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거야 입법 폭주 이면의 反민생 反헌법
野 양곡법 시행 땐 엄청난 낭비
1兆원은 1000원 밥값 10億명분
4900만 비농업인구 삶도 중요
방송법 법원조직법 감사원법
거대 야당의 입법 자제 실종 땐
대통령 거부권이 유일 안전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호 민생법안’인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2030년에는 1조40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예상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측도 2030년까지 쌀 보관비용 등으로 1조여 원이 든다고 한다. 1조 원이면 1만 원짜리 무료 식사를 1억 명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금액이다. 최근 이슈가 된 대학 학생식당 1000원 밥값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0억 명의 학생에게 무료로 아침밥을 제공할 수 있다. 2022년 우리나라 인구는 5155만 명이고 수도권 거주자가 50.58%다. 민주당은 ‘230만 농가소득 보장’을 위해 법안 단독 처리가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비농업인구 4925만 명 중 상당수는 도시 빈민과 경제적 취약계층이다. 새벽마다 줄을 서는 탑골공원 무료 급식소의 안타까운 사연도 외면한 채 민주당은 ‘1호 민생법안’으로 쌀 보관비용만 1조 원을 쓰겠다고 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이다.
230만 농민의 생존권도 중요하지만, 비농업인구 4925만 명 중 상당수를 차지할 도시 빈민과 경제적 취약계층의 삶도 중요하다. 정치의 존재 이유도, 한정된 국가 예산을 어떻게 분배하고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국민을 위한 최선의 해답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국가의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법률로써 실현된다. 법률은 민주국가의 초석이고 법률을 통해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중요한 원칙과 가치가 구체화한다. 국회는 입법을 통해 다른 국가기관을 비롯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自制)라는 규범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수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이라는 이유로 관용과 절제를 잃어버리면 ‘폭주하는 다수’가 될 뿐이다. 선출된 독재자에 의해 민주주의가 유린된 수많은 역사적 사실(史實)이 이를 증명한다. 자제의 규범이 사라질 때 견제와 균형 대신 정체와 마비가 들어서지만, 민주당은 내년 4월 총선까지 ‘거대 야당의 힘’을 아낌없이 과시할 태세다. 지난달 21일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방송법 개정안을 비롯해 헌법에 위반되는 다수의 입법안이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돼 있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제한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정부의 외교 협상권을 제한하는 조약의 체결·비준 절차 등에 관한 법률안, 대통령에 대한 감사 결과 보고를 폐지하는 감사원법 개정안 등이 그것이다.
지난 2020년 4월 15일에 치러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헌정 사상 최초로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고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검수완박법’을 밀어붙인 민주당이기에 놀랍지도 않지만, “국회의원은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 제46조 제2항은 안중에도 없다.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제2, 제3의 양곡관리법이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로 단독 처리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헌법상 유일한 견제 장치가 대통령 거부권이다.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도 없고, 하원이 일방 처리한 법안을 상원이 거부할 수 있는 양원제 국가도 아니며, 국회가 입법한 위헌법률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사전 위헌심사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66조 제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계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포퓰리즘 입법과 위헌적 법률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가 수호와 헌법 수호 차원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기능하지 않는 것’이고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젊음은 늙는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인간들의 어리석음이다”라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7일 전남대를 방문해 학생들과 함께 1000원짜리 아침 식사를 하면서 “최소한 먹는 문제 탓에 학생들이 고통받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10억 명의 학생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돈을, 써 보지도 못하는 쌀 보관비용으로 날리겠다고 법안을 단독 처리한 민주당 대표의 ‘제1호 민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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