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조 ‘통큰 투자’서 외교분쟁 중재까지… 미국 ‘오일패권’에 도전하는 중국[Global Focus]

김선영 기자 2023. 4. 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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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중국, 중동서 영향력 키우며 ‘외교전쟁’
연대 늘려 평화 수호자로
중동국가간 분쟁땐 석유값 상승
안정수급 위해 역내 중재자 역할
시진핑, 작년 12월 사우디 방문
네옴시티 관련 투자 34건 체결
최대 거래국 유대감 강화 목적
페트로달러 체제까지 흔드나
사우디·이란, 위안화 거래 시작
백악관은 빈살만과 안보 논의
CIA, 사우디와 정보 공조 지속
미국도 기존 영향력 수호나서
그래픽=권호영 기자

김선영 기자,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중국의 중동 내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사우디의 ‘네옴 시티’ 건설을 비롯한 각종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고 걸프협력기구(GCC) 국가들에도 지원을 공언했다. 특히 지난 3월 10일,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 종주국으로 중동 내 패권 다툼을 하던 사우디와 이란을 중재해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도록 한 것이 그 절정으로 꼽힌다. 미국의 의도대로 결정되던 중동의 역학구도가 점점 중국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에 여세를 몰아 최근 시리아를 GCC에 복귀시키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중동 내 새로운 중재자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안정적인 자원 수급을 위해 중동 내 영향력을 계속 확대할 것이라 보고 있다.

◇中 안정적 석유 확보, 미·중 경쟁에서 필수적 = 중국의 ‘대 중동 외교’의 가장 큰 목표는 안정적인 석유 및 가스 자원 확보다. 급속히 발전하는 자국 산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석유 확보가 필수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경우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으로 최대 수입국인 중국 입장에선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하는 국가다. 시 주석 방문 당시 중국이 292억6000만 달러(약 38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34건의 투자 협정을 체결하는 등 사우디에 ‘통 큰 선물’을 안긴 것도 사우디와의 유대 강화에 목적을 뒀다. 최근 사우디는 중국 주도의 안보협력기구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에 파트너로 가입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석유 가격을 높일 수 있는 중동 국가들끼리의 분쟁이나 내부 혼란을 원하지 않고 있다. 사우디-이란 관계회복 중재도 현재 내부 개혁을 추진 중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외부적 위협을 줄여 중동 역내 안정을 꾀하기 위한 정책으로 해석된다. 정만영 연세대 중국연구원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최근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와의 석유 거래를 통해 전 세계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며 발언권을 키워왔다”고 분석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아랍의 봄’을 경험한 국가들이 안정적 경제 성장을 유지하면서 정치적 혼란을 피하길 원하고 있어 중국의 경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영향력 강화에 반비례해 미국의 영향력은 줄고 있다. 사우디는 지난 3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미국의 증산 요구를 무시한 채 ‘감산’을 결정했다. 심지어 사우디는 또 다른 시아파 국가이자 미국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시리아와도 관계 정상화에 나서고 있다. 시리아는 2011년 내전 발생 후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에서 퇴출당했는데, 사우디와 시리아의 관계 개선을 계기로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도 전망된다. 이란은 미국·서방과의 핵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미국 주도의 국제 경제 제재를 중국과의 긴밀한 연대를 통해 해결하려 하고 있다. 사우디, 이란뿐 아니라 최근 이집트도 러시아에 무기 수출을 하고 나서며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무역 거래의 위안화 결제, 페트로달러에 도전 =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와 함께 중국은 원유 거래의 위안화 결제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의 싹을 중동에서 틔우겠다는 일이다. 지난해 미국이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달러가 필요 없는 무역’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3월 14일 중국 런민(人民)은행은 사우디 국영은행에 첫 위안화 대출을 해줬다. 또한 3월 27일에는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중국 정유회사인 룽성(榮盛) 석유화학 지분 10%를 위안화로 매입했고, 다음날인 28일에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UAE 산(産) 액화천연가스(LNG) 6만5000t을 프랑스 토탈에너지를 통해 수입하며 위안화로 결제했다. LNG는 통상 달러로 거래하는데 중국이 처음으로 LNG를 위안화로 결제한 것이다. 정 교수는 “과거에는 미국의 ‘달러 패권’이 공고했으나, 사우디·이란 같은 국가들이 중국과 위안화로 거래하고, 상하이(上海)에서 ‘위안화 선물 시장’이 형성되며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위안화 결제 활성화는 미국의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내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74년 사우디와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하고, 사우디는 석유로 얻은 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한편 미국 무기를 구매한다는 합의를 통해 전 세계의 ‘달러 패권’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른바 ‘페트로달러’ 체제의 확립이다. 그러나 중국의 ‘위안화 결제’가 활성화되면서 미국의 강력한 패권 도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석유거래 외에도 러시아가 중국과 자국 통화 결제를 선언했고, 브라질까지 이에 동참하면서 점차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중동 패권 수호 움직임 = 중국의 영향력에 미국은 중동 안보에서의 영향력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1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이란의 위협과 예멘 내전 종식 등에 대해 논의했다. 백악관은 양측이 “이란과 다른 지역의 위협에 맞서 억제력을 유지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설리번은 이란이 핵무기를 절대 획득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변함없는 약속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정기적인 연락을 유지하고 ‘글로벌 인프라 투자 파트너’(PGII), 친환경 에너지 협력, 최첨단 오픈랜(O-RAN·개방형 무선 접속망) 5·6세대 이동통신(5·6G) 개발·투자 등에 대한 소통도 강화하기로 했다.

