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단비와 단잠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할머니 뼈다귀 감자탕’집에서 나오는데 후드득 비가 떨어져. 남쪽은 하도 비가 드물어 인디언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다. “언젠가 저녁에 나는 앉아 아이들이 노는 걸 봤어. 웃는 표정들이었는데 날 보고 웃는 건 아니었어. 난 앉아서 아이들을 보며 눈물지었어. 돈으로 모든 걸 살 수는 없지.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싶었어. 내가 들은 건 바닥에 튀는 빗소리였어.” 차에서 들은 ‘롤링 스톤스’의 ‘As Tears Go By’. 빗소리랑 섞여 ‘합주’만 같더라.
한 번은 칠레하고도 항구도시 발파라이소를 갔었는데, 그날도 오늘처럼 추적추적 빗줄기.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집에선 수평선이 보여. 뉴스에 보니 발파라이소 의사당에서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법안이 최종 통과되었단다. 나흘만 일하고 금·토·일 쉬는 나라. 노동자 ‘아만다’의 고되고 슬픈 사랑을 노래했던 포크 가수 빅토르 하라가 편히 영면에 들겠다. 엄마아빠가 집에서 기다리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늦게까지 뛰노는 세상. 우린 언제 그날을 맞을까.
롤링 스톤스는 공연 때마다 폭죽을 너무 많이 터트렸는데, 기자가 감탄하며 말하길 “무대가 환상적입니다. 액션 영화 같아요”. 그러자 멤버 한 사람이 “영화는 보는 것으로야 좋지. 폭죽에 등이 뜨거워 죽겠어. 얼른 끝내고 맥주나 마시고 싶소”. 요란한 폭죽과 환호보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쉬는 게 더 행복한 가수의 심정.
우리나라는 주당 60시간이 넘는 노동과 불행의 아수라. 집값은 비싸고 월세도 높은데 코딱지만 한 아랫목에 붙어 있을 시간조차 없어라. 단비에 따뜻한 집에서 단잠 자고픈 사람들, 전쟁 연습을 멈추고 부모님 품에 돌아가고픈 어린 군인들. 그들 소원이 이루어지길. 잠깐 흩뿌린 비가 아쉬워 롤링 스톤스의 노래 한 번 더 듣는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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