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별별] 국회의원 수 줄이자는 ‘정치 알박기’

이동현 2023. 4. 1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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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던가.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정치 시장'을 보다 경쟁적으로 만들라고 하니 내키지 않아서일까.

다양성과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뽑는 비례대표제가 오히려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각 당의 전사, 저격수를 양성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을 명분 삼는다.

강성 팬덤 정치가 민주주의 근간을 위하게 내버려 두지 말고, 민생 경쟁이 이뤄질 수 있게 정치 다양성을 확보하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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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전원위원회 첫날인 10일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첫 번째 토론자로 발언하고 있다. 국회의원 전원이 토론에 참여하는 전원위는 2024년 치러질 국회의원 총선거에 적용할 선거제 개편안(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나흘간 개최된다. 2003년 '이라크 전쟁 파견 연장 동의안'에 대한 토론 이후 20년 만에 소집됐다. 연합뉴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던가. 20년 만에 열린 국회 전원위원회가 그렇다. 국회의원 전원이 선거제도 개편 방안을 토론하겠다더니 본회의장이 텅텅 비었다. 나흘간 이어질 전원위 첫날인 10일 개의 3시간이 지나자 회의장엔 재적 의원 299명 중 55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의원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참석한 박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입 한 번 떼지 못하고 자리만 지키다 돌아갔다. 정치 불신ㆍ정치 혐오가 극에 달한 우리 정치문화를 바꿀 건설적 대안을 찾겠다던 취지가 무색해졌다.

정치권이 정치개혁 요구를 외면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량 사표(死票) 발생에 따른 민의왜곡, 승자 독식에 의한 국론 분열 심화, 정치 양극화ㆍ지역주의 고착화, 지역소멸 위기 대응 등이 전문가들이 선거제 개편이 시급하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높은 진입장벽을 이미 넘은 현역 의원은 ‘민심 그대로’보다는 ‘지금 이대로’가 나쁘지 않은 듯하다. 정권을 주고받는 거대 양당은 겉으로는 선거제 개혁을 외치지만, 결정적 순간엔 상대 당 탓을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정치 시장’을 보다 경쟁적으로 만들라고 하니 내키지 않아서일까. 한 의원은 “어떻게 배지를 달았는데, 본전 생각을 안 할 사람이 있겠냐”고 반문한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한발 더 나아가 의원 숫자를 30석 줄이자고 한다. 의원 반발로 지역구를 줄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비례대표부터 없애자고 한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뽑는 비례대표제가 오히려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각 당의 전사, 저격수를 양성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을 명분 삼는다. 비례대표제가 변질된 건 ‘깜깜이’, ‘밀실’ 공천 탓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전형적 물타기다. 선거제 개편안 중 하나로 비례대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개방형 비례제’ 도입이 포함된 건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는다.

국민 요구는 분명하다. 민의를 왜곡하지 말라는 것이다. 강성 팬덤 정치가 민주주의 근간을 위하게 내버려 두지 말고, 민생 경쟁이 이뤄질 수 있게 정치 다양성을 확보하라는 주문이다. 단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민주연합ㆍ민주노동당 등 다양한 세력이 원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했을 때 정치가 국민의 삶을 이롭게 했음을 적잖은 국민이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진보 정권은 지지층 반대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고, 반대로 보수 정권은 진보 정당이 요구했던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 확대를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전원위 첫날 오영환 민주당 의원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소방관 출신 최초, 21대 최연소 지역구 당선자인 오 의원은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에 바쁜 정치 현실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며 자성했다.

불출마 선언이라도 하며 의원 정수를 줄이자고 한다면 최소한 진정성은 있어 보일 텐데,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다. 어차피 입법권은 자신들 손에 있으니, 선거제 개혁이라는 잠깐의 소나기만 피하면 유야무야된다는 심산일까. 한 여당 의원은 “지금은 무지성,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말한다. 정치 진입장벽을 도리어 높이는 의원 정수 축소 주장은 붕괴 위험에 처한 정치를 재건축하자는 민의를 배신한 ‘정치적 알박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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