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가 700원으로…투기판 된 한국ANKOR유전
거래소 "상장폐지는 어려워"
최근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폐쇄형 펀드인 상장수익증권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펀드가 가진 가치와 상관없이 과도하게 주가가 널뛰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청산한 '베트남개발1'이 지난해 이유 없는 급상승을 보인 데 이어 올 들어선 '한국ANKOR유전'에서 같은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
한국ANKOR유전은 내재가치가 100원도 안 되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상황이지만 7배 이상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다. 이에 금융투자업계에선 투자자 보호를 위해 펀드를 상장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키를 쥐고 있는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요건은 있으나 실제 적용은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가치 없는데 수요 몰리며 '급등'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한국ANKOR유전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이달 초 170원이던 주가는 지난 11일 700원으로 312% 상승했고, 전날에는 갑작스럽게 하한가를 맞으며 490원으로 떨어졌다.
한국ANKOR유전은 미국 ANKOR 유전의 광업권 일부를 보유한 회사의 지분을 취득해 원유 판매대금을 받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펀드다. 해외자원개발 펀드가 쏟아지던 지난 2011년 설정됐으며, 폐쇄형 펀드로 환매가 불가능해 투자자의 환금성 확보 차원에서 2012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이후 유전 생산량 감소, 유가 하락으로 배당을 실시하지 못하다가 지난해 주요 자산인 ANKOR 유전을 매각한 금액과 한국무역보험공사로부터 받은 보험금을 투자자에게 배당하기로 했다.
배당금은 주당 1670원으로 정했으며 배당기준일은 지난해 12월15일이었다. 배당 결정에 따라 지난해 12월 초 1670~1680원대에서 움직이던 주가는 배당락 이후 22원으로 하락했다. 그런데 지난 12월14일 펀드 보유 자산 모두를 배당했는데도 주가가 27% 넘게 상승했다. 이어 연일 28%씩 뛰면서 올 초에는 주가가 360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4분기 기준 한국ANKOR유전의 순자산은 약 110억원으로 기준가격은 157원 수준이다. 그러나 보유한 수익증권 가치가 처분 시점에서 더 낮아질 가능성이 커 내재가치는 사실상 100원 미만이다. 펀드를 운용하는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도 실질적인 펀드 기준가격이 100원 미만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펀드 청산 시점에 투자자는 100원도 채 받기 어려운데 과도한 투자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700원까지 올라간 것이다.
올 초 청산한 베트남개발1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베트남 부동산 개발사업을 진행했던 이 펀드는 지난해 말 모든 자산을 매각하고 현금만 보유한 상황이었다. 1주당 가치는 73원에 불과했으나 주가는 한때 498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비이성적 투자…상장폐지로 못 막나
일반적인 펀드는 개방형 펀드로 환매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폐쇄형 펀드는 환매가 불가능하다. 투자금으로 부동산이나 선박·광산 등 자산을 사들였는데, 환매를 위해 이들 자산을 매각할 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이 환금할 수 있도록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거래를 가능하게 했다.
상장했지만 기본은 펀드다. 자산의 평가손익, 환율 등 변동에 따라 매일 기준가가 변한다. 펀드가 만기를 맞을 때 투자자들은 기준가격을 돌려받으므로 주가와 기준가는 비슷한 수준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개발1이나 한국ANKOR유전 사례처럼 상장수익증권에서 비정상적인 거래가 발생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현재 증시에 상장한 다른 상장수익증권이 추후 청산절차를 거칠 때 같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일각에서는 투자주의종목 지정, 거래정지 등 거래소의 여러 조치에도 투기수요가 여전한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상장폐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을 보면 공익 실현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수익증권의 상장폐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상장폐지가 가능하다.
이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상장폐지 규정은 존재하지만 '판단으로 결정한다'는 명확하지 않은 요건으로 상장폐지하기는 어렵다"며 "해당 요건으로 상장폐지한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고 말했다.
최성준 (cs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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