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조기 집행” 외쳤지만, 실제론 아껴써야 할 처지… ‘자가당착’ 위기의 기재부
세수 펑크 우려에 세출 절감 가능성도 제기
앞에선 “쓰자” 뒤에선 “아끼자” 딜레마 상황
전문가들 “예산 사업 무조건 삭감 지양해야”
“올해 국세 수입이 당초 정부 예상보다 부족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4월 7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나라살림을 진두지휘하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 한마디에 올해 세수 ‘펑크’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정부 안팎에서는 기재부가 조만간 각 부처에 급하지 않은 사업을 중심으로 세출 절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할 것이란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간 기재부는 경기 둔화에 적극 대응하고자 올해 예산의 65%를 상반기에 쓰겠다고 밝혀왔다. 세수 결손 방어를 위한 예산 불용(不用)과 경기 하강 방어를 위한 예산 집행 사이에서 재정 당국이 자가당착(自家撞着) 위기에 처한 셈이다.
◇ 10년 전처럼 각 부처에 세출 절감안 요구?
1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올해 세수 부족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 것에 대비해 현재 세수 추가 확보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달 말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와 6월 말까지 적용되는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지 않는 방안과 지난해 60%였던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종부세·재산세의 과세표준을 정할 때 공시가격에 곱하는 비율)을 올해 80%로 올려 종부세수 감소 폭을 축소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서 이는 모두 증세나 다름없기에 기재부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경기 둔화로 국민 삶이 팍팍해진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앞둔 여권의 눈치까지 봐야 할 상황이라서다.
그렇다고 그냥 두기에는 연초 세수 흐름이 너무 안 좋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3년 들어 2월까지 국세 수입은 54조2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조7000억원 감소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세수는 세입 전망치(400조5000억원)보다 20조원 이상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관가에서는 “기재부가 하반기에 2013년 9월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7조~8조원 정도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자 기재부는 각 부처 기획예산담당관이 참석하는 워크숍을 열어 “부처별로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을 중심으로 한 세출 절감안을 마련해 제출하라”고 했다. 사업비가 다음 해로 넘어가거나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지출인 불용 예산을 만들어 세수 부족분을 보완하려고 한 것이다. 부처들은 불요불급한 예산 사업을 골라내고 업무추진비 등 기본 경비를 삭감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 경제부처 예산 담당자는 “통상 (기재부는) 연말 전까지는 불용액을 최소화하고자 재정 집행을 독려하고 연말이 되면 불필요한 예산 집행을 줄이라고 하는 편인데, 세수가 부진할 때는 선제적으로 (세출 절감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올해는 아직 상반기이다 보니 특별한 지침이 내려온 건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세수 흐름이 이어진다면 재정 당국이 지출 구조조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 재정 65% 상반기 집행 선언한 尹정부
문제는 올해 경기가 안 좋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서는 상저하고(上低下高·경기가 상반기까지 부진하고 하반기부터 살아나는 것) 전망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연간 성장률은 IT(정보기술) 경기 부진의 영향으로 기존 전망치인 1.6%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작년 10월 2.0%로 제시했던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1.5%로 확 낮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세수 결손 방어를 위한 세출 절감에 일찍 나서면 경기에 가해지는 하방 압력은 더 세질 수밖에 없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은 고용 창출 등 경제 전반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재정 당국으로선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현재의 진퇴양난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어진 셈이다. 세수 펑크를 막으려면 예산 불용까지 염두에 둬야 하고, 경기 하강에 대응하려면 예산을 적극 집행해야 하는 처지다. “기재부가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정부가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상반기에 집중 투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세수 결손 리스크와 충돌하면서 정부를 더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1월 4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올해 중앙재정·지방재정·지방교육재정 가운데 총 482조5000억원을 신속 집행 관리 대상으로 정했다. 정부는 이 중 역대 최고 수준인 65%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 2월까지 세수만 공개된 상황인데 연간 세수 부족을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며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은 세수 부족이 우려된다고 예정했던 예산 사업을 무조건 줄이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는 재정 지출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효과까지 고려한다”며 “재정 지출을 강제로 줄이면 그만큼 성장률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갈 것”이라고 했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둔화를 빨리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재정 지출을 따져 적극적으로 집행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세수 확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선 시즌을 앞두고 선심성 예산 낭비 정책을 남발하는 모습을 이번에는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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