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0도 일교차까지 그대로’...일산에 ‘제2의 달’이 뜬다
달탐사 2단계 사업에 투입하는 로버 성능 시험 준비 한창
“순수 국내 기술로 달 탐사 목표, 성공하려면 성능 시험 확실히 해야”
달을 향한 국내 연구진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우주탐사 연구개발(R&D) 사업이었던 달 탐사 1단계 사업으로 개발된 달 궤도선 ‘다누리’가 지난해 12월 임무궤도에 안착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 달 탐사국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 목표는 2030년까지 자체 기술로 달 착륙선을 개발해 로버(무인 탐사로봇)를 달로 보내는 ‘달 탐사 2단계 사업’의 성공이다. 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려면 달의 극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로버의 개발이 필요하다.
달은 지구와 완전히 다른 환경 탓에 로버의 임무수행은 물론이고 단순한 주행조차 쉽지가 않다. 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 수준이고, 진공에 가까운 기압, 200℃에 달하는 일교차 등 극한 환경이다. 작은 기계적 결함은 물론이고, 달 먼지로 인한 태양광 패널의 효율 저하 때문에 언제든 임무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다. 이미 수십 번의 달 탐사 성공으로 로버의 성능 데이터를 확보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달 탐사 로버를 개발하기 위해 달 환경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달 탐사를 위한 로버의 요람이 바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구축한 ‘지반열진공챔버’다. 지반열진공챔버는 토양을 포함해 달 환경을 재현한 시설로,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만이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
◇먼지 날리는 인공 달, 200℃ 넘는 일교차도 구현
지난 10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만난 이장근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 연구위원의 안내를 따라 미래융합관의 챔버실에 들어가자 마치 거대한 드럼세탁기의 모습을 한 지반열진공챔버가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와 폭이 4.7m에 무게는 100t(톤)에 달하는 거대한 챔버 내부에는 검은 흙을 가득 채운 토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검은 흙의 정체는 달 표면을 덮고 있는 흙과 같은 물질인 ‘레골리스’와 비슷한 성질의 모사토로 진공에 가까운 상태에서 먼지가 날리는 달 환경을 재현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다른 나라에서 갖춘 진공 챔버는 내부에 이물질이 없는 ‘클린 챔버’ 방식으로, 내부에 모사토를 넣어 달 환경을 재현하는 시설은 이 장치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챔버 안에 모사토를 넣으면 진공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부의 공기가 급속도로 팽창하고 빠른 속도의 흐름이 생겨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먼지가 날린다. 챔버를 가득 채운 먼지는 진공 펌프에 손상을 일으키고, 진공 챔버는 고장난다. 내부 공기를 아주 천천히 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진공상태를 만드는 데 한두 달이 걸릴 정도로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건설연은 내부 먼지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진공 펌프 속도 조절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해외 기술없이 순수 국내 기술력만으로 찾은 노하우로 달의 먼지를 구현한 것이다. 여기에 할로겐 램프와 액화질소를 이용해 내부 온도를 최저 영하 190℃에서 최고 영상 150℃까지 조절해 달의 큰 일교차까지 구현했다.
◇달 탐사 위협하는 극한 환경, 인공 달로 대비
달탐사 2단계 사업으로 달에 착륙할 로버는 달의 극한 환경을 견뎌야 한다. 달에 착륙한 로버가 마주하는 첫번째 시련은 200℃를 넘는 일교차다. 이를 위해서는 우주로 나가기 전 온도에 민감한 전자장치를 보호하기 위한 열 교환 장치의 성능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해 5월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인공위성의 열 교환 장치의 성능 시험에서 모사토가 들어 있는 토조를 제외하고 실험했는데, 토양에 의한 복사열이 제대로 발생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모사토가 단순히 먼지를 재현하는 것 이상으로 달 환경 모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달의 울퉁불퉁한 지형에서 로버의 주행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기능 개선도 예정돼 있다. 토조 내부의 달 모사토에 경사를 만는 기능으로, 오르막·내리막에서도 로버가 제대로 주행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한 조치다.
이 연구위원은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비롯해 해외에는 진공 상태에서 지형에 따른 주행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며 “기능 개선이 완료되면 주행 중 먼지에 의해 발생하는 마찰열에 대한 세부 데이터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반열진공챔버가 자리한 방에서 이어진 작은 공간에는 또 다른 용도의 챔버 2개도 마련돼 있다. 하나는 비교적 간단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소형 지반열진공챔버, 또 다른 하나는 정전기를 띠고 있는 달 토양에 의한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정전기유도진공챔버다.
달 표면의 토양은 태양광에 의해 지구에서보다 강한 정전기를 띠고 있다. 달 먼지는 로버에 달라 붙어 로버를 망가뜨리거나 전력을 공급하는 태양광 패널의 효율을 낮추는 만큼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성능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중력이 약한 달에서는 작은 충격으로도 먼지가 쉽게 휘날려 로버에 달라붙는 먼지의 양이 지구에서보다 많은 편이다.
이 연구위원은 “전자빔을 이용해 달 모사토에 정전기를 충전해 로버에 얼마나 달라 붙어 문제를 일으키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단순히 정전기를 충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달 토양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술로 달 탐사 목표, 성공으로 이끈다
한국의 달 탐사 임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단순히 로버가 잘 주행하고, 고장 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달 탐사를 위해 로버에 탑재한 장비들의 성능이 달 환경에 충분한지 확인할 필요도 있다. 특히 태양빛이 닿지 않는 음영 구역에서도 활동해야 하는 로버는 어둠도 극복해야 한다.
건설연은 광학장비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모의극한지형실험실도 구축했다. 챔버가 있는 방 바로 맞은 편에 마련된 이곳은 무광 페인트로 사방을 칠해 달의 음영 지역을 모사했다.
나사는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달 극지에 있는 얼음을 추출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달에 있는 물은 단순히 우주인이 먹고 마실 수 있는 자원을 넘어서 화성 진출에 달을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연료로서도 주목 받고 있다. 음영 구역인 극지에서 로버로 얼음을 연구하려면 반드시 광학 장비의 성능을 확인해야 하는 셈이다.
이 연구위원은 “우주 탐사용은 아니지만,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함께 로버를 개발해 어두운 환경에서 지형 스캐닝 기술을 확보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며 “실제 달 탐사 로버 성능 시험에도 활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연이 구축한 달 탐사 로버 실험 시설은 모두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됐다. 덕분에 건설연은 우주 진출을 계획하는 해외 우주 관련 기관과 기업의 주목을 받아 왔다. 룩셈부르크 우주청(LSA) 관계자들은 지난해 11월 건설연을 방문해 챔버를 활용한 연구 협력 방안을 의논했다. 총 인구 60만명의 작은 나라인 룩셈부르크는 우주기술 강국으로 꼽힌다. 특히 사기업이 채취한 우주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할 정도로 우주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미국의 주요 우주기업과 연구 협약을 맺고 로버 성능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고, 거미 다리를 가진 로버를 개발한 영국 기업과도 공동 연구를 계획했었다”며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다시 기업들과 공동 연구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달 탐사 로버·모빌리티를 개발하려는 국내 기업들과도 협업이 논의가 한창이다. 이 연구위원은 “달탐사 2단계 사업에 활용될 로버는 아직 선정되지 않았지만, 국내 기술로 달탐사를 이룬다는 목표가 있는 만큼 성능 시험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며 “우주 탐사 기술 국산화를 위해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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