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안 뽑는 게 오히려 이득" 미고용 부추기는 고용부담금 [장애인 일자리가 없다]

곽주현 2023. 4. 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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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년간 변하지 않은 장애인고용부담금 기준
장애인 의무고용 못 채워도 '최저임금 60~100%'
"고용보다 경제적... 기준 평균임금으로 높여야"
편집자주
'물고기를 주면 한 끼를 먹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을 산다.' 유대인의 경전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으로,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장애인에게 절실한 말이다.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1회성 지원보다 장기적 일자리 대책이 시급하다. 이에 한국일보는 장애인의 부족한 일자리 문제와 해법을 매주 목요일마다 총 4회에 걸쳐 '장애인, 일자리가 없다' 시리즈로 짚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 한 정보기술(IT) 업체는 최근 몇 년 새 직원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장애인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생겼지만, 대표인 A씨는 장애인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A 대표는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부담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장애인을 채용해 월급을 주고 4대 보험료를 내는 것보다는 얼마 되지 않는 부담금을 내는 편이 '손해가 덜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중소기업 특성상 장애인을 채용하고 관리할 여력이 없다"며 "차라리 1년에 한 번 부담금을 내는 편이 경영적으로 훨씬 이득"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려면 기업이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적극적으로 채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촉진하기 위해 32년 전 도입한 '장애인 고용부담금' 제도가 오히려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정 부담금이 '최저임금의 60~100%' 수준에 불과해 기업들은 장애인 의무 고용 인원을 채우기보다 부담금 납부라는 손쉬운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고용부담금 납부 사업체

12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올해 기준 민간기업은 전체 고용 인원의 3.1%,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3.6%를 장애인으로 채워야 하며, 중증 장애인 1명을 채용하면 2명을 채용한 것으로 계산한다. 만약 의무 고용 인원수를 채우지 못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고시하는 장애인부담금 부담기초액에 근거해 미달 인원수만큼 부담금을 내야 한다.

예를 들어 상시고용인 수가 200명인 사업장의 경우 매달 고용하고 있어야 하는 장애인 수는 6명이며, 미달할 경우 고용 인원수에 따라 부담금 액수가 크게 달라진다. 올해 기준 연간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을 경우 이 회사는 한꺼번에 약 1억4,000만 원을 내야 하지만, 1년 내내 3명을 고용했다면 약 4,600만 원, 5명을 고용하면 약 1,450만 원만 내면 된다. 기업 입장에선 한 명의 장애인이라도 더 고용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줄어드는 셈이다.

그럼에도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의무 고용 인원수를 채우지 않고 부담금 납부를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경제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받은 '2012~2021년 장애인 고용부담금 발생 현황'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부담금 납부 사업체 수는 2012년 7,214곳에서 2021년 8,424곳으로 16.8% 증가했다. 이들이 납부한 부담금은 약 3,245억 원에서 7,769억 원으로 10년간 2.4배 증가했다. 점점 더 많은 사업체가 적극적인 장애인 고용보다는 부담금 납부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영진 의원실이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제출받은 '2018~2021년 고용부담금 납부 상위 50개 기업'을 살펴본 결과, 대부분 수십억 원이 넘는 부담금을 내면서도 4년간 장애인 고용률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2020년 고용해야 할 인원의 절반 수준인 1,714명을 고용하면서 부담금을 109억 원이나 냈는데, 2021년엔 고용의무 인원이 69명 늘었음에도 단 한 명만 추가 고용하면서 118억 원가량의 부담금을 냈다. 김영진 의원은 "장애인 고용을 고용부담금 납부로 대체하는 식의 지난한 반복은 이제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2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고용부담금 기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한 회원이 이달 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확대 요구 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뉴시스

이 때문에 현행법상 '최저임금의 60% 이상'으로만 규정돼 있는 장애인 고용부담금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100여 개 기업 대표를 초청한 자리에서 발달장애인 고용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의 이진희 대표는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해 고용부담금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고용하는 것보다 부담금이 싸니까 부담금을 내고 마는 것"이라며 "고용부담금을 기회비용으로 인지하게 하려면, 최소한 해당 기업의 평균임금과 최저임금 100% 사이에서 부담금이 책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고용법이 1991년 시행된 이후 고용부담금 기준은 바뀐 적도 없고, 국회나 정부 내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진 적도 없다. 당시 기준이 최저임금의 60%로 정해진 근거도 불투명하다. '당시 장애인 노동의 가치를 그 정도로 계산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나온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을 지낸 조종란 서울여대 석좌교수는 "과거엔 장애인 일자리를 '시혜'라고 여기고 장애인 노동의 가치를 낮게 봤기 때문에 이런 규정이 만들어졌지만,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해진 지금 장애인 의무고용은 윤리적·사회적 의무이자 필수"라며 "기준을 최저임금이 아닌 평균임금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담금 수준이 높아지면 기업은 더욱 적극적으로 장애인 고용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해 장애인고용공단이 발간한 '2022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1,000인 이상 기업의 70.6%는 '고용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장애인을 채용한다'고 답했다. 부담금 제도가 어느 정도의 강제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고용부담금을 높이는 것만이 장애인 고용률을 끌어올리는 유일한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부담금이 지나치게 의무화될 경우 장애인 일자리의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석좌교수는 "고용부담금 증가에 대한 갑작스러운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장애인 표준사업장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면서 천천히 기준을 올려 가는 게 맞다고 본다"며 "고용부담금 인상은 정책적인 판단이 중요한 문제이므로, 사회적 분위기와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일자리가 없다] 글 싣는 순서
1회 고용 장벽에 '생존 벼랑' 내몰리는 장애인들
2회 32년간 변하지 않은 고용부담금 기준
3회 장애인고용 선진국, 독일을 가다
4회 장애인 사업장에서 희망을 보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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