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펭귄 똥 어디 갔나, 위기 맞은 남극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4.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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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물 줄자 철분 감소로 플랑크톤 위기
플랑크톤 먹고 사는 해양 생태계 혼란
남극해 디셉션 섬의 펭귄 서식지. 둥지 근처의 토양은 철분이 풍부한 배설물로 인해 밝은 주황색을 띠고 있다./Oleg Belyaev Korolev

펭귄 똥이 사라지면서 남극 생태계가 위기를 맞았다. 배설물에 들어있는 철분이 바다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 있는 플랑크톤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해양과학연구원의 안토니오 토바르-산체스(Antonio Tovar-Sanchez) 박사 연구진은 지난 1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턱끈펭귄(학명 Pygoscelis antarcticus)이 남극해로 보내는 철분 양이 1980년대보다 절반으로 줄면서 생태계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턱끈펭귄은 젠투펭귄 속(屬)에 속하며, 남태평양과 남극해 인근 섬과 해안에 산다. 다 자라면 키가 70㎝ 정도가 된다. 부리 밑으로 검은 줄무늬가 있어 턱끈펭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0년대 이래 개체 수가 급감해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 배설물도 그만큼 줄어 남극 생태계도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님극해 디셉션 섬의 펭귄 서식지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 드론. 과학자들은 드론으로 지상을 촬영해 펭귄 개체수와 배설물 양을 알아냈다./Oleg Belyaev Korolev

◇펭귄 개체 수와 철분 공급량 절반 감소

스페인 연구진은 남극에 있는 말굽 모양의 화산섬인 디셉션 섬에 드론(drone·무인기)을 띄워 턱끈펭귄의 개체수와 배설물 양을 분석했다. 드론이 찍은 사진에서 펭귄을 찾고 지표면 색깔로 배설물의 양을 추산했다. 펭귄 배설물이 덮인 곳은 밝은 주황색이 된다. 펭귄 배설물도 채취해 분석했다. 펭귄 똥 1g당 철분이 3㎎(1㎎은 1000분의 1g) 들어있었다.

연구진은 드론이 찍은 사진과 펭귄 배설물 분석 결과를 토대로 턱끈펭귄이 배설물을 통해 매년 남극해에 521t의 철분을 공급한다고 추산했다. 턱끈펭귄은 기후변화로 개체수가 지난 40년 사이 50% 감소했다. 철분 공급량 역시 1980년대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스페인 연구진은 펭귄이 바다로보내는 철분이 줄면 해양 생태계가 망가진다고 설명했다. 펭귄 배설물에 들어있는 철분이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플랑크톤은 배설물에 포함된 철분을 먹고 자란다. 플랑크톤이 늘면 크릴과 작은 물고기에서 펭귄, 고래까지 번성한다.

펭귄 배설물의 철분은 이산화탄소 흡수에도 도움을 준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죽으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탄소를 격리하는 효과가 생긴다. 전 세계 바다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매년 인간이 배출한 탄소의 30%를 흡수한다. 펭귄이 줄어들면 플랑크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탄소 흡수도 감소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펭귄이 계절마다 남극해의 해빙을 따라 이동하면서 철분도 같이 전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펭귄이 철분이 풍부한 바다와 부족한 바다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국 사우스햄튼대의 마크 무어(Mark Moore) 교수는 아이뉴스(inews) 인터뷰에서 “펭귄은 철분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며 “이들이 철분이 부족한 곳으로 이동하면서 플랑크톤 성장을 촉진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고래 줄자 플랑크톤 감소한 것도 배설물 때문

동물 배설물의 철분이 해양 생태계를 좌우한다는 사실은 이미 고래에서 입증됐다. 미국 버몬트대와 하버드대 공동 연구진은 2010년 ‘플로스 원’에 고래가 영양물질을 바다 깊은 곳에서 표층으로 뽑아 올리는 펌프 역할을 한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고래 펌프(whale pump)’ 이론이다.

고래는 바다 밑바닥에서 크릴을 먹고 수면으로 올라와 배설한다. 이때 크릴의 몸에 있던 철분이 고래 배설물을 통해 수면에 퍼진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철분을 흡수해 급격히 늘어난다. 크릴과 작은 물고기는 이 플랑크톤을 먹고 자라고, 다시 고래와 더 큰 물고기가 이들을 잡아먹는다.

고래가 사라지자 철분을 이동시키는 펌프도 망가져 해양 생태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1910년부터 1970년까지 남극해에서 수염고래 150만 마리가 포경선에 희생됐다. 고래가 사라지면 먹잇감이던 갑각류 크릴이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크릴 개체 수도 20세기 중반 이후 80% 이상 급감했다. 고래 똥이 사라지자 바다의 생산력도 감소한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지난 2021년 네이처에 혹등고래나 대왕고래 같은 대형 수염고래의 먹이 섭취량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3배나 많았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20세기 초에는 고래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크릴이 지금보다 5배는 더 많았다고 추산했다. 과거 고래와 함께 먹잇감인 크릴도 번성했지만, 고래와 그 배설물이 사라지자 크릴도 급감한 것이다.

스페인 연구진은 수염고래들이 매년 배설물을 통해 약 1200t의 철분을 바다에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펭귄이 매년 521t을 공급하니, 개체수가 두 배였던 40년 전에는 오늘날 고래만큼 철분을 바다에 공급했다고 볼 수 있다. 고래와 펭귄 똥이 사라지면서 남극 바다가 심각한 영양 부족 상태에 빠진 셈이다.

/조선DB

참고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3),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3-37132-5

Nature(2021),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1-03991-5

PLoS ONE(2010),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01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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