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한 가마니'가 사라진 시대의 쌀값[우보세]

세종=김훈남 기자 2023. 4. 13.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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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쌀 '한 가마니'의 무게는 80㎏(킬로그램)이었다.

수확기마다 80㎏ 한 가마니를 고집하시던 아버지도 이제 10㎏짜리 쌀을 사신다.

쌀 한 가마니의 무게가 80㎏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가는 것을 보니 앞으로 30년쯤 뒤에는 아예 한 가마니의 무게는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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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용인시 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미곡종합처리장 저온창고에서 직원이 수매 후 보관 중인 쌀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뉴스1


대략 30년 전후쯤 일이다. 매년 추석 명절 마지막 일과로 아버지는 햅쌀 한 가마니를 업무용 겸 자가용인 1톤 트럭에 실었다. 겨우내 밥상에 올릴 식량이었다. 당시 쌀 '한 가마니'의 무게는 80㎏(킬로그램)이었다.

요즘 쌀 '한 가마니'의 무게는 30년 전과 다르다. 대형마트에선 쌀을 10㎏ 혹은 20㎏ 단위로 판다. 요식업을 하지 않는 한 80㎏짜리 가마니로 쌀을 구입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수확기마다 80㎏ 한 가마니를 고집하시던 아버지도 이제 10㎏짜리 쌀을 사신다. 쌀 한 가마니의 무게가 80㎏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가는 것을 보니 앞으로 30년쯤 뒤에는 아예 한 가마니의 무게는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숫자를 봐도 과거와 달라진 쌀의 위상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양곡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7㎏이다. 30년 전인 1992년 소비량(112.9㎏)의 절반 수준이다. 쌀 소비량은 1984년이후 40년 가까이 내리막을 걸었다. 2006년부터는 국민 1인이 1년 동안 쌀 한 가마니를 채 소비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소비는 반토막났는데 생산은 그렇지 않다. 가장 최근 수치인 2021년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521만M/T(메트릭톤)으로 1992년 726만M/T에서 28% 감소에 그쳤다. 직전년도인 2020년 471만M/T에 비해선 오히려 11% 정도 증가했다. 45년만에 기록적 폭락이라는 최근의 쌀 가격 하락은 결국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형성된다는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작동한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뜨거운 법안이 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경제원리에 따라 폭락한 쌀값에 극도로 정치적인 해법을 들이대고 있다. 초과 생산된 쌀에 대한 정부의 의무매입 규정과 논에 타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에 대한 재정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눈앞에 보이는 경제원리는 외면하고 현상에 재정을 들이부어 농심(農心)을 사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쌀 생산량 감소가 소비량 감소폭을 따라가지 못한 것은 가격의 수요·공급 조정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탓이다. 정부는 쌀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기존의 양곡관리법에 근거해 초과 생산된 쌀을 격리조치(매입)해 왔다. '주식'(主食)으로서의 쌀이 갖는 상징성과 1년 주기 농사의 특수성까지 있고 산업화 시대 농가의 '지분'까지 있는 한 가격에 따른 생산량 조절은 더욱 어려워진다.

새 양곡관리법이 '사전 생산량 조절'을 전제하고 있다는 야당의 주장도 '농사를 지어놓기만 하면 어떻게든 팔린다'는 농업현장의 인식이 있는 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정 가격 이상으로 사줄 사람이 있는데 생산량을 줄이는 게 과연 경제주체로서 가장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일까. 지금 쌀값에 필요한 것은 시장 실패에 따른 정치의 개입이 아니다. 쌀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결정 원리가 어느 수준 이상은 작동해야 한다. 대규모 재정 투입은 다음 문제다.

세종=김훈남 기자 hoo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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