기업들의 사옥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도 소음과 현수막, 천막 등이 등장해 기업과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 기업과 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한 시위가 일반화되고 있는 셈이다.

자극적 시위로 기업·국가 이미지 하락

기업들은 막무가내식 시위로 인한 신뢰도와 이미지 하락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위자들은 자극적 상황을 연출해 기업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모욕적인 내용이 담긴 형형색색의 현수막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여나 감옥 모형 등의 소품을 동원하는 사례도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을 강하게 압박하면 이미지 훼손을 우려한 해당 기업으로부터 유리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기인한 행동일 것”이라며 “이로 인해 기업들은 신뢰도와 이미지 하락이라는 피해를 입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중구 장교동에 있는 한화그룹 사옥 인근에 시위 현수막이 걸려있다.(사진=독자 제공)
기업들은 자구책으로 사실 왜곡과 명예훼손 등에 대응해 법적 해결에 나서는 경우 적지 않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일단 법적 절차 진행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업이 승소하더라도 피해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시위자는 패소하더라도 법원이 지적한 표현만 수정한 후 현수막을 새로 제작해 시위를 재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는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에서 대부분 패소했지만 여전히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현행 집시법 개정을 통한 규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현행법은 시위에 따른 피해자보다 시위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이라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하되 이 과정에서 기업이나 일반 시민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 (parkm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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