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차이나 트렌드] 랄프로렌도 루이비통도…왜 럭셔리 브랜드는 커피 팔고 고기 굽나
브랜드는 진입 장벽 낮추고, 애착심 높이고
소비자는 커피 한 잔 값으로 명품 체험하고
중국 베이징의 쇼핑 핫 플레이스 싼리툰 타이쿠리. 3층으로 된 미국 럭셔리 패션 브랜드 랄프로렌(Ralph Lauren)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이 쇼핑몰 광장의 인증샷 명소다. 창문에 커다란 초록 커피잔이 걸려 있는 1층 랄프스 커피(Ralph’s Coffee) 카페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랄프스 커피는 랄프로렌이 2014년 뉴욕 매장 안에 처음 선보인 브랜드 자체 커피숍이다. 랄프로렌은 런던·파리·도쿄에 이어 2021년 4월 베이징에 중국 첫 카페를 열었다.
1층 공간은 절반이 카페, 절반이 의류 매장이다. 카페의 목적은 분명하다. 소비자가 커피를 마시면서 랄프로렌 브랜드와 제품에 관심을 갖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다. 카페 의자에 앉으면 반대편 의류 매장이 훤히 보이고, 카페 구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2·3층 매장으로 갈 수도 있다. 타이쿠리 쇼핑몰의 주 소비층은 중국 10~30대다. 랄프로렌이 상징하는 미국적 럭셔리의 가치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다. 랄프로렌은 2011년에야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들을 랄프로렌의 세계로 불러들여 브랜드에 스며들게 하는 것, 그것이 랄프로렌 카페의 임무다.
이곳의 시그너처 드립 커피는 30위안(약 5700원), 아메리카노는 34위안(약 6500원). 몇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이 몇십만~몇백만 원짜리 옷을 파는 가게로 부담없이 들어서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낸다. 랄프로렌 로고가 그려진 커피컵 사진엔 수많은 좋아요가 눌리고 잠재 소비자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향한다. 랄프로렌 매장 직원은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매장을 둘러보고 제품을 사서 나가는 고객이 많다”고 했다.
랄프로렌은 상하이에도 카페 두 곳을 낸 데 이어, 올해 3월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에 화남 지역 첫 랄프로렌 하우스를 열며 레스토랑을 겸한 카페를 함께 선보였다. 지난해 6월엔 중국 남서부 쓰촨성 청두 타이쿠리에 중국 첫 더블RL(RRL) 부티크와 아시아 지역 첫 랄프스 바(Ralph’s Bar)를 열었다. 매장 3층 바에서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실 수 있다. 특히 특별판 버번과 호밀 위스키 등 아메리칸 위스키 컬렉션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최근 중국 내 위스키 열풍과 맞아떨어졌다.
◇ 루이비통, 젊은 소비 도시 청두에 중국 첫 레스토랑 열어
‘판다의 도시’ 청두는 상하이·베이징에 이어 중국 3대 럭셔리 마켓으로 떠올랐다. 외국 럭셔리 브랜드와 고급 레스토랑이 청두에 속속 모여들고 있다. 2021년 말 청두시 인구는 2120만 명으로, 충칭·상하이·베이징 다음으로 많았다. 특히 청두 인구의 절반은 핵심 소비 세력인 14~35세 연령대다. 청두는 소득 수준이 높으면서도 베이징·상하이 같은 1선(綫) 대도시에 비해 집값과 생활비는 낮다. 그만큼 구매력이 높다는 의미다. 청두는 지리적으로 중국 내륙 남서부, 북서부, 중부를 잇는 교통 허브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이기도 하다. 중국 국내외 소비재 기업이 강력한 소비력을 가진 청두를 주목하는 이유다.
프랑스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도 중국 첫 레스토랑을 선보일 도시로 청두를 선택했다. 지난해 11월 청두 타이쿠리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 옆에 회관(會館 The Hall)이란 이름의 식당을 열었다. 과거 광둥 상인들이 전국 각지에 세운 광둥회관 건물이다. 건물 외부에 누워 있는 거대한 판다 조형물과 판다를 태운 컬러풀한 열기구는 소셜미디어 핫 스폿이 됐다. 미쉐린 별을 받은 식당의 셰프가 6개월마다 돌아가며 주방을 맡는다. 지난해 연말 송년 디너 코스 요리는 새해 숫자와 같은 2023위안(약 39만 원)에 판매됐다. 루이비통은 Z 세대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위챗 미니 프로그램 게임에 청두 태생 래퍼가 특별 제작한 힙합 노래를 넣기도 했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5월과 9월 서울 루이비통 매장에서도 두 차례 팝업 레스토랑을 연 적이 있는데, 모두 기간 한정 운영이었다.
중국인은 루이비통이 속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소비자다. 2022년 LVMH 매출은 792억 유로(약 115조 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이 중 20%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일본 제외) 지역에서 나왔다. 중국인은 중국 내 매출뿐 아니라 세계 다른 지역 매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다.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명품 브랜드 매장을 싹쓸이하던 중국인 관광객 덕분이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 겸 최고경영자는 올해 1월 2022년 연간 실적 발표회에서 “(2022년 말) 중국 리오프닝(국경 재개방) 후 중국의 부유한 소비자와 관광객이 매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며 “중국에 관해 매우 낙관적”이라고 했다.
