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그 이후, ‘생기부 빨간 줄’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
변성숙 변호사는 교육청에서 일하는 학교폭력(학폭) 전문 변호사다. 2015년부터 경기도교육청에서 학교폭력 법률 대응 업무를 맡고 있다. 학폭 사안이 발생했을 때 교육(지원)청의 장학사, 학교의 관리자와 교사에게 절차를 안내하고 법적 쟁점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한다. 학폭 처분 불복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에 대응하는 교육지원청을 법률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학교폭력을 비롯한 학교 내 갈등이 법정으로 가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교육 현장 내 변 변호사 같은 법률 전문가의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3월27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에서 변 변호사를 만났다.
지난겨울을 지나며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2023학년도 새학기부터 달라진 추세가 있나?
과거에 발생했던 학교폭력에 대한 문의가 훨씬 많아졌다. 고등학생이 되어 초등학생 때의 일을, 혹은 성인이 된 피해자가 ‘지금도 학교폭력 접수가 가능하냐’며 교육(지원)청에 전화를 해 많이 물어본다. 학생일 때 입은 피해이고, 현재 초중고 학생에 해당한다면 모두 접수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최근 발생하는 학교폭력은 어떤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나?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학폭이 학폭으로만 발생하는 건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요즘 대부분이 학생 생활지도, 아동학대, 교육활동 침해 행위 등과 맞물려서 학교폭력예방법 하나만으로 다룰 수 없는 복합 사건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학생들 사이 갈등이나 다툼이 일어나 담임교사가 그들을 불러 생활지도를 하게 되면, 거기에서 서운함을 느낀 어떤 학부모는 해당 교사의 행위를 아동(정서)학대라 주장한다. 이때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이 커지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교육활동 침해를 신고하는 교사도 있다. 이런 사안들은 초반에 다양한 컨설팅이 잘 들어가지 않으면 분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학교폭력을 비롯한 교육 현장의 갈등이 사법 논리로 다뤄지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변호사를 찾아가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조치 결정이 나오고 난 뒤 불복 절차를 밟기 위해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가해 학생 측이든 피해 학생 측이든 학폭 신고가 접수된 그날 바로 법률 상담을 받고 변호사를 선임한다. 사안 처리 초기부터 신고서를 대신 써준다거나, 전담기구 조사 과정에 변호사가 대동하겠다거나, 변호사를 통해 의견서를 내겠다거나 이런 게 최근의 흐름이다. 2019년 정도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던 일이다. 어떤 법무법인들은 이런 학폭 전문 법률 서비스를 아예 패키지로 만들어놓기도 했더라.
변호사가 개입하면서 갈등이 더 깊어지고 꼬이기도 할 것 같다.
변호사들이 일을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조금 전에도 전화를 하나 받았는데, 학교 교장선생님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더라. 현재 학폭이 발생하면 일정 요건을 갖춘 경미한 사건은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교육지원청의 학폭위로 넘기는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학교장 자체해결제에 해당되지 않는 사안인데도 변호사가 자꾸 학교에 전화해 ‘학교장 자체해결로 종결하라’며 학교장을 엄청나게 압박하고 있다는 거다. 학교에서는 변호사가 여전히 두려운 존재다. 자꾸 압박 전화가 오고 법무법인 명의의 내용증명도 계속 날아오고…. 학부모들이 변호사의 잘못된 안내와 조언만 믿고 학교가 제대로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며 학교를 오해하고 불신하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학폭위 처분 결정이 행정소송에서 뒤집히기도 한다. 크게 절차상 하자와 내용상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두 가지 이유던데.
절차상 하자는 과거 변호사들이 가장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단골 전략이었다. 예전 학폭위가 학교 내에서 자치위원회로 열리던 시절에는 절차적 하자로 학교 측이 많이 패소했다. 교육지원청으로 학폭위 업무가 이관된 이후에는 절차상 하자로 인한 패소는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 내용상 하자, 그러니까 학폭 처분 수준이 너무 무겁다거나 가볍다 혹은 이 행위가 학폭이 맞다 아니다에 대한 다툼이 더 중요해졌다.
법원은 학폭위와 판단이 어떻게 다른가?
학폭위는 사법기구도 수사기관도 아니다. 그래서 증거라는 표현을 잘 안 쓴다. 학폭위는 학폭이라고 합리적으로 의심이 되면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구조인데, 법원은 오히려 학폭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고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 구조다. 그래서 요즘 학폭 분쟁이 일어나면 학부모와 변호사들은 초기부터 ‘이걸 증거로 쓸 수 있느냐 없느냐’ ‘이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된 거다, 아니다’ 이런 것들을 많이 따진다.
법원은 또 수사기관의 판단을 뒤집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 학폭 사안이 학폭위와 별개로 수사기관에 신고가 돼서 형사사건 등으로 따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학폭 정의상으로는 충분히 폭력으로 인정될 수 있는 행위가 수사기관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나오면 행정소송에서도 처분이 취소되는 경우가 꽤 많다.
졸업(상급학교 진학)을 이유로 소송 제기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는 ‘각하’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것도 사법부와 교육부의 해석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법원에서는 학생이 졸업을 하면 그 학교에서 받은 학폭 처분을 이행할 의무가 사라진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 더욱이 학교생활기록부에서 그 기록이 삭제까지 되면 다툴 이익이 없다고 각하 결정을 많이 내린다. 그런데 교육부에서는 졸업을 해도 처분 이행은 해야 한다고 본다. 만약 중학교 때 사회봉사 처분을 받았는데 이행하지 않았으면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라도 이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학폭 처분을 받아도 집행정지를 신청하면 잘 받아들여져서 이행 의무를 지연시키는 전략으로 쓰기도 한다는데.
