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위스키도 눌렀는데…’ 한국서 맥 못췄던 데킬라, 바쁜 잰걸음

유진우 기자 2023. 4. 1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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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섹시한(sexiest) 남자가 만드는 가장 인기있는(hottest) 술
영국 데일리메일, 2016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가 꼭 10년 전인 2013년 내놓은 데킬라 브랜드 ‘카사미고스(Casamigos)’의 별칭이다.

데킬라는 알로에를 닮은 다육식물 용설란(아가베 ·agave)으로 만든 멕시코 증류주다.

우리나라에선 데킬라라는 이름으로 두루 쓰이지만, 멕시코 할리스코주(州) 데킬라시(市)와 인근 일부 도시에서 이 지역 특산 ‘파란 용설란(blue weber agave)’으로 만든 증류주에만 이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만든 스파클링 와인만 샴페인이라 부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지역에서 일반 용설란으로 만든 증류주는 메스칼(mezcal)이라 부른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데킬라는 누가 봐도 ‘인기 있는 술’은 아니었다. 오히려 ‘돈 없는 학생들이 빨리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선과 맞물려 미국 사회에 멕시코에서 건너온 이민자가 늘면서, 이런 인식은 더 뚜렷해졌다.

특히 용설란 주정(酒精) 일부에 다른 저렴한 원료로 만든 주정과 첨가제를 잔뜩 섞어 만든 저렴한 메스칼이 ‘멕시코산 데킬라’라는 이름으로 널리 팔리자, ‘데킬라를 마시면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선입견마저 커졌다.

이런 인식은 카사미고스 출시 이후 완전히 뒤바뀌었다. 카사미고스는 병당 80~100달러(약 9만6000~12만원)에 달하는 상대적으로 높은 값에도 출시 이후 3년 동안 미국에서 12만 상자(144만병)가 팔렸다. 매년 성장률은 54%에 달했다.

데킬라 인기가 치솟자 세계 최대 종합주류기업 디아지오는 10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조1500억원)에 카사미고스를 사들였다. 주종은 다르지만, 신세계그룹이 미국 캘리포니아 쉐이퍼 빈야드를 사들인 금액보다 4배 더 많은 거액이다.

그래픽=손민균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디아지오가 조지 클루니 이름에 취해 지나친 금액을 지불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주류업계에서는 ‘10억달러도 저렴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13일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있는 주류 통계 기관 IWSR에 따르면 데킬라는 미국에서 보드카와 위스키를 제치고 올해 증류주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으레 미국하면 떠오르는 켄터키 버번 위스키조차 데킬라 성장세를 이기지 못했다. 특히 1병당 평균 가격 50달러(약 6만5000원)이 넘는 프리미엄 데킬라 시장은 2021년 이후 1년 만에 75%가 성장했다.

최근 디아지오는 설비로선 감당할 수 없을만큼 늘어나는 수요를 감안해 5억달러(약 6600억원)를 멕시코에 데킬라 전용 생산 시설을 짓는 데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디아지오와 쌍벽을 이루는 종합주류기업 페르노리카 역시 지난해 10월 코디고 1530(Código 1530) 지분 과반을 인수하며 데킬라 경쟁에 참전했다.

데킬라를 이 자리에 올린 주역은 조지 클루니 이후 줄지어 등장한 할리우드 스타들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원소주를 계기로 연예인 이름을 건 증류식 소주 만들기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은 앞장 서서 본인 데킬라 브랜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들 브랜드는 대체로 1병당 100달러에 달하는 프리미엄 데킬라를 표방한다. 여러 부재료와 첨가제, 저렴한 주정을 섞었던 이전 저렴한 제품과 달리 용설란 주정 100%를 사용하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참여하는 공정을 늘려 완성도를 높였다.

술은 짧고 둥근 전통 테킬라 병 대신 버번 위스키나 스카치 위스키를 담는 긴 병에 담아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여기에 스타 본인이 직접 등장하는 영화 예고편 같은 감각적인 광고로 소비력이 좋은 30~40대 층을 공략했다.

미국 최대 주류배달 플랫폼 드리즐리는 올해 내놓은 소비자 리포트에서 “지난 5년 동안 미국 내에서 팔린 데킬라 평균 가격은 30%가 뛰었다”며 “처음에는 스타 마케팅에 끌려 데킬라를 처음 사거나,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 섞어 마시는 용도로 데킬라를 샀던 소비자들이 맛과 향에서 고유함을 간직한 고급 데킬라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유입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데킬라는 유독 성장세가 더딘 모양새다. 국내 주류 소비자들 취향이 세분화되고, 글로벌 유명 브랜드 상품이 국내에서도 빠르게 인지도를 확보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와중에도 데킬라를 찾는 일반 소비자는 여전히 소수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데킬라 국내 수입금액은 2021년 299만달러에서 지난해 586만달러로 95%가 늘었다.

그러나 주류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데킬라 수요는 순수하게 데킬라를 마시는 개인 소비자보다 데킬라로 칵테일을 만드는 바, 라운지 같은 MOT(modern on trade) 채널 수요가 대부분”이라며 “팬데믹으로 지난 2년 동안 수입량이 줄면서 부족했던 재고분을 지난해 채운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손민균

실제로 2020년과 2021년 수입금액을 지난해 수입량과 더해 3년 분으로 나누면 379만달러에 그친다. 2018년이나 2019년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데킬라가 아직 시기상조라고 내다봤다. 용설란이라는 선인장을 이용해 만드는 데킬라 혹은 메스칼 특성상 이 제품은 미국 남부와 멕시코 혹은 쿠바 일대에서 밖에 제조할 수 없다. 어느 국가에서나 일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보드카, 혹은 이미 제조국이 상당히 많아진 위스키에 비하면 범용성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반면 일각에서는 최근 3년 사이 위스키 시장이 급변한 것처럼 주류 소비자 취향이 다분화하는 추세가 이어지다보면 국내 데킬라 시장도 일본처럼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이 바닥이니 오히려 성장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의미다.

한국주류종합연구소 관계자는 “국내에서 데킬라 소비자 층은 아직 한정적이지만 데킬라선라이즈 같은 유명 칵테일 주류 믹싱에도 자주 쓰이고,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데킬라 특유의 용설란 향을 이용해 하이볼에 넣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는 고량주나 유자 리큐르를 넣은 믹싱주류가 편의점 같은 채널에서 팔리고 있으니 데킬라를 이용한 레디 투 드링크 (Ready to Drink·RTD) 역시 또 다른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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