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목동은 안 이런데… 다리 무너지고 땅 꺼지는 분당·일산 1기 신도시

이성훈 기자 2023. 4. 1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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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대한토목학회는 ‘정자교 붕괴’와 관련해 긴급 성명을 냈다. “정자교(1993년 개통)와 같은 시기 시공된 교량이 유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니 즉각적인 정밀조사를 실시하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5일 ‘정자교 붕괴’ 사고 후 1기 신도시 인프라(교량·도로 등 기반시설)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기 신도시는 노태우 정부가 수도권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5곳에 조성한 약 30만 가구 계획도시로, 1989년 말 착공해 1996년 입주가 끝났다.

지난 5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정자교 보행로 일부 구간과 난간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 출동한 소방 구조 대원 등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뉴스1

◇ “팽창하는 도시, 급조된 인프라가 못버텨”...분당 정자교 붕괴로 본 1기 신도시의 문제점

본지가 1기 신도시 교량의 준공 연도를 전수 조사한 결과, 정자교와 비슷한 시기(1989~1996년)에 지어진 교량이 1기 신도시에만 164곳이었다. 실제 1기 신도시에선 인프라 관련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야탑10교의 교각이 기울고,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에서 지반 침하로 지상 7층 건물 일부가 파손되는 등 땅 꺼짐으로 인한 문제가 연이어 발생했다. 앞서 조성된 목동 아파트단지(1985년 입주)와 여의도 아파트단지(1970년대 초)에서 이런 문제가 없는 것과 대비된다. 이에 본지는 토목·건설 관련 전문가 10명으로부터 1기 신도시 인프라 안전성에 대한 분석을 들었다. 이들은 당시 과도한 주택 공급 정책으로 인한 건축자재 파동의 영향, 도시 확대 과정에서 설치된 통신케이블·가드레일·상하수도관 등의 추가 설비, 부족한 인프라 유지·보수 예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 추가 설치된 가드레일·통신케이블

정자교 붕괴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수사 중이다. 하지만 붕괴 장면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교량 위에 설치된 가드레일과 통신케이블이 붕괴의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자교에는 2017년 무렵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가드레일이 설치됐다. 판교신도시 조성과 신분당선 개통 등으로 차량 통행과 유동 인구가 늘면서 안전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세워졌다. 또 도로 아래로는 완공 당시에는 없었던 통신 케이블도 지나갔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하중이 커져 틈이 생기고, 그 사이로 빗물이나 제설제가 들어가 철근을 부식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며 “가드레일이나 통신케이블은 그 자체 무게가 오랜 시간에 걸쳐 교량의 내구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탄천 교량 16곳에 임시 지지대 설치 - 지난 5일 정자교 붕괴 사고 이후 성남시는 탄천 교량 16곳에 임시 보강 구조물을 설치하고 정밀 안전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돌마교 보행로 아래에서 작업자들이 하중 분산을 위한 임시 지지대 ‘잭서포트’를 설치하는 모습. /뉴시스

1기 신도시는 주변에 새로운 택지와 대형 오피스 등이 들어서면서 통신케이블이나 상수도관 등의 인프라가 추가로 설치되고 있다. 이런 것들이 30년 전 완공된 교량과 도로 등에 무리를 주고 있다는 진단이다. 분당 백현교에도 처음에는 없었던 상수도관이 추가로 설치됐다. 성균관대 박승희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1기 신도시는 기업 입주 등 기능이 계속 확장되면서, 기존 인프라에 추가로 각종 설비들이 설치되고 있다”며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내구성을 갉아먹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30년 전 무리한 주택 공급의 후유증?

1기 신도시 조성 당시 있었던 건축자재 파동의 후유증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번에 30만 가구를 지으면서, 시멘트·철근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가격이 치솟았다. ‘부실 콘크리트’ 문제가 불거져 대대적인 재시공이 이뤄지고, 인력 부족으로 비숙련공이 현장에 투입됐다. 당시 건설사들은 건축비를 줄일 수 있는 새로운 공법을 1기 신도시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이번에 붕괴된 정자교 보도 부분에 적용된 캔틸레버(cantilever)라는 공법이 대표적이다. 한쪽 끝은 교량에 부착돼 있지만 반대쪽 끝은 밑에서 하중을 받치지 않은 채 설치된 구조다. 한양대 이창무 교수(도시공학과)는 “당시로선 가장 효율적인 공법을 시도했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할 만한 기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안전성과 내구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1기 신도시 사업에 참여했던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장은 “당시엔 재건축 연한이 20년이었다”며 “50년 이상 가는 건축물이 아니라 20년을 기본 수명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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