앞서 6일 미 언론들은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이달 사우디를 방문해 양국 간 정보 공조를 재확인하고 관계가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또 사우디 감산 발표 직후 백악관은 해당 조치를 미리 통보받았다며 “사우디는 지난 8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샤디 하미드 교수는 “미국은 사우디에 분노할 일이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양국 간 균형점을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멀라 해리스(오른쪽 세 번째) 미국 부통령이 지난달 잠비아 케네스 카운다 국제공항에서 무탈레 날루망고(〃 두 번째) 잠비아 부통령의 환대를 받으며 비행기에서 내려 걷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미국은 아프리카서 중국 ‘자원 독점’ 깨트리기… 희토류 확보 위해 대규모 투자

민간 중심 구조 바꾸긴 역부족
“공급망 달성 10년 걸릴 수도”

중국이 미국의 석유 패권에 도전해 중동에서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꾀하자 미국은 아프리카에서의 중국의 ‘희토류 패권’을 막기 위한 역공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등에 사용될 차세대 자원 확보를 위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등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등 대아프리카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민간 중심의 아프리카 자원 확보 전쟁이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13일 외신 등에 따르면,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3월 30일 탄자니아를 방문해 현지 카방가 광산 투자 등을 포함해 약 5억6000만 달러(약 7411억 원)의 지원 계획을 밝혔다. 카방가 광산은 대규모 니켈 매장지로 오는 2026년부터 미국 등에 배터리용 니켈을 공급할 예정이다.

미국은 앞서 아프리카 49개국 정상과 아프리카연합(AU) 대표단을 8년 만에 초청해 미국-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열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리카의 미래에 ‘올인’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콩고민주공화국, 잠비아 등과도 코발트, 리튬에 대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아프리카 내 희토류 확보를 위해 잰걸음을 걷고 있다. 영국도 최근 나미비아에 새로운 리튬 광신을 개설하는 등 자원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미국의 활동은 중국이 아프리카 내 광물 채굴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을 무너뜨려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전 세계가 ‘그린에너지’ 비중을 계속 확대하며 태양광 전지판, 풍력 터빈, 자동차 배터리 등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이들을 생산하기 위한 원료인 코발트, 리튬, 니켈, 망간, 흑연, 희토류의 가공 및 정제시장 대부분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자국 중심의 전기차·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선 원자재 확보가 필수적이다.

자산관리회사 EMG 어드바이저스의 공동창업자인 윌 맥도너는 “이대로 가면 중국이 희토류계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될 것이고 중국 가격 결정에 전 세계가 영향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C)의 크리스천 제로드 니마는 최근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에 대한 자원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노력과 활동이 한계가 있으며, 중국을 따라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데이비드 신 조지워싱턴대 엘리엇 스쿨 교수는 “중국 기업들이 국가의 지시와 지원하에 관련 산업에 참가하고 있다면, 미국 기업들은 철저히 수익성만을 보고 사업 개시 여부를 살피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품 자문 회사 하우스 마운틴 파트너스의 크리스 베리 대표는 “미국이 중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배터리 광물 공급망을 달성할 기회를 갖기까지는 몇 년, 어쩌면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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