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67% 전기차로? "GM·포드 못따라오면 수정될수도"
미국이 오는 2032년까지 신차의 67%를 전기차로 전환하라는 요구가 담긴 규제를 발표하면서 자동차 업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급격한 전동화 전환을 요구하는 규제안에 완성차 업체들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일각에서는 어떤 회사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치라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13일 2027년식부터 2032년식 신차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CO₂), 비메탄계 유기가스(NMOG)와 질소산화물(NOx), 미세먼지 등 배출 허용량을 연 평균 13%씩 감축시키는 규제 초안을 공개했다. 2032년식 승용차 신차의 경우 평균 배기가스 배출량이 마일(1.6㎞)당 82g(그램)으로, 당초 2026년 목표치보다 56% 낮췄다.
아울러 EPA는 차량 운행 5년·주행거리 6만2000마일 동안 원래 배터리 성능의 80%를, 8년·10만마일 동안 70%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조사는 차량에 배터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를 설치해야하며, 배터리 전동 파워트레인 품질을 8년·8만마일 동안 보증해야 한다. EPA는 60일간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EPA의 새 배기가스 규정은 내연기관차로 달성할 수 없는 수준이다. 완성차업체가 이를 맞추려면 급격한 전기차 전환이 불가피하다.
EPA는 완성차업체가 오는 2030년까지 신차의 60%, 2032년까지 67%를 전기차로 생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초 2030년까지 신차 중 전기차·하이브리드차 비중을 50%로 높이겠다는 계획보다 더욱 급진적이다. 완성차업체가 요구사안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당 1200달러(약 160만원)의 추가 비용을 들이겠지만, 소비자는 연료·유지보수 측면에서 8년간 9000달러를 아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새 규제를 기한 내로 달성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은 5.8%에 그쳤다. 10년 안에 판매량을 10배 넘게 늘려야 하지만, 완성차업계는 이를 생산할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 특히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을 수령하려면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을 해야해 생산능력이 더욱 제한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오는 2025년 가동 예정인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30만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 총 145만대를 판매했는데 전기차는 5만8082대에 그쳤다. 새 기준을 중촉하려면 적어도 전기차만 연간 100만대를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 최근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음에도 관련 전략 수정은 물론, 추가 투자를 요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된 셈이다. 앞서 현대차는 2030년 미국 시장에서 전체 자동차 판매의 58%를 전기차로, 기아는 47%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연간 배출가스 감축 2.5%도 힘든데 13%에는 상당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며 "현대차의 경우 미국 내 공장 두 곳의 생산량 절반을 전기차로 전환하고,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을 최대로 가동하면서 한국에서 리스·렌탈용 차량을 최대한 수출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배출량이 비교적 적은 하이브리드 차량을 늘리는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완성차업체도 전동화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 중이지만 목표 달성에는 회의적이다. 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토요타 등을 대표하는 자동차혁신연합의 존 보젤라 최고경영자(CEO)는 새 규제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봐도 공격적"이라며 "데이터를 통해 세심하게 설정한 (기존) 목표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완성차업체들은 더 비싼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수요와 배터리 공급, 전기차 충전 인프라 공급 속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가 유일한 승자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책이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과 교수는 "정책이 너무 급진적이라 GM과 포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미국 정부는 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테슬라 정도만 타격이 없겠지만 이미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 독주는 끝난 상황"이라며 "미국·유럽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배터리 주도권 등이 버무려지면서 전기차 시장 주도권 싸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한결 기자 hanj@mt.co.kr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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