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 짜듯 쌓아올린 주택…’5일' 만에 집 한채 ‘뚝딱’[미래on]
정부도 '쓰임새' 공감…협의체 출범하고 규제도 혁신
[편집자주] 기술·사회·산업·문화 전반의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산업·문화 혁신과 사회·인구 구조 변화 등 여러 요인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현상이다. 다가오는 시대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려면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가늠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뉴스1은 세상 곳곳에서 감지되는 변화를 살펴보고 어떤 식으로 바뀌는지 '미래on'을 통해 다각도로 살펴본다.
(서울=뉴스1) 황보준엽 기자 = 어쩌면 머지않은 시기에는 청약을 받고 집이 지어지기까지 오랜 기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5일'
미국의 한 건설사가 3D 프린터로 주택을 짓는데 걸린 시간이다. 인쇄용 프린터에 전원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출력물이 나오는 것처럼, 3D 프린터도 비슷하게 운영된다. 마치 튜브에 든 내용물을 짜내는 듯한 모습으로 시멘트 등을 층층이 쌓아올려 건물을 만들어낸다.
수십, 수백명의 인원이 달라붙어 골조를 세우고 시멘트가 굳길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들어가는 인력도 시간도 적다보니 가격도 기존 철근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주택보다도 싼 편이다. 건설 폐기물 배출도 줄일 수 있다.
만들어진 주택을 '레고'를 쌓듯 짓는 건축 기술도 있다. 모듈러라 불리는 이 기술은 주택 자재와 부품 70~80%를 사전 제작 후 현장에서 건물을 조립하는 방식이다. 기존 건축공법 대비 20~30%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공장처럼 찍어내는 방식이라 숙련공도 필요하지 않다. 단순히 주택에만 쓰이는 것이 아닌 학교 등 다양한 용도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해외에는 이렇게 지어진 건물이 적지 않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선 3D 프린팅 기술이 주요 공법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미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특히 모듈러 주택의 경우 50층까지 올리는 사업도 검토 중에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32층 민간임대주택이 모듈러 건축공법으로 준공됐고, 이어 50층짜리 B3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다. 미국에선 임대주택을 모듈러 건축으로 많이 짓고 있다.
이 밖에 영국 울버햄프턴(Wolverhampton)에는 모듈러 방식으로 지어진 25층 기숙사가 있고, 호주에선 44층 규모의 La Trobe Tower가 2016년 11월 완공됐다.
국내에서도 기술개발이 한창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지난 2017년 소형건축물 및 비정형부재 대상 3D 프린팅 설계·재료·장비개발기술 과제에 착수했으며, 2019년에는 경기 고양시 일산 연구원 내부에 시범주택을 시공하기도 했다. 1단계 연구는 지난해 종료됐고, 논의 후 2단계 연구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민간 건설사들은 모듈러 공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DL이앤씨가 모듈러 유닛의 제작, 설치, 마감 및 설비와 관련한 요소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모듈러 협력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모듈러 건설 기술 적용 및 관련 공급망을 구축하고, 사우디 내 모듈러 제작 등 협력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포스코이앤씨는 모듈러 전문회사인 포스코A&C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다만 현실에서 쓰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3D 프린트 기술의 경우 골조 등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높은 층을 올리긴 어렵고, 모듈러는 일반 공사 대비 비용이 30% 가까이 더 필요하다. 당장 시장 내 주류 공법으로 자리 잡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소비자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제주에서는 모듈러 교실을 도입했다가 안전을 우려한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정부도 해당 공법의 쓰임새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공공기관, 모듈러주택 관련 민간단체로 구성된 '모듈러주택 정책협의체'를 출범시켰고, 지난 2월 제4차 경제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에선 모듈러 등 스마트건설 관련 기준을 표준시방서에 수시로 반영하기로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물론 지금 당장 해당 공법들로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기는 어렵긴 하다"면서도 "다만 정부 쪽도 관심을 가지고 있고, 결국에는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wns83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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