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 국대 수문장 맷 달튼 “한국 여권은 영원히 간직할 보물”
한국 남자아이스하키 대표팀 수문장 맷 달튼(37)을 만난 건 지난달 말 아시아리그 챔피언결정전이 끝나고 3일 뒤였다. 소속 팀 HL안양(옛 안양 한라)을 통산 7번째 정상으로 이끈 뒤 곧바로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고 구단이 주최한 ‘판타지 캠프’에서 3일 동안 초등학생에게 재능 기부를 한 다음에야 지난 1일 고향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 아이스하키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당연히 나서야죠. 내가 한국에서 뛰면서 얻은 모든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어요.”
안양실내링크 얼음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달튼의 모습은 더없이 진지해 보였다. 달튼은 2022~2023시즌 아시아리그에서 자신의 첫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됐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자신의 한국 이름 한라성(漢拏城)처럼 두꺼운 벽을 쌓으면서 우승을 이끌었다. HL안양은 일본 홋카이도 이글스와 5차전 승부 끝에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달튼은 “이번 우승이 한국에서 선수 생활 중 가장 짜릿했던 기억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 종목이 그렇듯 아이스하키도 코로나 시대에 리그 자체가 열리지 못했고, 링크가 폐쇄되는 바람에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졌다. 그사이 올림픽 등 국제 대회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옷을 벗었다. 달튼은 “새로 합류한 어린 선수들이 경험이 많이 부족해 우승은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우승을 해서 더욱 특별하다”고 했다.
달튼은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무대를 노렸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러시아리그(KHL)에서 3년간 활약하다 2014년 안양 한라와 인연을 맺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특별 귀화로 한국 국적을 얻은 7명의 ‘외인부대’ 멤버 중 하나. 지금은 달튼 혼자 한국에 남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올림픽 직후 스틱을 놓은 선수도 있고, 코로나로 리그가 중단되면서 어쩔 수 없이 생업을 찾아 모국으로 돌아간 선수도 있다. 달튼과 함께 마지막까지 HL안양에서 뛴 알렉스 플란테는 경찰관, 에릭 리건은 소방관으로 일한다.
달튼도 평창 올림픽 이후 러시아, 체코 리그의 제의를 받았으나 한국 잔류를 택할 만큼 한국 사랑과 팀에 대한 의리가 순도 100%다. 그는 ‘무늬만 한국인’이 아니다. 특공대 체험, 박물관 탐방, 농구·야구 경기 관람 등 기회만 되면 한국을 더 깊이 알려고 발품을 팔았다. 돌판삼겹살과 구운 김치가 ‘최애’ 음식. 한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감명받은 충무공 이순신 그림을 헬멧에 새겨놓고 올림픽에 나서려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정치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금지하기도 했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3개월 후 치른 세계선수권대회에 보란 듯 충무공 헬멧을 쓰고 골문을 지켰다. 지난해엔 대통령 선거 때에도 기꺼이 한 표를 행사했다. ‘스포츠에 대한 비전이 공약에 진실되게 담겨있는지’가 후보 선정 기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사는 만큼 외로움이 가슴속에 스며드는 것은 막아내지 못한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9년. 이제는 캐나다보다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 아빠와 함께 지내고 싶은 아이들이 “대표팀만이라도 안 가면 안 되냐”고 졸라대면, “국가 대표팀이라 더욱 가야 한다”고 다독이는 게 연례행사가 됐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죠. 생사고락을 같이한 캐나다 친구들이 너무 그리워요. 그들과는 뭔가 특별한 유대감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들 중 몇몇은 올림픽 후 곧바로 대표팀 차출을 거부해 좀 아쉬웠어요. 자기에게 엄청난 기회를 준 나라에 더 공헌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규정을 그런 방향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그들의 개인의 선택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죠. 참, 7월에 리건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청첩장을 보내왔어요. 그때 아마 다들 한자리에 모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벌써 기대되네요.”
달튼의 2023년 시계는 다시 코로나 이전처럼 분주하게 돌아간다. 지난 1일 가족이 사는 캐나다로 떠난 그는 부모님이 사는 플로리다에 잠시 들렀다가 16일 카자흐스탄에 차려진 한국 대표팀 훈련 캠프에 합류해 4월 말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한다. 이후 캐나다로 다시 돌아갔다가 8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새 시즌 챔피언 방어를 위해 나선다. 달튼에게 ‘한국과 캐나다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택하겠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져봤다. 그러자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당연히 아무것도 포기 못 하죠. 둘 다 조국인데요. 사실 지난해 팀과 2년 계약을 하면서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끝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난 시즌 컨디션이 너무 좋아 더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아무래도 가족들과 먼저 상의해야겠죠? 언젠가 은퇴를 해도 팀이든, 대표팀이든 한국 아이스하키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역할을 맡을 겁니다. 한국 여권은 제게 영원히 간직해야 할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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