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 가장 치열한 전투 현장은?…바흐무트

강영진 기자 2023. 4. 13. 11:1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사내용 요약
우크라, 군사적 가치 크지 않더라도
서방지원 유지 등 위해 한사코 사수
보급로 유지해 러군에 큰 피해 안겨

[바흐무트=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인근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러시아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2023.03.25.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최대 격전지는 남부 아조우해에 접한 마리우폴이었다. 지난해 2월25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은 불과 5일 만에 마리우폴을 포위한 채 대대적인 포격과 폭격을 가해 도시의 95%를 파괴했고 주민 2만1000 여명을 숨지게 했다.

마리우폴을 사수하던 우크라이나군과 시민들이 4월 중순 아조우스탈 제철공장 지하로 대피해 한 달 여 동안 결사 항전을 벌였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항복 명령을 내린 뒤에야 마리우폴 전투가 끝났다. 당시 우크라이나군과 시민들이 겪은 종말론적 참상이 널리 보도된 바 있다.

마리우폴 전투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 동부 바흐무트 지역이다. 10개월 동안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모두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는 곳이다. 러시아는 바그너 용병그룹이 죄수 출신 병력을 투입해 인해 전술을 펴왔고 우크라이나는 정예 병력이 아닌 국토방위군을 투입하며 방어해왔다.

전쟁 초기 수도 키이우 공격에서 대패하고 지난해 9월 북동부 하르키우 지역에서 일주일 새 점령지 대부분을 내주고 퇴각하는 등 실패를 거듭해온 러시아군은 바흐무트를 점령함으로써 러시아 국민들에게 첫 승전보를 전하려는 생각인 듯하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의 교통 요지인 바흐무트를 동부 돈바스 지방 전체를 장악하는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술적 의도도 있어 보인다.

서방 전문가들은 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사수해야 할 정도로 바흐무트의 군사적 가치가 크지 않은 것으로 지적해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바흐무트를 포기하라는 서방의 설득에도 한사코 저항해왔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인상을 서방에 줄 수 없다는 심리적 요인이 가장 커 보인다. 약하다는 인상을 주면 서방의 지원이 줄어들고 전쟁을 끝내라는 압박이 커질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바흐무트 전투를 통해 러시아군의 병력과 장비에 큰 손실을 안김으로써 러시아군 전체의 전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러시아군이 여전히 장비와 훈련 부족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상명하복식으로 군을 운영하면서 전장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여전히 병력과 장비, 탄약 보유량이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한다. 따라서 바흐무트를 사수함으로써 러시아군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크라이나측 주장이 군사적으로 반드시 타당하다고 보기 힘든 점이 있다.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를 사수하면서 내세우는 또다른 이유가 봄철 대반격전을 준비하는 시간을 벌어준다는 점이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키로 한 탱크 등 공격용 장비는 아직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상황이다. 서방이 지원하는 우크라이나군 훈련도 아직 마무리 단계다.

우크라이나는 서방 지원 장비로 무장하고 서방의 군사 훈련을 받은 3만5000여 정예 병력을 중심으로 봄철 대반격전을 벌일 것으로 예고해왔다.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까지 진격함으로써 크름반도로부터 러시아 본토로 이어지는 보급선을 차단하면 전쟁 승리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바흐무트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투에 정예 병력이 아닌 국토방위군을 주로 투입해 전투력을 보존시킨다고 밝혀왔다.

바흐무트 전투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죄수 출신 병사들을 좀비 같은 총알받이로 내모는 러시아 바그너그룹에 맞서 악전고투를 벌여왔다. 특히 러시아군에 비해 탄약 보급이 부족한 우크라이나군은 결사항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후퇴해 왔으며 4월 중순 현재 러시아군이 3면을 포위한 상태에서 서부 일부 지역만 장악한 상태다. 그러나 바후무트 시내로 이어지는 보급 루트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한편 미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 시간) 바흐무트의 치열한 전투 현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 모습을 전했다. 다음은 NYT의 르포 기사 요약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바흐무트 서쪽 블록 스무 곳만 점령한 상태다. 이곳도 지속적으로 포격을 당하고 있다.

바흐무트는 2차 세계 대전 이래 유럽에서 가장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바흐무트의 도심지 전투에서 밀려나고 있지만 보급로 및 탈출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지하 벙커에서 만난 바흐무트 시가전 책임자 93기갑연대장 바블로 팔리사 대령은 “전투가 정말 힘들다”고 했다. 벙커에는 땀범벅이 된 병사들이 소총과 총류탄 발사기를 든 모습으로 드나들었다.

팔리사 대령은 “우리는 다른 부대들이 반격전을 준비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 부대를 포함한 이 지역 부대들이 탄약부족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공급로가 막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군 전체가 겪는 문제라고도 했다. 포탄, 탱크 포탄, 총류탄 등 각종 탄약이 모두 부족하다는 것이다. “탄약이 없어 부하가 목숨을 잃는 건 지휘관으로서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미국 등 서방이 문제해결을 위해 애쓰는 건 알지만 “더 빨리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으로 가려면 장갑차를 타고 좁은 도로를 지나야 한다. 트럭이 불타 방치돼 있고 폭격으로 구덩이가 나 있는 길이다. 시내에 도착한 병사들은 공격당하지 않도록 재빨리 내려 지하로 뛰어간다.

도로와 건물 앞마당마다 부러진 나뭇가지, 콘크리트 덩어리, 깨진 유리창이 널려 있다. 몇 초 간격으로 포탄이 터지는 소리나 총성이 북쪽, 동쪽, 남쪽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울린다. 러시아군 병사들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근접 전투도 수시로 벌어진다.

팔리사 대령은 러시아가 탱크로 아파트 건물 한 복판에 구멍을 낸 적이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그 구멍을 통해 건물에 진입한 뒤 방방이 뒤지며 러시아군과 교전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결국 러시아군이 숨어 있는 이 건물을 폭파해 무너트렸다. 팔리사 대령은 93기갑연대가 하루 평균 15차례 교전을 벌인다고 했다.

시가전은 방어하는 쪽에 유리한 법이다. 숨을 곳이 많아 아무리 화력과 병력이 우세한 쪽이라도 모든 건물마다 교전을 벌여가며 점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격하는 쪽은 포위해 고사시키는 전술을 쓰는 일이 많다. 탄약을 소진시키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보급로를 사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급로를 유지하는 덕분에 러시아군이 시가전을 벌이도록 함으로써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지하 벙커에서 팔리사 대령이 러시아군이 한 건물에 달려드는 모습을 드론 영상으로 보고 무전을 쳤다. 몇 분 뒤 박격포탄이 건물에 떨어지는 모습이 드론영상에 나타났다.

38살인 팔리사 대령은 미 캔사스주 포트 리벤워스의 군사대학에서 공부하다가 러시아가 침공한 지난해 2월 돌아왔다. 시가전 과목을 이수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면서도 “어쨌든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다. 지금도 우린 바흐무트에 있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