◇ 몇천만 원짜리 백 대신 커피 한 잔으로 럭셔리 경험
패션·뷰티 매장에 카페나 레스토랑을 결합하는 형태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루이비통은 이미 2020년 일본 오사카에 세계 첫 카페 겸 레스토랑을 냈고, 이듬해 도쿄 긴자에도 카페 겸 초콜릿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선 이런 카페 복합형 매장이 한층 강한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기업이 성향도 취향도 제각각인 중국의 수억 소비자와 만날 접점으로 카페를 활용하는 것이다. 몇백만~몇천만 원짜리 백을 당장 살 순 없어도 이 브랜드를 느끼고 싶은 소비자의 동경심을 건드린 것이기도 하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다.
지난해 6월 프랑스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세계 첫 카페가 중국 청두 타이쿠리에 들어섰다. 럭셔리 브랜드가 결집한 쇼핑몰 광장엔 로고가 새겨진 거대한 하얀 커피컵 조형물이 세워졌다. 카페에선 마르지엘라의 대표 제품인 타비(엄지발가락이 분리된 일본 전통 양말 형태) 부츠 모양의 케이크가 인기 메뉴다. 지역 문화를 잘 아는 청두 커피숍 스몰커피에 운영을 맡겼다. 마르지엘라는 상하이에도 카페를 내며 중국 시장 확장에 나섰다.
레코드 레이블로 시작한 프랑스 패션 브랜드 메종 키츠네(Maison Kitsune)도 2021년 상하이에 중국 첫 카페인 카페 키츠네(Café Kitsune)를 낸 후, 현재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카페를 운영 중이다. 키츠네 로고가 크게 박힌 가방, 텀블러 등 브랜드 굿즈가 인기 품목이다.
베이징 싼리툰의 카페 키츠네 매장과 가까운 곳엔 스웨덴 H&M 산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르켓(ARKET) 매장도 있다. 아르켓이 2021년 9월 연 중국 첫 매장이다. 2층으로 된 매장의 1층 한쪽엔 아르켓 카페(ARKET Café)를 열었다. 채식 메뉴가 특징이다. 아르켓 카페는 아르켓이란 브랜드를 잘 모르는 소비자를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어떤 브랜드인지 경험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며 브랜드 공간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럭셔리 중고 거래(리세일) 플랫폼은 명품을 자랑하고 싶은 1020 세대의 인증샷 욕구를 공략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중고 명품 매매 성지인 레아빈티지(Rea. vintage)는 매장 한 켠에 카페를 차렸다. 라떼 거품에 샤넬 로고와 글자를 찍어낸 라떼 아트와 루이비통 로고 빵이 샤오훙슈·더우인 등 소셜미디어에서 히트를 쳤다. 예쁘고 남들도 갖고 싶고 부러워할만한 것을 찾는 Z 세대의 과시 심리를 적중했다.
◇ 자동차·보석 브랜드도 카페 열고 스테이크 팔고…충성 고객 늘리기
미국 럭셔리 보석 브랜드 티파니앤코(Tiffany & Co.)는 미국·영국에서 운영 중인 블루 박스 카페(The Blue Box Café)를 중국 상하이·베이징에 들여놨다. 베이징 티파니 카페는 런던 해로즈를 제치고 세계 백화점 매출 1위라는 베이징SKP에 입점했다. 인테리어와 식기를 티파니 고유의 색인 티파니 블루로 꾸몄다. 대표 메뉴인 블루 박스 케이크는 588위안(약 11만 원), 3단 애프터눈티 세트는 688위안(약 13만 원)에 판매 중이다. 20g짜리 캐비아(철갑상어 알)와 돔페리뇽 샴페인 세트 가격은 4588위안(약 87만 원)에 달한다. 값비싼 목걸이·반지를 사는 대신 커피와 디저트로 티파니 스타일을 체험하는 곳이다. 젊은 세대 소비자의 접근성과 충성도를 함께 높이는 전략이다. 럭셔리 브랜드를 다루는 패션 잡지 보그(Vogue)는 베이징 궈마오상청 쇼핑몰에서 보그 카페(Vogue Café)를 운영하고 있다. 보그는 “잡지에서 그대로 가져다놓은 듯한 인테리어 속에서 패셔너블한 여성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외국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도 중국 대도시에서 브랜드 이름을 건 식당을 열었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광둥성 선전에 브랜드 체험 센터인 메르세데스 미(Mercedes me) 레스토랑·바를 운영 중이다. 선전 지점은 2014년 독일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일본 도쿄, 이탈리아 밀라노, 호주 멜버른, 홍콩에 이은 6번째 체인이다. 앞서 베이징·상하이에서 운영하던 지점은 문을 닫았다. ‘미’ 시그너처 건식 숙성(드라이 에이지드) 호주 와규는 45일 숙성 스테이크가 1998위안(약 38만 원)인데, 벤츠 차주에겐 특별 할인이 있다고 한다. 독일 BMW는 베이징 퉁저우구에 들어선 미국 테마파크 유니버설 리조트에 BMW 조이큐브(JOYCUBE)란 식당 겸 브랜드 체험 센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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