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1회 주사로 6개월 15㎏ 쏙...살 빼는 주사, 美 다이어트 시장 흔든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3. 4. 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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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미 최대 체중관리 회사 '웨이트 와처스'가 LA에서 주최한 단체 피트니스 이벤트. 미 다이어트 시장의 판도는 건강한 식단과 꾸준한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 생활방식을 바꾸는 개인의 인내심과 노력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주사만 맞으면 저절로 체중이 15% 이상 빠지는 신약이 출시돼 부유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이런 기존 다이어트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P 연합뉴스

“바늘 여섯 개와 주사용 펜이 들어 있어요. 바늘이 정말 가늘고 반짝이네요. 곧 살이 빠지겠지요?” 최근 소셜미디어 ‘틱톡’에 올라온 한 미국인의 동영상은 첨단 전자 기기처럼 ‘오젬픽’이란 약의 포장을 ‘언박싱(신제품 개봉)’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 약은 원래는 당뇨 치료제이지만 요즘 미국에선 비만 치료용으로 더 많이 쓰인다. 미국을 중심으로 단기간에 급격하게 체중을 줄여주는 비만 치료 약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소셜미디어에서 운동·식단 같은 다이어트 단골 소재가 비만 약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2021년 하반기 미국에서 위고비·오젬픽·트루리시티 등 비만 치료에 큰 효과를 보이는 주사제가 출시되고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다이어트 산업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미국의 비만 인구는 전체의 42%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0일(현지 시각) “1980년대 여배우 제인 폰다의 에어로빅 비디오부터 최근의 체중 관리용 스마트폰 앱까지, 다이어트 산업은 운동과 식단 관리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오젬픽·위고비 등 비만 약의 인기가 치솟으며 전통적인 다이어트 업계가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고 했다.

운동, 식단 관리 등을 합친 전통 다이어트 산업 규모는 760억달러(약 100조7000억원) 정도다.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2031년까지 비만 약 시장이 1500억달러를 넘어서며 기존 다이어트 시장의 두 배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약들에 쓰이는 성분은 ‘GLP-1′로 본래 용도는 당뇨 치료다. 음식을 먹을 때 장에서 나오는 포만감 호르몬을 모방해 적게 먹어도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한다. 이런 효과가 체중이 줄게 하는 예상외의 긍정적 부작용을 유발해 최근엔 비만 약으로 더 많이 소비된다. 주 1회 주사하면 3~6개월 만에 체중이 15% 이상 줄어든다고 알려지면서 지난해에만 100억달러어치가 팔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부터 모델 킴 카다시안, 가수 아델 등 유명인들이 위고비 등으로 감량했다고 한다.

‘비만 약의 킹콩’이라 불리는 마운자로가 FDA(미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아 내년 초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약을 통한 다이어트’의 시장을 키울 가능성이 큰 요인이다. 비슷한 원리로 작용하는데 체중 감량 효과가 약 23%로 더 크다고 알려졌다.

비만 약의 약진에 타격을 받은 기존 다이어트 업계는 전략을 수정하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식단 등 생활 방식 개선을 컨설팅해 주는 미 최대 체중 관리 서비스 업체 ‘웨이트워처’는 서비스 이용자 수가 2020년 503만명에서 최근 350만명 아래로 급감하자, GLP-1 기전 비만 약을 처방하는 원격 의료 업체 ‘시퀀스’를 1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지난 10일 발표했다. 웨이트워처를 통해 약을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골드만삭스가 이 인수를 ‘실적 전환의 촉매제’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보고서를 내자 2018년 대비 90% 하락해 있던 웨이트워처 운영사(WW 인터내셔널)의 주가가 11일 60% 폭등했다.

온라인 다이어트 관리 업체 ‘눔’도 비만 약 공급 서비스를 도입했다. 몇몇 서비스 이용자에게 앱을 통해 비만 약을 주문할 수 있도록 한 시범 프로그램을 최근 내놓았다. 기존의 식욕 억제제나 지방 분해 성분이 든 다이어트 보조제 등은 신약에 밀려 수요가 급감하자 30~50%씩 ‘폭탄 세일’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 반면 뉴욕·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 부촌(富村)의 피부과·성형외과 등은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비만 약의 빠른 효과로 단기간에 살이 너무 많이 빠져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얼굴 피부가 처지고 늙어 보여, 시술을 요구하는 이가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내에선 이 약들을 다이어트용으로 아직 구할 수 없지만 일부 임상 시험이 진행되는 등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한편에선 이 약들을 만능으로 단정하기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젬픽의 한 달 주사 값은 892달러(약 118만원)에 달할 정도로 가격이 너무 비싸 대중화하기 어렵고, 약을 끊으면 체중이 원상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부작용 우려도 있다. 구혜연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메스꺼움 증상이 흔하게 나타나고 소화불량·설사·변비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영민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만 상태가 아닌 사람이 조금 더 날씬해지려고 이런 약들을 오·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이미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약이 품귀 현상을 빚어 정작 필요한 환자들이 복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다이어트 시장의 판도를 바꾼 '게임체인저'로 평가되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주사제 위고비. 약값이 한화 월 178만원에 달한다. 원래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체중감량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2021년 하반기부터 비만 치료를 위한 오프라벨(off label-허가사항과 다른 적응증으로 처방하는 것) 처방이 급증했다. /노보 노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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