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반 잔이나 남았나 반 잔밖에 남지 않았나[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컵에 물이 반잔 정도 있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아직 반이나 남았으니 마시기에 충분하다”고 하고 다른 이는 “반밖에 남지 않았으니 아쉽다”고 하기도 한다. 같은 사실을 두고 보는 시각이 다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시장에 대한 평가다. 보는 시각에 따라 보도 내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흥미로운 주제 두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사례는 현재 미분양 문제가 위험한 수준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다.
최근 미분양 증가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2021년 9월 1만3842채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던 미분양 재고는 2023년 1월 7만5359채까지 늘어났다. 14개월 만에 5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미분양 재고 증가 속도가 이렇게 가파른 것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로 가는 결정정인 증거라는 논지의 기사가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최근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2월 미분양 재고는 1월에 비해 79채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2022년 12월에 비해 2023년 1월이 7211채나 늘어났던 것에 비해서는 미분양 재고 증가세가 멈춘 것이다.
더구나 수치상으로는 79채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실제로는 거의 늘지 않은 양상을 볼 수 있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실제로 미분양이 늘어난 지역은 서울(1103채), 대구(422채), 광주(346채), 세종(151채), 제주(149채), 충북(14채) 등 여섯 개 지역뿐이다. 반면 764채가 줄어든 경기도를 포함해 11개 지역은 미분양 재고가 전달보다 줄어들었다.
미분양이 가장 많이 늘어난 서울도 강동구에서만 1124채가 늘어난 것이고 강동구를 제외하면 서울의 미분양 재고는 오히려 21채나 줄어들었다. 강동구에서 2월에 미분양 1124채가 늘어난 것은 둔촌주공 아파트의 청약이 순위 내 완판되지 않자 잔여 물량이 미분양으로 잡힌 것이다.
하지만 이 잔여 물량은 3월에 이미 모두 완판됐다. 결국 4월 말 발표될 3월 미분양 재고에는 강동구 물량 증가분 1124채가 제외돼 서울 미분양 재고 수준은 1월 이전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도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악성 미분양이라고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이 한 달 만에 13%나 급증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주로 보도되고 있다. 미분양 물량 증가가 주춤하자 준공 후 미분양 증가로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진실은 무엇일까.
2023년 1월의 준공 후 미분양 재고는 7546채이고 2월은 8554채이므로 13%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의 준공 후 미분양 재고는 역대 최저치였던 2022년 5월에 비해서도 25% 증가에 그쳤다. 전체 미분양 재고가 역대 최저치에 비해 445%나 늘어난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평균 이하의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결국 역대 평균치보다 높은 수준인 전체 미분양 재고는 재고가 더 이상 늘지 않자 보도에서 제외되고 그 대신 역대 평균치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인 준공 후 미분양 재고가 전달에 비해 늘어나자 이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한 달 사이에 보도의 초점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는 미국 집값이다. 지금 미국 집값은 오르고 있는 것인지, 내리고 있는 것인지 한국 언론의 보도만 보면 알기 어렵다. 심지어 미국 집값이 계속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도되기도 한다. 그러면 진실은 무엇일까.
미국 중개사협회(NAR)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월 36만1200달러였던 미국 주택의 중간값이 2월에는 36만3000달러로 상승했다.
전국적인 통계는 2월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개별 집값은 3월에도 상승세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미국 집값이 10여 년 만에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1월에 비해 2월 집값이 분명히 올랐는데 왜 이런 보도가 나오는 것일까.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2023년 2월 집값은 1월에 비해 오른 것은 맞지만 2022년 2월 집값이 36만3700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그러니까 전년 동기 대비 집값은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는 표현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면 미국 집값을 평가할 때 전월에 비해 집값을 비교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전년 동기 대비 집값을 비교하는 것이 맞을까.
<표3>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집값은 주기성, 다시 말해 계절 효과가 상당히 강하다. 매년 6월 집값이 정점을 찍고 7월부터 하락하다가 다음 해 1월 바닥을 찍고 2월부터 반등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미국의 집값은 전년 동기에 비해 하락했으므로 미국의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얼마 전까지, 그러니까 작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국의 집값은 전년 동기 대비 상승했었다. 하지만 그때 한국 언론에서는 미국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전월에 비해 하락했기 때문이다.
분석하려면 기준이 동일해야 한다. 작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는 전년 대비 집값이 상승했지만 전월 대비 하락했으므로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2월에 이르러서는 전월 대비 상승했지만 전년 대비 하락했으므로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미리 정해진 결론에 기사를 맞추려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관성 없는 보도 행태에서 본인이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왜곡 보도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기사를 쓴다는 생각으로 원 데이터를 찾아 직접 분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신에게는 12척의 군선이 남아 있아옵니다”라고 하고 나라를 지킨 사람도 있고 “내게는 군선이 12척밖에 없어 왜군과 상대가 안 된다”고 하고 전장에서 도망친 사람도 있다.
컵에 물은 반이 차 있다. 당신은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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