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시고 누르세요”... 국민 오디션으로 뽑은 R&D 과제
일반인 100명이 투표, 폐플라스틱 선정
“‘방금 들으신 발표에서 나온 기술이 정말로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 같다’거나 ‘상용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손에 쥐고 있는 기기를 통해 투표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자, 3초 드리겠습니다. 3초 안에 투표를 마무리해주세요.”
단상에 선 진행자가 마이크를 통해 투표 종료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리자 청중들이 손에 든 투표기기를 들고 고민에 빠졌다. 투표할지 말지를 망설이느라 버튼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려놓고 빙글빙글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쇼미더머니’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녹화 현장을 방불케 하는 이 현장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기술을 경합하는 오디션장이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브이스페이스에서는 국민에게 필요한 출연연 기술을 오디션 형식으로 발굴하는 ‘테크노믹스 오디션’이 열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함께 개최한 이번 오디션은 사회 난제 해결을 위해 출연연이 앞으로 개발할 기술을 국민이 직접 뽑는 자리였다. 사전 신청을 통해 뽑힌 100명의 일반 국민 청중평가단이 전문가 평가단과 함께 출연연이 제시하는 미래 기술개발 과제에 투표를 했다.
현장에 있던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민 세금으로 이뤄낸 기술 성과를 국민들에게 직접 소개하고 일반 대중과 과학기술 사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며 “200명 넘는 사람들이 오디션 방청을 신청했고 그 중 100명을 성별과 나이 균형을 맞춰 뽑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디션에 오른 기술은 모두 일곱 개다. 25개 출연연이 각각 두 개씩 후보를 제출해 사전 평가를 거쳐 7개의 연구개발 과제만 본선에 오른 셈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부터 헬스케어,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기술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사전예방적 사고 관리(Proactive Accident Management)’ 기술이었다. 발표자인 김찬수 KIST 책임연구원이 설명을 시작하자 청중들 중 일부는 팜플렛을 꺼내 기술 내용이 요약된 글을 읽으며 발표에 집중했다.
이 기술은 폐쇄회로(CC)TV와 같은 기기로 특정 공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몰려있는 지 계산한 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대처 방안들을 인공지능(AI)이 도출해내는 기술이다. 지난해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를 사전에 막는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치열한 오디션 끝에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기연)의 ‘그린수소 생산 플랜트’ 기술이다.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모아 에너지를 생산하는 플랜트를 만드는 기술이다. 발표자로 나선 라호원 에기연 책임연구원은 “이 플랜트가 완성되면 열분해공정과 가스화공정을 통해 폐플라스틱에서 원유와 수소를 뽑아낼 수 있다”며 “폐플라스틱 100t에서 원유 60t, 수소 20t을 만들어내 재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기술을 개발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표를 받아 우수상을 수상한 기술은 한국전기연구원(전기연)에서 개발 중인 ‘체내 완전삽입형 인공 달팽이관(와우)’였다. 기존 인공 달팽이관은 기기 중 일부만 몸속에 들어가고 배터리를 비롯한 나머지 무거운 기기는 머리 쪽에 붙어 있어 일상 생활에 불편함이 생길 수 있었다. 이에 전기연은 모든 부품을 소형화, 일체화해 전부 몸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차세대 인공 달팽이관을 만들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장내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소개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외부 전력, 중력 도움 없이도 원자력 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우주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소형 수송선을 3D 프린터로 만드는 기술을 선보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싱크홀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곳을 분석, 선별해 관리하도록 도움을 주는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대상, 우수상을 받은 두 기술에 투표한 대학생 정모(26)씨는 “환경과 장애 등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에 투표했다”며 “국가 예산이 어떤 기술에 쓰이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돼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대상과 우수상을 받은 연구팀에는 과기정통부 장관상과 각각 상금 500만원, 300만원이 돌아갔다. 나머지 5개 연구팀도 과기정통부 장관상과 상금 100만원을 받았다. 7개 연구팀은 후속연구지원 및 단기연수 등의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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