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회장, 알리바바와 멀어지나…잔여 지분 대량 매각
지분율 3.8%까지 추락
지난해 적자 누적되며 현금 확보 목적
ARM 상장 앞두고 손실 만회하려는 전략
소프트뱅크가 최근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가운데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중국의 e커머스 알리바바 지분을 대량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ARM 상장을 위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선택으로 풀이된다. 손 회장이 알리바바를 손절매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올해 들어 72억 달러(약 9조 5450억원) 규모의 알리바바 주식을 매각했다. 지난해 290억달러(약 38조원)가량 매각한 뒤 올해도 대량 매도에 나선 것이다.
소프트뱅크의 알리바바 지분 매각은 '선불 매도계약(포워드 세일)'으로 이뤄졌다. 소프트뱅크가 알리바바 주식을 매각하는 것을 담보로 삼아 미리 현금을 수령하는 일종의 옵션 계약이다.
계약 만기 전에 소프트뱅크는 현금 또는 알리바바 주식으로 상환할 의무가 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도 이 방식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한 바 있다.
소프트뱅크는 이번 매각으로 인해 알리바바 지분율이 3.8%로 줄었다. 알리바바에 대한 영향력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2014년 34%로 최대 주주 지위에 등극했지만 갈수록 지분율이 낮아졌다. 지난해 6월까지 23.7%를 확보했지만 3개월 뒤 14.6%로 감소했다. 올해 대량 매각을 통해 5% 밑으로 낮아졌다.
소프트뱅크는 현금을 확보하려 알리바바 지분을 헐값에 매각했다. 금융정보업체 워싱턴서비스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가 최근 1년 2개월간 매도한 알리바바 주식의 평균 매각 금액은 주당 92달러로, 사상 최고치(317달러)의 3분의 1 수준을 밑돈다.
소프트뱅크가 알리바바 지분 매각에 나선 배경엔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이 있다. ARM 상장에 앞서 알리바바 투자금을 회수해 지난해 비전펀드의 투자 손실을 메우려 한다는 분석이다. FT에 따르면 손 회장은 알리바바 매각 대금을 비전펀드 2에 투입하고 주식 환매와 부채 상환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FT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미국 나스닥과 잠정 합의를 맺고 ARM을 올해 안에 기업 공개(IPO)할 계획이다. ARM은 세계 모바일 기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AP) 설계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314억달러를 들여 ARM을 인수했다.
증권업계에선 ARM의 기업가치를 최소 300억달러에서 최대 700억달러로 책정했다. 상장에 성공하게 되면 소프트뱅크는 80억달러를 회수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금을 대거 확보하게 되면 소프트뱅크가 올해 1분기 실적에 대한 투자자의 우려를 잠재우려는 것이다. 주가가 내려가게 되면 이를 방어하기 위한 자사주 매입용 자금도 확보하게 된다.
소프트뱅크는 FT에 매각 사유에 대해 "불확실한 사업 환경에서 방어 모드로 전환했다"며 "현금을 늘리는 데 치중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재무안정성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알리바바 지분 매각으로 유입된 자금은 다음 달 공시되는 1분기 경영 실적에 반영될 예정이다.
소프트뱅크가 알리바바를 완전히 손절매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초 손 회장에게 알리바바는 각별한 기업이었다. 손 회장은 2000년 알리바바에 2000만달러를 투자해 세계 벤처캐피털(VC) 역사상 손꼽히는 수익률을 올렸다. 그는 이를 통해 기술기업 투자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와 손 회장은 상대 회사의 이사회에 참가하는 등 유대관계를 맺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IT업계에 대한 통제 수위를 높이자 알리바바 사업이 축소됐다. 막대한 과태료와 함께 창업자 마윈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은 2020년 말 고점 대비 70% 이상 폭락했다. 소프트뱅크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4~12월 적자 규모는 9125억엔에 달했다. 지난 2월 손 회장은 회사 설립 후 처음으로 실적발표회에 불참했다.
FT는 "알리바바가 곧 6개 회사로 분할해 새 출발을 하는 만큼, 마윈의 오랜 후원자인 손 회장의 역할도 사라진 것"이라고 짚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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