그렇다.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집행정지 인용률이 60% 내외는 될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학폭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이 진행될 때 가장 큰 갈등이 바로 이 집행정지와 관련된 내용이다. 법적으로는 집행정지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전학이든 학급 교체든 학교에서 처분을 집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실무적으로 쉽지가 않다. ‘집행정지 결과 기다리는 중에 어떻게 집행할 수 있나.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향후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 이런 내용증명이 학교로 막 날아든다. 꿋꿋하게 집행했다가도 집행정지로 결과가 뒤집히기라도 하면 학습권 침해 등 온갖 명분으로 공격이 들어온다. 겁을 먹은 관리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결과적으로 결정이 날 때까지 유보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외부에서는 뭔가 편파적으로 사안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학교와 교육청에 대한 신뢰도 전반적으로 무너진다.
이제 학폭이 발생하면 학생과 학부모는 학폭위가 아닌 법원을 바라보면서 대응할 것 같다.
예전에는 학폭 조사가 진행되면 자기가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쿨하게 인정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 아이들이 더 영악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들이 ‘내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징계 수준이 높아지고 이걸 카드로 해서 법적 공격이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초반에 아이가 잘못을 인정했다가 후에 부모의 개입으로 그걸 뒤집는 사례가 많은 게 이 때문이다.
이는 현재 학교폭력예방법의 해석 때문인 측면도 있다. 현재 법령상 경미하더라도 학교폭력이기만 하면 교육장이 무조건 조치를 내리도록 되어 있다. 교원지위법과 비교해보면 거기에서는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대해 징계를 ‘할 수 있다’이다. 학폭법이 개정된다면 이 부분을 손볼 필요가 있다. ‘학폭을 저지르면 무조건 징계를 받고 생기부에 기재되고 그러면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강하니 내 아이의 학교폭력 사실 자체부터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내용상 경미한 학폭인 경우 가해 학생이 진정으로 반성을 하고 있고 상대방도 용서해준다면 ‘조치 없음’으로 갈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학폭 처분 생기부 기재는 필요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분명 효과가 있다.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기재 후에도 발생 빈도가 여전하지 않으냐’ 등의 비판이 있지만 그래도 생기부 기재 덕분에 심각하고 큰 학폭이 어느 정도 억제되는 효과는 있다. 학생이든 학부모든 학폭 처리 절차 등 다른 건 다 몰라도 이건 알고 얘기한다. ‘야, 너 학폭 저지르면 생기부에 빨간 줄 그여.’ 다만 예전처럼 1호(서면 사과)부터 9호(퇴학)까지 모든 조치가 일률적으로 다 기재될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생기부 기록 보존 기한을 늘리고 대입 반영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관련 소송이 더 잦아지는 부작용은 차치하더라도, 사실 생기부 기록을 오래도록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정적 대책일 뿐 큰 실리가 없다. 대입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크게 생각하는데, 현재 정시 전형의 경우 대부분 생기부를 반영하지 않는다. 대학 입학사정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사실 1호부터 3호까지는 반영한다고 해도 영향력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 영향력이 있다 해도 졸업 전인 고3 2학기 중에 이미 다 입시에 반영된 상태다. 수시 입시가 진행되는 9월 전후에 학폭 처분 내용을 생기부에서 삭제해달라는 학부모 민원이 폭발하고, 학폭 취소 소송도 판결을 그 이전에 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이 쇄도한다. 영향은 그때 이미 다 끝났다. 지금과 같은 구조라면 졸업 시 삭제든 졸업 후 2년 보존이든 영구보존이든 큰 차이가 없다. 재수, 삼수 사례를 이야기하는데 그런 예외를 고려해 전체 틀을 바꿔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폭력예방법을 개정한다면 무엇부터 개선되어야 할까?
2004년 제정 이후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두 개씩 조항을 바꾸며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왔는데, 그 때문에 약간 누더기법처럼 되어버린 측면이 있다. 대대적으로 균형 있게 한번 손질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개정되었으면 하는 첫 번째 부분은 2012년에 바뀐 학교폭력의 개념이다. 원래는 ‘학생 간 폭력’이었는데 그때 ‘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력’으로 바뀌었다. 학교 밖 청소년 등을 아우른다는 취지였지만 이 조항 때문에 교사, 상대 학부모 등까지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되고 학교 밖 온갖 사건이 다 들어오면서 혼란이 너무 크다. 학폭법은 학교 내에서 학생들 사이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집중도 있게 개입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가해 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 기준을 좀 더 세밀하게 개정해야 한다. 지금은 그 기준이 전혀 세부적이지 않다.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화해 정도 카테고리 안에서 점수를 매기는데 점수별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심의위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되어서 동일한 사실관계를 가지고도 점수가 다 다르게 나온다. 그간 쌓인 데이터를 활용해 세부 기준을 정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기준이 있으면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의 개입 여지도 줄어들고 법원에서 학폭위 판단이 뒤집히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조치의 종류가 아니라 조치의 내용을 내실화하는 일이다. 학폭 절차를 거치고 나서 피해 학생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한탄이 이거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는데요?’ 뭔가 눈에 띄는 피해 측의 보호와 가해 측의 반성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데 실제로는 그게 안 보이는 거다. 교내 봉사든 사회봉사든 특별교육 이수든 처분이 나와서 이행을 한다 해도 프로그램이 매우 형식적이고 부실하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확연히 눈에 띄는 변화인 전학을 그렇게들 원하는 거다. 적어도 출석정지라도 받아서 ‘미인정 결석’으로 생기부에 흠집이라도 내고 싶어 하는 거다. 꼭 중징계가 내려지지 않더라도 피해 학생은 보호받았다고 느끼고 가해 학생은 진정으로 반성할 수 있는, 이른바 교육적 해결과 관계 회복의 기회가 절실히 필요하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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