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어시’의 시대, 내 자리는 어디인가[IT칼럼]
골드만삭스는 인공지능이 일자리 3억 개를 위협한다는 보고서를 지난 3월 말 내놨다. 스탠퍼드대학교는 4월 초 386페이지짜리 장문의 인공지능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사업주들이 비용 절감이나 인사이트 발견 등 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공지능을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챗GPT발 혼돈이 경제를 삼키기 시작했다.
챗GPT가 지난해 말 등장했을 때 이미 GPT-3 등 기존 제품을 써봤던 이들은 사실 크게 달라진 걸 느끼지 못했다. 기계는 여전히 자신만만하게 헛소리를 해대고, 오래전의 학습 시점에 정보는 멈춰 있었다. 그게 왜 가능한지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는 딥러닝의 주먹구구식 기술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전 인류에게 그것이 동시에 전달될 때 벌어질 일을 간과했다. 익지 않았어도 솥뚜껑은 열렸고, 주위에는 허기진 이들이 가득했다.
“어, 이 정도면 그런 것도 해볼 수 있겠는데?” 기계는 아직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안도하기 쉽지만, 애초에 시장도 조직도 인간에게 완벽한 일을 기대하지 않았다. 실속 없고 미덥지 못한 지금 정도만으로도 우리를 적당히 대신하기엔 충분했다.
이미 기업은 번역가를 고용하는 대신 ‘딥엘(DeepL)’로 자동번역을 시킨다. 완벽하진 않아도 편집자가 손 보면 되는 수준으로 올라간 덕이다. 삽화도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미 생성형 AI로 그린 만화책과 웹툰이 출간 중이다.
내가 만든 놋그릇에는 혼이 담겨 있다고 주장해 봐야,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플라스틱 그릇에 현대인은 이미 모두 만족하고 있다. 생산성과 가성비가 시대정신이다.
이제 누구나 수십명의 로봇 ‘어시’를 데리고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부조종사)이 코드도 옆에서 함께 짜주고, 이제는 오피스 문서까지 만들어 준다. 화이트칼라 노동자 그 자체다.
영향을 받지 않는 직업이 있을 리 없다. 내가 먼저 조종석에 앉아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부조종석엔 이제 사람의 자리는 없다. 아마도 이 사회의 어시들, 대체 가능하다고 설정된 인력들, 프리랜서나 비정규직이 순식간에 교체되며 약한 고리가 될 터다.
이제 우리 ‘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인 건 아직 ‘갑’들도 조종석에 앉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스위프트(애플 제품용 소프트웨어를 짜기 위한 언어)를 하나도 몰라도 챗GPT로 아이폰 앱을 개발했어요” 같은 무용담이 속속 등장 중이지만, 똑같은 챗봇에 일반인이 앱을 만들어 달라고 해도 뚝딱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사실 그러한 성공담의 주인공은 이미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나 그 개발 공정에 익숙한 이였다.
어떻게 일을 시켜야 하는 줄 알고, 막혔을 때 어떻게 푸는지 아는 대화형 인재, 하나의 전문 분야에 통달하면서도 전체를 아우를 줄 아는 T자형 인재라야 극단적 차별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나도 태평하게 칼럼을 쓰지만, 이미 ‘씨넷’이나 ‘버즈피드’ 등은 챗GPT가 쓴 기사를 송고하고 있다. 대개의 독자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두려운 건 기계가 아니라 고도의 생산성으로 무장한 조종사들이고, 그 옆자리에 우리는 없으리라는 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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