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나라곳간 터는 야합 막을 대통령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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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으면 여야 정당과 정치인은 서로 대립하는 일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나라의 곳간을 허는 일에는 여야가 따로 없어 보인다.
정치인과 이들의 모임인 정당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이나 승리다.
국회 기재위에서 같이 처리하게 돼 있던 재정준칙안을 '여야 합의로' 제외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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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으면 여야 정당과 정치인은 서로 대립하는 일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나라의 곳간을 허는 일에는 여야가 따로 없어 보인다.
상징적인 예가 국가재정법 개정안 처리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경제재정소위원회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합의로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기준을 현행 500억(국비 300억) 원 이상에서 1000억(국비 500억) 원 이상으로 올리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예타 도입 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당시보다 경제 규모가 커진 만큼 기준 상향의 타당성을 일말 인정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함께 처리해야 할 재정준칙의 법제화 또한 여야 합의로 뺐다는 점이다. 이번 개정안 처리가,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사업을 남발하겠다고 예고하는 여야 야합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왜 여야 정치인과 정당의 행동은 다른 듯 같을까? 이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유인구조가 같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이들의 모임인 정당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이나 승리다. 선거에서의 패배는 정치적 망각과 무력화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중 손쉬운 게 선심성 사업으로 돈을 퍼주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재정의 부실화다. 하지만 다음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인과 정당에 미래의 재정 위기는 거의 고려 밖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정 상황은 위기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 정부 동안 대규모 재정 방출로 ‘역대급’ 세수에도 불구하고 나랏빚이 1000조 원을 넘었다. 현재 나랏빚이 1분에 1억 원씩 늘어나고, 향후 4년간 이자만 100조 원에 육박한다. 공적 연기금도 이미 고갈됐거나 머잖아 바닥날 전망이다. 이 또한 결국은 재정으로 메워야 한다. 이대로 가면 미구에 이웃 일본처럼 통화정책이 불가능한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은 국채 이자 부담 때문에 이자율을 올려야 할 때도 올릴 수가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정치적 수지 타산이 재정 운용을 좌지우지하면 나라의 곳간은 비게 마련이다. 따라서 정치가 재정을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축소하기 위한 재정준칙은 필수 불가결하다. 나랏빚의 급속한 증가를 고려하면, 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일이다.
문제는, 재정준칙의 법제화도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자신들의 선심성 퍼주기에 걸림돌이 되는 엄격한 재정준칙이 달가울 리 없다. 국회 기재위에서 같이 처리하게 돼 있던 재정준칙안을 ‘여야 합의로’ 제외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은 대통령의 몫이다. 국회의원들은 다음 선거 생각에 급급하지만, 단임제 대통령은 재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일반 정치인들에 비해 긴 시계(視界)에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려할 여유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일 납세자의날 기념식에서 “국민 혈세는 단 1원도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곳에 소중하게 쓰겠다”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적 정치 복지를 지양하겠다”고 약속했다. 재정준칙 법제화가 없는 예타 기준 상향 법안에 대해선 거부권 행사를 무기로 재정준칙안의 동시 처리를 압박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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