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통신] 광주 청년이 바라본 신군부 시대… 정말 모든 게 ‘암흑기’였나

박은식 의사·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2023. 4. 13.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캠퍼스의 낭만을 버리고 스펙 전쟁에 뛰어들어도 취직이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대기업들이 서로 학생들을 스카우트하려 캠퍼스에 입사 원서를 뿌려댔다던 이야기는 참 낯설게 느껴졌다. ‘그거 다 운 좋게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 맞아서 그런 거야’라는 말도 들었지만, 막상 일해보니 스스로 준비돼 있지 않으면 운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으며 무엇보다 내 고향 광주 시민들에게 큰 아픔을 준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해선 당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정치에만 초점을 맞추고 신군부 시대를 ‘암흑기’로만 평가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신군부 시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공부해봤다.

먼저 구조 개혁에 성공한 점이 눈에 띄었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1980년은 2차 오일 쇼크로 물가가 치솟았고 재정 적자와 외채 증가에 중화학공업 과잉 중복 투자 문제까지 겹쳐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위기 상황이었다. 경제수석비서관 김재익은 먼저 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근로자 임금과 추곡 수매가는 묶고 예산까지 동결한 다음 수입 자유화를 추진해 보호받던 국내 기업의 경쟁을 유도하고 독과점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제정했다.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인기 없는 구조 개혁에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전두환은 ‘경제 대통령은 당신이야’라며 김재익을 전폭 지원했다. 결국 물가가 잡히고 만성적 무역 적자도 흑자 구조로 바뀌고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 이상을 기록했으며 중산층도 두꺼워졌다.

미래 과학기술에 투자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과학기술비서관 오명에게 ‘전자 산업 육성 대책반’을 맡겨 통신·전자·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인프라 구축을 시도했다. 하지만 자금과 기술력 부족으로 주변 반대가 심했다. 전두환은 일본에 ‘한국이 공산 세력으로부터 일본을 지켜주고 있으니 안보 경협 자금 100억달러를 내라’고 요구했다. 결국 40억달러를 받아내고 반도체 생산 장비의 수입 허가도 이끌어냈다. 이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반도체 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다. 또 기업이 반도체 장비를 수입할 때 관세를 면제해 주고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도록 토지 매입을 허가해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투자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기술이 됐다.

우민화 정책이라 평가 받던 ‘3s(screen·sports·sex) 정책’도 다시 보게 됐다. 성 묘사에 대한 검열을 완화하고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활성화하는 정책 추진은 소득 성장에 따른 국민의 사회 문화적 자유화 요구를 수용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해당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제성장에 대한 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일까?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지만 국민의 선택은 노태우였다. 노태우 정권은 북방 외교, 평시 작전권 회수,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을 추진해 성공시켰다. 그리고 국민 의료보험 및 국민연금 제도를 확대했다. 이 시기 호남 지역에 광양제철과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됐고 새만금 개발 사업도 추진됐다.

그 시대엔 목숨 걸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분들도 있었지만 이념을 떠나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던 엘리트 관료들과 그들의 제안을 외압 안 받게 보호해주며 추진케 한 리더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한 국민들이 있었다. 이 시기는 암흑기가 아닌 모두의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완성한 시대인 것이다.

아픔과 차별을 겪어야 했던 고향 광주 어르신들의 마음을 알기에 이런 글을 쓰기가 매우 조심스럽고 또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갚을 수 없는 원한을 대물림할 순 없다. 지금 광주 시민들이 진정 바라는 것도 과거를 딛고 일어나 성숙한 민주주의를 갖춘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5·18 피해 유족들에게 사죄하러 온 전두환·노태우의 후손들이 환대받은 것도 그런 의미 아닐까. 공과 과를 담담히 바라보고 교훈을 얻어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노동·연금 분야의 구조 개혁과 미래 과학기술 투자를 통해 다시 성장 발판을 마련하길 기대해본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